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빙’에서 ‘웰 다잉’까지...이 모든 것 담아야 비로소 ‘웰니스’
‘웰 빙’에서 ‘웰 다잉’까지...이 모든 것 담아야 비로소 ‘웰니스’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19.06.24 09:00
  • 최종수정 2019.06.2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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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과 장묘시설을 결합해 하이브리드 건축을 탄생시킨 건축가, 문성주 히스토리움 대표를 만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관혼상제’]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사건들을 단 한 줄로 압축한 표현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표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생활 속에 녹아든 네 개의 글자를 합성한 단어가 있다.

다름 아닌 관혼상제(冠婚喪祭).

어른이 되어 사람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

그리고 서로의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리는 시점을 일컫는 ’.

이어 삶을 마감하는 ’.

끝으로 마감된 삶이 아닌, 후손에 의해 또 다른 삶의 여정을 기약하는 ’.

이 네 개의 글자가 하나의 단어로 합쳐친 연유는 물론 유교사회의 주요한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이 글자들이 인류 삶의 처음과 끝을 대변하는 최적의 조합이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웰 빙(well-being)’을 논할 때 웰 다잉(well-dying)’을 논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작과 맺음이라고 여긴다.

그런 관점에서인지, 건강하게 나이를 먹자는 취지에서 웰 빙에서 시작되는 웰니스(wellness)’를 끊임없이 추구해온 한국헬시이에징학회(회장 백남선)

최근 신개념 추모관을 앞세운 웰 다잉의 선구자 문성주 히스토리움 대표를 이사로 영입했다.

이에 본지는 문 대표를 만나 그가 추구하는 웰 다잉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하여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 답을 듣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때마침 내리는 초여름 6월의 단 비속에서...

- 편집자 주

[건축학도, 새로운 장묘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다]

[헬스컨슈머]히스토리움의 문성주 대표는 사실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이자 현업 건축사로 건축전문가이다. 그런 그가 장묘와 연관된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한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 가 본 화장장, 그리고 안치를 위해 들렀던 봉안당(납골당)은 제게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흡사, 신발장 같은 작은 공간의 봉안당은 더더욱 경악스러웠지요.

고밀도로 안치된 봉안시설에 그마저도 유골함이 다 차지하고 남은 공간은 아주 작았다. 그곳에 빽빽하게 적힌 저마다의 사연들을 보면서, 그는 우리의 사후 여정이 꼭 이럴 수밖에 없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우리의 삶이 사회적으로 문명과 비슷한 궤적의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탄생하면서부터 성장을 하고, 쇠퇴기를 거쳐 누구나 마지막은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리과정을 어느 위치에 두어야 할까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당연히 쇠퇴기와 소멸 사이에 정리과정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소멸되고 나서 (후손에게)수일 안에 정리되어지는, 참으로 허망하고 불합리한 생애주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급격한 근대화를 겪으면서 자녀와 대화가 부족했던 지금의 어르신세대들은, 경제적 풍요로움은 이룩하였더라도 사후 후손들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후손들이 삶의 일면만으로 평가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우려는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문 대표는 문득 미국 유학시절에 가보았던 중부 소도시 멤피스의 앨비스 프레슬리 기념관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곳은 앨비스가 생전에 이용했던 비행기, 의상, 심지어 기부했던 수표까지 그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다. 또한 앨비스가 마지막에 앉아서 사색했던 그곳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고 한다.

우리도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자기만의 기념관을 만들고 그곳에 사후 자신의 유해는 물론 후손의 유해도 안치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든다면 본인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도 갖고 후손으로부터는 공정한 평가를 더불어 지역사회에는 훌륭한 관광콘텐츠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우리의 삶의 생애주기에서 탄례(탄생), 혼례그리고 장례의 큰 세레모니를 갖는다고 언급되었다. 물론 이 모든 행사들이 중요하지만, 노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 장례가 가장 큰 행사이다.

