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응급처치?
가슴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응급처치?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19.10.29 09:00
  • 최종수정 2019.10.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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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볼펜으로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문제의 그 장면, 사진 출처: 드라마 'W'
가슴에 볼펜으로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문제의 그 장면, 공격이 아니라 치료다. 사진 출처: 드라마 'W'

[헬스컨슈머]한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웅성거리는 인파 속에서, 젊은 의사가 뛰쳐나와 가슴통증으로 쓰러진 환자의 가슴에 볼펜을 꽂아버린다. 기자는 이 장면을 드라마에서 처음 보고는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사람의 가슴에 바람구멍을 내는 것이 응급처치라고?

이것은 ‘기흉’이란 질환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8년도 자료를 보면, 2017년 기흉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 84.9%가 남성이고, 10대가 30.8%, 20대가 18.6%로 10대와 20대 발병률이 전체 환자의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와 20대의 젊고 마른 체형의 남성에게서 잘 생긴다는 이 질환의 정체는 무엇일까?

통계, 자료제공:
국내 기흉 환자 통계, 자료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흉이 무엇이길래?]

기흉이란 폐(허파)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강 내에 모종의 이유로 공기가 꽉 차서, 폐가 찌부러져 호흡곤란이나 흉부 통증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가슴에는 폐가 있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막(흉막) 안의 공간을 흉막강이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여기에 10~15ml정도의 수분만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선천적인 구조적 문제, 또는 후천적인 사고 등의 문제로, 공기가 들어가 팽창하면서 함께 있는 폐가 압박을 받는 것이다.

기흉이 발생하면 가슴에 통증이 오거나 호흡이 힘들어지는 등의 뚜렷한 이상증세가 있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가 이상을 감지하고 조기에 병원을 찾지만, 낮은 확률로게 새어나온 공기의 압력이 갑자기 갑자기 커져 주변의 심장이 한쪽으로 쏠리는 되는, ‘긴장성 기흉’이라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심장과 주요 혈관들이 압박되기 때문에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흉의 원인은 무엇일까]

기흉은 크게 일차성 기흉과 이차성 기흉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각각 원인이 다르다.

일차성 기흉

일차성 기흉은 주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에게서 잘 생기는데, 이런 환자들은 보통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라는 특징이 있다. 일차성 기흉은 폐에 특별한 질환 없이 생긴다.

폐의 표면에 비정상적으로 큰 공기주머니가 볼록 튀어나온 ‘기낭’이라는 병변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이 기낭이 터지면 기흉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기낭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통계적으로 보면, 흡연자가 기낭도 더 잘 생기고, 기흉 발생률도 높다. 역시 담배는 만병의 근원인가 보다.

이차성 기흉

이차성 기흉은 폐에 특정 질환을 오랫동안 앓은 사람에게서 말 그대로 이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로, 50대 이후 신체기능이 급속하게 저하되며 잘 생긴다. 원인이 되는 폐질환으로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혹은 폐기종이 가장 많고, 결핵, 악성 종양, 폐섬유증, 폐렴도 기흉을 생기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 질환들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흉의 증상]

기흉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은 가슴통증이다. 물론 이것 역시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숨을 쉴 때 가슴 안쪽이 뻐근해지는 통증이다.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서서히 발생하기도 하고, 운동과 상관없이 생기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증상은 호흡곤란 증상이다. 일차성 기흉이 발생한 젊은 환자는 신체기능에 크게 문제가 없어 호흡곤란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응급상황인 긴장성 기흉이 발생했거나, 신체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생한 이차성 기흉은 호흡곤란 증상이 통증보다 더 심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침, 가래가 갑자기 늘기도 하고, 유독 운동할 때만 통증이나 호흡곤란이 이전보다 심해지기도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기흉, 치료할 수 있을까?]

폐에 생긴 구멍의 크기가 작고, 폐 밖으로 새어나온 공기가 적은 경우에는 안정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될 수 있는데, 이때 코나 입으로 산소를 투여해 주면 더 빨리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새어나온 공기의 양이 많아, 폐가 정상보다 20%이상 짜부라졌을 때는 흉관이란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의 긴 튜브를 가슴 안쪽으로 넣어 새어나온 공기를 몸 바깥으로 빼주어야 한다(이것이 바로 드라마에서 본 ‘가슴에 바람구멍을 뚫는 응급처치’의 정답이다).

안타깝게도 기흉은 재발이 잦은 편이다. 폐 표면에 생긴 큰 공기주머니인 ‘기낭’을 제거하지 않으면 30-50%의 경우 재발하는데, 재발할 경우에는 기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기흉 수술은 대부분 흉강경 수술을 통해 하는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비교적 안전한 수술로, 예전 수술 방법인 개흉술에 비해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재발한 경우 외에도 흉관을 넣었는데도 폐가 펴지지 않고 4일 이상 공기가 계속 새는 경우나, 기흉이 양쪽 가슴에 동시에 발생한 경우, 긴장성 기흉이 발생한 경우 등은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을 했다고 해서 재발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받은 환자의 3-5% 정도는 재발한다고 보고되어 있는데, 그 원인으로 기낭이 수술 후에 새로 생기거나, 수술한 부위 바로 옆에서 공기가 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차성 기흉 환자는 그 근본적인 원인인 폐질환을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니 꼭 전문가와 제대로 된 상담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