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가
중국인들은 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가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19.07.25 09:00
  • 최종수정 2019.07.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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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차를 마시고, 유럽이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똑같은 이유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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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 중국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말하는 독특한 경험들이 몇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들 꼽는 것이 바로 미지근한 맥주가 아닐까 싶다.

맥주를 즐겨마시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하듯이, 달콤짭짤하거나 기름진 음식과 맥주는 훌륭한 조합이다. 그러니 달콤짭짤에 기름진 것은 기본이고, 여러가지 자극적인 향신료가 넉넉히 들어간 중국 음식과 맥주의 궁합은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식당에서 한상 거하게 요리를 채워놓고, 맥주를 시키면 정작 뜨뜻미지근한 맥주를 떡하니 가져다주는 경우는 솔직히 실망스럽기도 하다. 일부 사람들은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것이냐며 종업원에게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한반도는 축복받은 땅이다]

왜 중국인들은 맥주를 이렇게 실온으로 해놓고 마시는 것일까? 정답은 바로 ‘물’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맥주뿐 아니라 ‘음료’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액체를 차갑게 마시지 않는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반대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저 우물을 파서 물을 길어 마셨다. 이 평범한 묘사에는, 이 땅의 물이 그대로 음용이 가능한 몇 안되는 ‘단물’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중국의 많은 지역의 천연수는 석회질 암반에 고인, 미네랄이 과도한 ‘센물’이다. 또한 수질 역시 좋지 않은 편이다(이것은 환경오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의 토질 문제이다).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반 광천수 대신 탄산수를 주로 마신다.

중국의 가장 유명한 강인 ‘황하’가 흙빛을 띄는 흙탕물이라는 것, 그리고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인 비취색 호수들이 엄청나게 진한 미네랄을 품고 있어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물들은 맛이 텁텁하고, 음용시 복통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지어 위생상의 문제도 많다. 심지어 수돗물로 쓸 경우에도 수도관이 하루가 멀다하고 석회질로 막히고, 비누도 잘 풀리지 않아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조건이다.

이처럼, 환경오염이 없던 시대에도, 강물이나 지하수를 바로 마실 수 없다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꽤나 충격적일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한국처럼 축복받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당연한 이야기지, 오히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골칫거리를 안고 살아왔다.

 

[일찍 죽겠다고 찬물을 마시던 사람]

위와 같은 상황때문에 중국에서는 물을 되도록 끓여 먹어야 했고, 자연스레 차 문화도 발달했다. 물을 끓이는 과정에서의 살균 효과, 그리고 찻잎을 넣어 각종 과도한 미네랄을 흡수시키는 것이 바로 그 문화가 발달한 진짜 이유였다. 이런 생활습관은 사회 전반에 점진적으로 ‘찬물은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보편적인 인식을 심었다고 한다.

실제로 중국 명나라 말기의 대신 ’양련(杨涟)’은, 정치적 숙청을 당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자, 일찍 죽겠답시고 매일 아침 찬물을 마셨다고 한다(知珰意不可回,每晨起多饮凉水,以求速死).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진짜다.

또한 청나라시대의 외교관 ‘원조지(袁祖志)’는 중국과 서방의 가장 큰 차이중 하나가 바로 물마시는 습관이라며, 찬물을 마시는 유럽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기록을 남겼다(中土酒必温而饮之,泰西则皆冷以尝之).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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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술은 사실 오염된 물의 대용품이었다]

이 습관은 정수기술이 발달한 오늘날까지도 남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함께 언급되었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오랜 시간동안 침전/숙성을 거치는 맥주와 와인 등의 술문화가 발달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물에 있던 석회 등의 불순물들은 술통 바닥으로 가라앉고, 여러 미세한 오염물질들 역시 맥아와 홉, 그리고 포도 껍질 등을 통해 해결된다.

또한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광천수가 아닌 탄산수를 즐겨마시게 된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탄산수의 탄산은 석회질을 물에 녹지 않는 탄산칼슘으로 바꿔준다. 이런 방식으로 석회를 쉽게 걸러낼 수 있어, 18세기 즈음부터 이미 탄산수가 유럽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히려 정수기술이 발달해 미네랄이 풍부한 약알칼리성 물로 정수되고, 차와 맥주, 그리고 와인은 오히려 국가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아 거대한 산업이 되었으니 말하자면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중국도 지금은 생활양식이 많이 현대화되었고, 개혁개방 이후로 서구화된 식습관이 새로운 풍조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이제 중국 현지 식당에서도 시원한 맥주가 얼마든지 구비되어 있으니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말고, 다채로운 중화요리와 시원한 대륙 맥주의 조합을 즐겨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