하지만 그 며칠의 장례를 위해 막대한 재원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정작 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추억하는 데는 조그마한 신발장 정도의 공간정도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은 인색한 정도를 넘어서 화까지 나게 한다. 문 대표는 이 기념관을 예시로 들며 우리의 장사문화가 매장에서 급격히 화장으로 큰 변화를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1970년대 불과 20%내외의 화장률이 지금은 90%에 육박하고 있고, 대도시는 이미 거의 100% 화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홍콩 대만과 같은 수치죠. 특히, 2000년에 들어 한 대기업 총수의 화장 유언실행은 화장을 터부시하던 상류층의 태도를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장례문화의 변동이 생전에 정리하는 기념관과 함께 유해가 안치 가능한 공간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를 건축적으로 해결한 것이 국내 최초의 히스토리움 기념관이라고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인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많은 건축물 가운데 기념관이 참 많아요. 그런데 기념관이라면 흔히 위인 또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겨우 손에 꼽힐만한 이런 기념관 말고 '개인이든 가족이든 혹은 동호회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추억하고, 기리는 기념관을 살아서부터 죽을때까지, 그리고 후대에 이르기까지 찾는 장소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죠. 그것이 바로 히스토리움, 즉 역사라는 뜻의 '영'자와 혹은 터전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을 따서 만든 기념관입니다.”

문 대표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인간에게 남긴다는 것은 본능과도 같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기자는 왜 우리는 자신의 기념관 같은 것을 만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간단합니다.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자기 건물 한켠에 흉상도 설치하고 기념시설을 만들었다가 후손이 사후에 팔기라도 하면 철거되는 모습이 흡사 사후에 부관참시당하는 기분이라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기념관은 첫째가 봉안시설과 같이 허가되어 관리되는 부분이 결합되어야만 후손들에게 영속성을 줄 수 있고, 사후에도 언제든 부담없이 가족이 찾고, 후손이 즐겨찾는 그런 기념관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무한궤도를 반복하는 인류의 '참다운 웰 빙이자 웰 다잉'일 것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그는 더 깊은 건축의 학문적 여정을 걷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거기서 뜻밖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는 서울시립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93년도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여, 이듬해 개업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채 삽십도 안된 새파란 건축사가 대우, 동부건설등과 같은 굴지의 건설사 일거리를 도맡았었습니다. 무려 7000세대의 아파트를 짓는 데 저의 손길이 닿은 것은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었죠.”

문 대표는 이후 다른 기업에서도 많은 설계를 의뢰해와 개업3년만인 1997년에 서초동에 지하2층 지상6층의 자체건물도 매입할 정도로 승승장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끝없이 번창할 것만 같았던 그의 사업은 1988년 외환위기와 함께 그에게도 어려운 시련이 찾아 들었다고 했다.

수주한 많은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부도 처리 되었어요. 우리세대가 언제 외화위기를 겪어봤나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 장사: 장례(예식)+장묘(시설)

문성주 대표
히스토리움 문성주 대표, 사진제공: 히스토리움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초(苦楚)를 겪은 다음에 온 행운의 여신그리고 유학길]

외환위기 1년 전에 매입한 사옥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남부터미널역 근처의 6층짜리 건물이 때마침 경매에 나왔는데 두 번인가 유찰되어서 최소가격이 15억 정도였어요. 경매경험이 전무했던 저는 전에 아무도 응찰을 안했기에 15억을 써내면 낙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입찰 당일 가보니 8명인가가 응찰을 했고, 그 중 최고가는 22억에 달했습니다. 저는 최하위금액을 써냈더라고요. 그래서 경험이다 싶어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판사가 예비등록을 하겠냐고 해서 그냥 하겠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포기하더군요. 그런데 다음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어요. 최고가 낙찰예정자가 당시 사건번호를 95타경으로 적어야 하는데 당시가 97년도이니까 97타경으로 잘못 적은 거예요. 때문에 낙찰이 취소되고, 유일한 예비등록자인 저에게 낙찰을 허가 하더군요.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와~하는 탄성도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다음해에 외환위기 터지니 차라리 그때 낙찰이 안 되었다면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참 인간사 새옹지마, 정말 저에게 딱 들어 맞는 상황이 된 거죠

그 때문인가, 문 대표의 시선은 점점 더 멀리를 향하게 됐다고 한다.

