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이야기(도시 '여리고') 9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이야기(도시 '여리고') 9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19.09.24 09:00
  • 최종수정 2019.10.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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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서 태어난 인류 최초의 도시, 여리고

[헬스컨슈머]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도시 ‘여리고(또는 제리코)’는 가나안에 세워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나안’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의 땅’ 가나안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에 쉽지 않은 황량하고 메마른 광야이다.

다만 아직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다. 풍요로움 끝에는 부패와 타락이 있기 쉽지만, 광야에는 순수함이 있었다. 게다가 가나안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몇 가지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된 생존의 땅]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물, 식량과 불 이외에도 2개가 더 있는데, 바로 소금과 땔감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류는 물가 근처에서, 식량과 소금을 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모여 살아야 했다. 가나안 황야는 오아시스, 식량인 보리와 밀 재배가 가능한 경작지, 그리고 종려나무 열매와 사해바다의 소금이 있었다.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가 모두 농사가 가능한 동시에 주변에 소금이 나는 강 하류에서 발원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 여리고]

농경을 통해 정착생활이 이루어진 후 인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소아시아의 ‘차탈휘위크 유적’이 대표적인 취락 마을이다. 물물교환이 상업과 교역으로 발전하면서 지금부터 1만 1천 년 전인 기원전 9000년경 가나안의 사해 인근 여리고에 인류 최초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구석기 말이었다. 오아시스와 종려나무 덕분에 여리고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 이곳에서는 샘 옆에 돌을 쌓아 만든 제단과 뼈로 만든 용기가 발견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법을 통해 이들의 제작 연대를 조사한 결과 1만 2천 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여리고의 언덕 위에는 성벽의 흔적도 존재한다. 1952년부터 1958년 동안, 영국의 캐슬린 케년 박사가 이끄는 발굴단은 4미터 높이의 성벽이 9천 년 전에 건설되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성벽과 탑은 발전된 사회 조직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문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믿던 시대의 도시가 발견된 것은 고고학적으로 대단한 성과였다. 인류는 소금바다 옆에 세계 최초로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해 인근에 인류 최초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은, 그곳이 교통의 요충지이자 교역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 유목민족들이 고기와 유제품을 가져와 여리고의 밀과 보리 그리고 소금 등과 바꿔갔고, 또 사막의 대상단이 여리고에 보급 목적으로 들러 그들의 주식인 종려나무의 열매인 대추야자를 사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리고는 남북 통상로인 계곡 길 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인근 요단강의 강폭이 좁아 이곳에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오아시스가 있어 사막 길 대상들의 중간 집결지였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여호와의 안배, 사막에서 준비된 삶]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신명기 8,7-8)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고 지칭한다. 광야와 사막 한복판이 풍요로운 땅이라니? 하지만 현대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곳은 의외로 인간의 생존에 너그러운 땅이었으며, 여리고는 바로 그 관문도시로 알려졌다.

  • 죽음에서 삶을 얻다, 사해의 소금

여리고의 주민들은 소금을 주로 사해에서 구했다. 생명체가 살 수 없어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사해(死海)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을 구했다는 것은 참 재밌는 사실이다. 이 호수는 신기하게도 강물이 들어오는 곳은 있는데 나가는 곳이 없다. 그럼에도 일 년 내내 엄청난 양의 물이 증발하면서 농도는 짙어지고, 그 때문에 주변을 소금기 땅으로 만들고 있다. 일반적인 바다의 염분 농도는 3.5%인데 사해는 자그마치 25%의 농도를 갖고 있다. 바닷물 보다 7배 이상 짜다. 사람이 물에 떠서 신문과 책을 읽는 사진은 이미 유명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 사막에서 곡식을 재배하다, 사일로와 화덕

또한 고고학자들은 여리고를 포함한 가나안 일대와 요르단,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의 산기슭에서 밀과 보리를 재배하고 염소와 양을 가축화한 정착지들의 자취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곳들에서 곡물 저장용 사일로와 빵 굽는 화덕이 있는 마을들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 사막의 생명나무, 대추야자 나무

지금도 여리고 오아시스 근처에는 종려나무가 많다. 일명 대추야자나무로 불리는 종려나무는 광야에서 먼 길 가는 사람들의 필수불가결한 귀중한 식량이다. 대추야자 열매는 그야말로 나무 가지가 꺾일 정도로 주렁주렁 열리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다산의 상징이었다. 큰 나무는 연 200~250kg의 열매를 거의 100년간 생산한다. 먹거리가 부족한 사막 사람들에게 대추야자는 당분과 탄수화물 공급원이다.

오죽하면 사막 민족들은 예로부터 대추야자 나무를 ‘생명나무’라 하여 숭상할 정도다. 요한복음 12:13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 찬미를 불렀던 것이 바로 이 종려나무 가지이다. 당시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승리와 환희의 표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단 과일로 알려져 있는 대추야자는 본래 사막기후에서만 자라는 과일이다. 재배에 적합한 조건은 연강수량이 많지 않은 모래땅으로 꽃이 피어 성숙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한 마디로 사막 지역에 특화된 과실이다.

칼로리가 높아 2개만 먹어도 식사대용이 되고, 비타민과 무기질 또한 다량 함유되어 있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사막 길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식량이다. 나중에 실크로드가 개발되고 대상단들이 그 머나먼 길을 왕래할 수 있었던 것도 대추야자 덕분이었다. 지금도 사막의 베드윈족은 말린 대추야자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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