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포) 10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포) 10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승인 2019.10.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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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가 칭기즈칸 신화를 만들었다

[헬스컨슈머]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하루 3끼로 계산하고, 365일의 1년을 80번정도 반복하게 된다손치면 벌써 87,600끼니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들 접하게 되는 이 녀석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밥상머리에서 말해주기 좋은 지식, 이것이 바로 '어른의 교양 이야기'다. 교양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임>지는 20세기를 마무리하며 지난 10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 100인을 선정했는데, 그중 1위가 바로 칭기즈칸이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인물이며, 13세기에 이 위대한 정복자가 차지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다. 정복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칸(왕)의 사망으로 몽골군이 회군하지 않았다면 서유럽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과학기술도 변변찮았던 그 당시, 고작 15만 명의 군사로 그 넓은 땅을 정복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몽골군이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 일대를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전성기 몽골제국의 영토, 자료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전성기 몽골제국의 영토, 자료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기동력, 그 놀라운 비밀]

몽골군의 이런 놀라운 성과는 바로 신출귀몰한 기동력 덕분이었다.

당시 보통 몽골 기병 한 명이 서너 마리의 말을 끌고 다니며, 길게는 하루 이동 거리가 200Km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러시아와 유럽은 전광석화와 같은 몽고군의 기습에 혼비백산했다. 이 정도면 당시의 전령보다 빠른 속도였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소리냐면, 공격받는 입장에서 전방의 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가진 전령보다 몽골 부대가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몽골군의 비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기동성을 저해하는 보급부대조차 없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군대가 움직일 때는 그 뒤를 따라가는 보급부대가 있는 것이 상식이다. 식량과 보급품들을 지원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전투병 보다 이러한 보급부대 인원이 더 많았다. 하지만 대규모 보급부대와 같이 움직이는 전투부대는 기동력이 빠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이러한 보급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행군 속도가 빠르고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다. 그 시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몽골군의 비밀무기, 육포가루]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몽골군은 보급부대 없이 장병 스스로 자기 먹을 걸 안장 밑에 갖고 다니며 스스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급할 때는 따로 식사시간이 없이 끊임없이 달리면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말젖 분말과 육포가루였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 의하면 몽골군은 4~5kg 정도의 말젖 분말을 휴대하고 다니다가 아침 무렵에 500g 정도를 가죽자루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저녁 때 불려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투 중에는 ‘보르츠’라고 불리는 육포가루를 물에 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의 육포는 주로 소고기로 만들었으며, 경우에 따라 양고기, 말고기, 물고기 등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군은 겨울에 소를 잡아 살코기 부분만을 결을 따라 두께 2~3cm, 폭 5~7cm 정도로 찢어서 줄에 매달아 바싹 말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포를 다시 갈아서 가루로 만들었다고 한다.

몽골군은 보르츠를 깨끗이 씻은 동물의 위나 오줌보로 주머니를 만들어 보관했는데, 이동중에는 이를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필요할 경우 물에 불려 먹었다. 소나 양의 오줌보에 소 한 마리분의 보르츠가 들어갈 정도로 부피가 작고 무게도 가벼워 휴대성이 탁월했고, 2∼3년 장기 보관해도 상하지 않았다.

서너 숟가락의 육포가루만 물에 타 먹어도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바짝 말라있던 육포가루가 뱃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올라 공복을 채워주기 때문에 한 봉지의 육포만 있어도 일주일치 비상식량이 됐다. 특히 전쟁 중에 불을 피워 조리를 할 필요도 없어 부대가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도 않았다. 이게 바로 몽골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햄버거, 음식계의 정복자?]

이런 식사방식의 기원이 '햄버거'라면 상당히 희한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유목민이던 몽골인들은 굳이 전쟁때가 아니더라도 휴대용 식사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그들은 양고기나 쇠고기를 적당히 손질해 안장 밑에 넣고 다녔는데, 안장의 무게 등으로 눌려진 고기는 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육질이 연해졌고, 말의 체온 덕에 숙성까지 가능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망아지 한 마리분의 고기가 있으면 몽골전사 100명이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몽골의 침략 이후 지금의 햄버그스테이크와 비슷한 이 고기 요리를 ‘스테이크 따르타레’(steak tartare)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몽골 스테이크’라는 뜻이다.

이후 이 요리는 14~15세기에 독일의 함부르크까지 퍼져나갔다. 그 뒤 함부르크에서 뉴욕으로 건너간 이 요리를 미국인들은 함부르크에서 왔다 하여 ‘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라고 불렀다.

몽골군은 다진 고기와 육포를 먹으며 세계를 정복했고, 이렇게 탄생한 ‘햄버거’는 세계 곳곳의 식당을 정복했다. 이 정도면 햄버거를 ‘음식계의 정복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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