폭풍처럼 지나가는 저의 파란만장한 건축사 초년시절이 어느새 자리를 잡아갈 때 찾아온 IMF는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저의 모든 걸 무너뜨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 좀 쉬어야겠다 싶어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사업과 달라 의뢰받은 설계가 종국에는 건물이 완공되어야 정리가 되거든요. 건축이라는 게 하루나 이틀 혹은 한두 달 만에 마무리 되는 게 아니잖아요?”

문 대표는 이 시점에서 4~5년간에 걸친 긴 정리기간을 마치고 그는 2004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UC대학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저희 어머님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 야야~ 공부도 때가 있느니라~’였는데 그제야 실감이 나더군요. 비교적 여유롭게 자란 유년시절 학교가 끝나면 학교 다녀왔다는 인사와 동시에 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친구랑 놀기 바빴거든요. 그럭저럭 한 2년 정도는 잘 버텼는데 3년차에 접어드니 이러다 제가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스스로 공부할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이왕 왔으니 실컷 하고 싶은 것이나 해야겠다 싶어 캠핑카를 빌려서 샌디에이고부터 벤쿠버까지, 또 벤쿠버에서 몬트리얼 등 등...아무튼 북미 횡단은 한 6번쯤 했을 겁니다. 남들이 보면 정말 럭셔리한 유학생이었어요(하하).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조금 여유 있고 해서 교수님들 초청해서 한식도 많이 대접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친해진 분들로부터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이후 지속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다 한국 장사문화의 현실에 대하여 건축가로서의 고민들을 전해들은 교수님께서, 봉안시설이 결합된 기념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건축가, 풍수적 해석에 심취하다]

귀국 후에는 기념관 사업지를 물색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고등학교 친구의 작은 아버지 별장이 매물로 나와 이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친구 작은 아버지는 용인에서 가장 큰 건설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새벽 골프 운동 중에 심장마비로 급사하시는 참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그 사업도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었고, 꼭 좀 매입해달라고 요청과 좋은 위치 등의 이유로 매입하게 되었다.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풍수명당인 용인이 좋다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이라는 말이 있다. 이 터가 바로 오늘날의 용인 건립지(양지면 주북리 58-4번지 일대)이다. 물론 건축가이자 미국 유학까지 한 전문가에게 이런 '풍수'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삶이란게 재미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문 대표가 지금의 사업지를 매입하고 한참 설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잠깐 짬이 생겨 강남의 한 대형 문고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풍수와 조경이란 책을 무심결에 집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편 순간 살구나무를 동쪽에 심으면 급살수가 있다는 문구를 보고 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그 별장 동쪽에 대형 살구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쪽의 살구나무와 그 건물의 주인의 갑작스런 사망, 지금도 섬뜩하다고 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비과학적 주술정도로 여겼던 풍수에 대하여 보다 심도 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는 통상 산자를 위한 공간해석인 양택과 죽은 자를 위한 묘자리 즉, 음택으로 나뉩니다. 물론 지금도 음택은 과학적이라는 확신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양택, 즉 주택은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고 있습니다

문 대표는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면역력 등 의학적 요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게는 침대 등 가구의 배치/문의 위치/수목의 선택 및 종류, 심지어 커튼의 두께나 색상에 이르기까지 풍수와 관련한 건축가의 재해석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예를 들어 늘 감기를 달고 사람은 운동이나 식습관도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의외로 잘못된 침대의 배치가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양택풍수에 관한 실증적 사례 몇 가지만 더 얘기해달라고 하자 그의 얘기가 막힘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아파트를 살 때, 주로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한 좌우 두 가구로 구성된 동일평면을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평형이면 거의 같은 가격을 형성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같이 사계절 태양고도가 차이가 있는 지역에서는 같은 남향이라고 해도 동면에 처한 가구가 서면에 접한 가구에 비하여 겨울철 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덜 덥습니다. 다시 말해 사는 환경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거죠. 물론, 관리비도 차이가 나고요.”

