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치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중보건 우선순위로 지정한 질환이다.
이를 통해 위험에 처한 인구를 조기에 식별하고 즉각적인 조처를 함으로써 질병 부담을 줄이고 치매의 악화를 막는 효과를 높이자는 취지다.
이런 치매는 그 악화 정도에 따라 아주 가벼운 기억장애부터 심한 행동장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말하기·읽기·쓰기 등에 문제가 생기는 언어장애, 방향감각이 떨어지는 시공간 능력 저하, 성격의 변화와 비정상적인 행동 등도 치매의 주요 증상으로 꼽힌다.
따라서 치매는 본인 또는 가족이 조기에 이런 증상을 알아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초기라면 기존 약물 등을 통한 치료로 어느 정도 진행을 늦추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이에 더해 노년기에 음식을 씹는 기능이 떨어진 것도 치매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분당서울대병원·서울대병원·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공동 연구팀이 대한의학회지(JKMS)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보면 노인들의 저작 기능 저하와 치매 위험 사이에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60세 이상의 지역사회 거주 노인 5천64명(남 2천195명, 여 2천869명)을 대상으로 씹는 기능의 저하가 치매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8년을 추적 관찰했다.
씹는 기능은 1년 동안 밥을 삼키기 전에 평균적으로 씹는 횟수를 평가했다.
이 결과 남성의 경우 밥을 삼키기 전에 30회 이상 씹는 사람은 10회 미만으로 씹는 남성에 견줘 전반적인 인지기능 및 기억력이 더 빨리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30회 이상 씹는 남성의 치매 발생 위험이 10회 미만인 남성보다 2.9배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치매 중에서도 예후가 더 나쁜 알츠하이머병은 같은 비교 조건에서 발생 위험이 3.2배에 달했다.
평균적으로는 평소보다 밥을 씹는 횟수가 5회 늘어나면 치매와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이 각각 16%, 23% 증가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남성 노인에서 씹는 횟수 증가와 치매의 연관성은 뇌 자기공명영상(MRI)에서도 확인됐다.
씹는 횟수가 많은 남성일수록 저작 조절 및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영역(백질, 측두엽, 후두엽 등)의 용적이 감소한 상태였다.
반면 여성 노인에게서는 저작 횟수와 치매 위험 및 뇌 용적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노년기 저작 횟수 증가가 치매 병리에 대한 보상 행동일 수 있는 만큼 만약 나이가 들어 음식을 너무 오래 씹는 현상이 나타났다면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고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는 "식사할 때 씹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씹기를 통해 뇌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치매 진행에 대응하려는 생체 내 자발적인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와 함께 전두엽 피질 관련 네트워크의 구조적 변화를 동반한 뇌 용적의 감소도 노인의 씹는 능력과 인지 기능 저하를 연결하는 핵심 공통 병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