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밥 좀 천천히 드세요. 네?
부장님, 밥 좀 천천히 드세요. 네?
  • 이소정 기자
  • 기사입력 2019.11.06 09:00
  • 최종수정 2019.11.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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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 느긋한 식사의 다양한 장점 이해할 필요 있어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헬스컨슈머]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고문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하는 직장인들이다. 회사 분위기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점심 식사를 여럿이 함께 해야 하다 보니, 주변 식사하는 속도에 맞춰 밥을 들이마시듯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하는 경우는 더 고역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본인의 평소 식사속도보다 과도하게 식사를 빨리하다 보니, 만성 소화불량 등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정말 외치고 싶다. 부장님, 밥 좀 천천히 드세요. 네?

 

[식당 줄 서는 데 30분, 먹는 덴 5분 걸렸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밥도 엄청나게 빨리 먹는다. 한국인의 식사 시간을 조사한 한 연구 결과, 총 식사 시간이 5분 미만인 경우는 7%, 5분에서 10분 미만은 44.4%, 10분에서 15분 미만은 36.2%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명 중 9명이 밥을 15분 안에 해치운다는 소리다. 이렇게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은 천천히 먹는 사람보다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위험이 훨씬 커지고 특히 지방간 발생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러한 습관이 오래 지속될수록 심장과 뇌혈관질환의 위험도 점점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입에 넣고 몇 번 정도 씹다가 그냥 삼켜버리는데, 이렇게 대충 씹은 상태의 음식물이 한꺼번에 위로 내려가게 되면 위에 무리를 준다. 음식물은 오래 씹을수록 잘게 부서지면서 더 많은 침과 섞인다. 이 때 침 속의 소화 효소가 분해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는 소화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음식을 대충 씹어 삼켜 소화가 어려워지면 위에 음식물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산이 위 점막을 더 자극하게 된다. 이는 소화 기능으로 이어져서 소화불량, 복통, 속 쓰림 등이 생기고 위염, 위궤양, 위암 등의 발생률을 높인다.

5분 내로 급하게 식사를 할 경우 30분 동안 식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잘 씹지 않고 빨리 음식물을 섭취하면 위산이 역류해 식도 점막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식사 속도와 위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약 1만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식사시간이 15분 이내인 그룹이 15분 이상인 그룹보다 위염 발병률이 2배 가까이 더 높았다는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천천히 오래 씹어야 배도 쏙 들어가죠]

식사를 충분히 했는데도 탕비실의 과자를 주섬주섬 먹고 있지는 않은가? 이는 빠른 점심 식사가 원인일 수도 있다. 식사 속도가 빠르면 포만감을 덜 느끼게 되기 때문에 과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렙틴과 그렐린의 작용 때문이다. 렙틴은 뇌에 음식을 충분히 먹었다는 신호를 보내 식욕을 멈추게 하는 호르몬이고, 반대로 그렐린은 뇌에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전하는 역할을 한다. 렙틴은 음식을 천천히 잘게 씹어 먹을수록 잘 분비되며, 보통 식사 시작 후 최소 15분이 지나야 분비된다. 그런데 만약 식사를 1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후다닥 끝낸다면? 당연히 이 렙틴이 작용하지 않아 배부름을 덜 느끼게 되고 군것질 거리를 찾게 될 것이다. 즉, 천천히 오래 씹으며 식사하는 습관은 포만감을 느끼게 해서 군것질을 끊게 만들어 준다.

또한, 천천히 오래 씹는 행동 자체에 체중 감량 효과도 있다. 음식을 씹는 행위를 ‘저작활동’이라 하는데, 일본 가나가와 치과대학이 저작활동과 체중 감량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약 60명의 여대생을 대상으로 10주 동안 식사 전 10분 동안 껌을 씹게 한 결과, 평균 3~4kg 체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을 꼭꼭 씹는 것은 비만 예방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저작활동을 하면 뇌를 자극해서 뇌로 가는 혈액량이 증가하고 뇌세포에 충분한 산소와 영양소가 공급되면서 치매 위험이 낮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음식을 잘 씹지 않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치매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입냄새와 체취까지 줄일 수 있다니!]

식사를 천천히 하는 것에는 앞에서 설명한 효과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먼저 밥을 급하게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메뉴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식을 천천히 먹을 시간이 있다는 것은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해치울 수 있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의미하며 더 건강한 식사를 선택할 수 있게 돕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업무에 다시 들어갔을 때 뱃속에 부글부글 가스가 차고 꾸르륵 소리까지 나는 민망한 경험,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음식을 급하게 삼키면 공기를 함께 삼킬 가능성이 높고, 위장에 가스가 차는 증상이 생기는데,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제대로 씹으면 뱃속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줄여서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꼭꼭 씹어 삼키는 습관은 음식물을 침과 잘 섞이게 하는데 침에는 장 조직의 염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 항균제와 표피 성장인자(EGF)가 들어있기 때문에, 소화기 계통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식사를 천천히 하는 것은 입냄새와 체취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대장 속에 사는 세균은 속이 부글거리게 하는 장내 가스를 만들어내는 주 원인인데, 이 세균이 내뿜는 분해 물질은 나쁜 체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음식을 꼭꼭 씹어 위에서 소화하기 쉽게 만든다면 덜 소화된 음식이 대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줄여 대장 속 세균의 먹을 거리를 줄이기 때문에 체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화를 돕고 영양 섭취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약 20~30회 정도 씹을 것을 권장한다. 건강에 도움을 주는 올바른 식사법은 다음과 같다.

- 음식은 최소 20번 이상 충분히 씹기

- 음식물을 완전히 삼킬 때까지 다른 음식물 섭취하지 않기

-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식사하며 속도 줄이기

- 식사할 땐 가능하면 20분 이상 천천히 식사하기

- 음식물을 꼭꼭 씹어 먹기

건강을 잃고 후회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원하지도 않는 생활 환경 때문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하루하루 쌓인 식사 습관이 미래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내일부터는 점심은 이제 조금 천천히 먹어보자고 당당하게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