이어지는 또 하나의 예도 있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대전에서 서울 강남으로 옮기게 되어 집을 어디로 할지 풍수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같은 가격 출근거리에 목동이 나을까요? 아니면 잠실이 좋을까요?' 라고 물어보니 돌아온 답이 목동으로 가면 가정도 불화가 생기고 회사도 망해! 잠실로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대답이 과학적일까요? 근거가 있을 까요? 풍수를 알기 전까지는 근거 없는 요설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의외로 대단히 과학적이고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만약 목동으로 집을 구했다면 그는 매일 해를 마주보고 출근하고 집에 갈 때도 또 한 번 해를 마주보게 될 것입니다. 지속된 짜증스러운 환경은 반대의 환경을 가진 경우에 비하여 분명 가정이나 회사 모두 불리할 것임에 틀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동쪽의 살구나무도 마찬가지죠. 태양에너지를 활엽수로 크게 가리는 살구나무의 속성상 동쪽은 불행을 가져오지만 서쪽에 심었더라면 오히려 급살수가 아닌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고 있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풍수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질 모양새다. 건축을 전공한 건축사답게, 건축과 관련된 생활 실증적 풍수얘기가 풀어지다 보니 기자의 귀마저 솔깃하기까지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번 기회를 갖기로 하였다. 벌써 인터뷰한지 1시간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가를 바라보니 어느덧 새벽녘부터 내리던 빗방울도 잦아들고 있었다.

히스토리움 조감도
히스토리움 조감도, 사진제공: 히스토리움

[험난했던 민원합의 과정]

다시 이야기를 히스토리움 관련해서 동네 주민들과 갈등해소 과정에 대하여 물어봤다. 문 대표는 통상 인허가가 10년이 걸린다는 허가과정을 6개월이라는 초단기간에 따내는 기가 막힌 순발력으로 기념관과 봉안당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순발력에 그치지 않고 문 대표는 본인 특유의 인내력을 가미하는, 독특하면서도 괴팍한 사업기질을 부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업 허가를 내준 용인시에서는 집단민원발생 우려에 대하여 문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갈등해소에 많은 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기념관(봉안당)이 들어서는 인근 마을 11곳의 동의를 다 받아내지 않으면 절대 착공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용인시 측에서 호기를 부렸습니다. 추모의 터에 주변 잡음이 있다면 안 좋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일일이 마을을 찾아다니며 설득 작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두 곳의 마을 이장님들이 끝내 동의를 안 해주시더라고요. 결국 여러 번에 걸친, 그야말로 허리가 휘어질 정도의 읍소를 몇 차례씩 해도 안 되기에 마침내 전 주민 찬반투표를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제안에는 이장님들도 하는 수 없이 동의를 해주시게 되었고, 결국 투표 끝에 64%의 지지를 얻어 착공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16. 그러니까 만 8년에 걸친 주민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거친 것이죠. 그냥 해도 될 착공을 미루고 미룬 끝에, 오히려 전 주민의 축복 속에 건립되는 히스토리움의 역사를 창조하게 된 겁니다.”

지금도 이 일은 집단민원 발생 없는 봉안시설 건립이라는,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모범적인 갈등해소 모델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이 같은 합의가 있었기에 당초 1500평의 규모에서 3배를 넘는 대형규모의 기념관을 지을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지금 분양중인 기념관은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상의 길지로 관심을 받았던 명당 터라고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실/개인실/다인실/특별실의 기념실을 갖추었고, 다양한 프리미엄서비스의 일환으로 개인의 발자취를 영상화하는 한편, 개인 유품을 마치 예술작품을 전시하듯 차려놓았습니다."

그는 또한 봉안함도 미러클그래스(전류에 따라 투명/불투명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신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념공간 하나하나에 한사람의 인생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감동을 가져올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정든 가족들의 계보가 마치 하늘의 별이 수놓아지듯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으며, 전시과정은 거의 본인의사를 충분히 반영해주게 된다. 자료만 준비하면 전시전문가(archivist)가 기획하고 완성까지 함께한다. 이렇게 전시전문가가 참여하여 완성하는 다양한 전시형태와 기념물, 그리고 환상적인 문화적 공간의 조화는 놀라운 결과물을 빚어낼 것이다.

그렇다, 이곳은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이 나들이 하며, 자신의 지난날을 후손에게 회상하고 어려웠던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알려주어 위기를 극복하는 경쟁력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사후에도 고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기리기 좋은 '웰 빙 장소인 동시에 웰 다잉의 적지'로 평가를 받을 만 한 명소로 가꿔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본인이 살아서 완성한다는데 더더욱 의미가 있다.

 

[특허 받은 '웰 다잉']

문성주 대표는 위인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는 분들이 가족들의 존경과 사랑 속에서 영혼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장묘문화의 이노베이션을 완수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구상한 히스토리움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터를 가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자신감은 바로 특허(10-1697305)받은 장묘사업에서 나오고 있다. 내년 완공을 목표하고, 2021년에 안치를 목표로 한 이 사업은 현재 순탄한 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지난 2019531일 용인시에서는 또 한번(3차 설계변경) 사업규모 일부 확장을 위한 허가를 단행했다. 허가청에서 한 번도 허가해주기 힘들다는 봉안시설을 3번이나 허가한 것이다. 만약 완공 전에라도 히스토리움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차려진 모델하우스(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325, 17)를 가보면 된다.

이 부터가 남다른 장묘사업의 이노베이션이다. 미리 가 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라니.

마치 산자를 위한 아파트 분양이나 주택 분양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히스토리움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비로소 웰 빙에서 웰 다잉까지가 웰니스의 사전 과정이자 결과물이라고 느껴졌다.

개인의 죽음은 역사의 일부인 하나의 소사(小史)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죽음의 안식처야 말로 또 다른 삶의 터전이 된다는 사실마저도, 그리고 한국헬시에이징학회가 그를 각별하게 이사로 영입한 이유도 뚜렷이 알게 되었다.

 

*봉황포란형과 히스토리움의 길지 해석

봉황포란형의 주성(主星)은 상격룡(上格龍)인 삼공룡(三公龍)으로 주변에서 보기 드문 성신(星辰)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사위(四衛)가 주밀하여 견고한명당길지(明堂吉地)를 만드니 기운(氣運)을 순환시키고 갈무리 한다.

이 땅과 조대하는 안산(案山)은 옥대사(벼슬아치들이 허리에 차는 혁대)의 형태를 갖추어, 이곳이 귀한 자리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안산(案山)인 천마(天馬)는 후대에 귀()한 인물이 배출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변을 둘러치고 있는 나성(羅城)은 귀격(貴格)의 보국으로, 나성원국(羅城垣局)의 울타리를 두른 격이다. 옥대사 옆의 현면관(現面官)은 이곳을 향해 읍을 하는 형태이나 봉황으로도 볼 수 있으니, 이는 봉황이 둥지를 향해 날아드는 비봉귀소격으로 대귀격(大貴格)의 사격(砂格)을 갖추었다.

천기(天氣)인 물은 우수가 도좌하여 명당 앞에서 지현굴곡하고, '갈 지()'자와 '검을 현()'자의 형태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유거하니, 이는 정()이 있다 할 것이다.

<삼한풍수학회장(조수범 박사 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