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피자) 16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피자) 16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19.11.12 09:00
  • 최종수정 2019.11.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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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접시로 쓰였던 피자 이야기

 

 

피자는 나라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가장 인기 있는 대중음식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한 끼 식사가 젊은이들 사이에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다. 세계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식이 되는 과정은 역사라기보단 차라리 한 편의 드라마였다.

 

[빈민과 어부들의 소중한 한 끼 식사]

18세기 항구 도시 나폴리에는 수많은 빈민들이 모여 들었다. 아침 일찍 일 나가는 날 아침이나 점심 식사로 노점에서 파는 피자를 사먹었다. 어부들도 배를 타러 나가기 전 피자로 허기를 채웠고, 이들을 위한 어부 피자(pizza marinara)가 생겨났다.

(어부 피자, pizza marinara)
어부 피자(pizza marinara), 가난한 자들의 패스트푸드였다, 사진제공: 홍익희

당시의 피자는 오늘날과 같이 매력적인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집안에 변변한 조리 시설이 없어서 그저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사 먹어야 하는 초라한 노점 식사였다. 노점상들은 기름 바른 도마와 피자를 들고 다니거나 간이 탁자를 펼쳐 놓고 조각으로 잘라 팔았다. 아침 식사용 조그만 피자 조각은 1페니, 점심 도시락으로 제법 큰 것이 2페니였다. 그나마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피자를 먼저 먹고 8일 뒤에 갚는 피자 아 오토(pizza a otto)라는 외상 방식으로 사 먹었다. 이렇게 형편에 맞춰 작은 조각으로도 살 수 있는 피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먹을 수 있는 빵 그릇, 피타(pitta)]

원래 고대 시리아에서 유래되어 이스트로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든 원형의 넓적한 빵을 피타(pitta)라 불렀다. 고대인들은 이 빵을 그릇 삼아 그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었다.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의 플랫 브레드(plat bread) 만드는 기술을 접목하여 빵을 만들었는데, 그 형태는 현대의 피자와 비슷했다. 말하자면 에트루리아인들로부터는 아래로부터 뜨거운 열을 가해 반죽을 굽는 방법을, 그리스인들로부터는 반죽을 굽기 전 미리 올리브 오일, 마늘, 양파, 허브 등 토핑을 올리는 조리법을 이어받아 오늘날 피자와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고대 로마 시절부터 빵을 그릇 삼아 그 위에 여러 음식을 올려놓고 먹는 전통이 있었다. 당시 그릇은 청동 그릇이었다. 무겁기도 무겁지만 귀했기 때문에 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은 없었다.

덕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것을 대체할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빵으로 만든 그릇에 음식들을 덜어 먹는 것이었다. 플라첸타(placenta)라는 음식이 대표적이다. 얇고 넓적한 빵 피체아(picea) 위에 치즈, 꿀, 월계수 잎을 올려 만든다. 토르타(torta)라는 음식도 있다. 둥글고 납작한 빵 포카치아(focaccia) 위에 각종 야채나 버섯을 올리고 허브, 소금, 올리브기름을 뿌려 먹는다. 참고로 유럽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 큰 접시에 담은 음식을 함께 손으로 집어먹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핑거볼의 물로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 것이 정석적인 식사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식기는 언제 나타난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같은 시대의 다른 화가가 그린 식사광경 그림에도 고기를 자르는 나이프는 그려져 있지만, 포크나 스푼은 그려져 있지 않다. 유럽에서 손으로 먹는 식사법에서 나이프, 포크, 스푼의 식사법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18세기 중반부터였다. 포크는 16세기 무렵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것이 북방으로 전파되었고 반대로 스푼은 북유럽에서 생겨나 남쪽으로 전해졌다.

 

[피자의 발전, 정확히는 토핑의 발전]

이처럼 나폴리의 빈민 음식으로 탄생된 피자는, 기본적으로 둥글납작한 빵 위에 간단한 양념을 얹은 것이었다. 가장 저렴한 피자는 빵 위에 마늘과 소금, 라드라고 불리는 돼지기름 조각 등을 올린 것인데, 빵과 토핑들이 모두 하얀색이라 화이트 피자(pizza bianca)라 불렸다. 나중에는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토핑, 예를 들어 바질(basilico)과 같은 채소나 카초카발로(caciocavallo)같은 치즈, 체체니엘리(cecenielli, 멸치나 정어리 치어 볶음) 등을 올린 피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피자 하면 떠오르는 토마토 소스 토핑 역시도 나폴리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피자에 토마토와 더불어 모차렐라 치즈가 토핑으로 올라가면서 한층 맛이 좋아진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저 유명한 마르게리타 피자(pizza margherita)의 시초이다. 이렇게 치즈는 18세기 후반부터 피자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나폴리 피자, 정석적인 나폴리피자는 토핑으로 토마토, 치즈, 바질 이렇게 3가지만 쓰는게 원칙이라고 한다
나폴리 피자, 정석적인 나폴리피자는 토핑으로 토마토, 치즈, 바질 이렇게 3가지만 쓰는게 원칙이라고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나폴리 지역을 넘어 이탈리아 전국으로]

19세기에 나폴리를 중심으로 피자가 발전한 데는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역할이 컸다. 왕비는 입맛이 소박해 서민음식인 피자를 좋아했다. 궁궐에서 왕비가 피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귀족이나 일반 백성들에게도 피자의 인기가 높아졌다. 심지어 집에 피자 오븐을 직접 들여놓는 귀족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피자가 이탈리아의 국민음식이 되는 데는 한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한 사보이 왕가의 움베르토 왕과 마르게리타 왕비는 고향인 프랑스 요리에 질려 진정한 이탈리아 요리를 원했다. 때문에 시민들은 이들에게 바칠 특별한 음식들을 준비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얹어 초록, 하양, 빨강으로 된 이탈리아의 국기를 상징하는 훌륭한 피자였다.

왕과 왕비는 수많은 음식 중에서 이 멋진 피자를 선택했고, 그 뒤 이 피자는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마르게리타 피자(pizza margherita)라 불렸다. 이탈리아 통일 기운이 높아지던 시대의 흐름과도 절묘하게 맞았던 이 피자는 결국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 피자가 되었다.

 

[최초의 패스트푸드에서 국민 음식으로 재탄생]

본디 피자는 제대로 굽기 위해서는 나무를 때는 오븐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집에서 만들기보다는, 주로 사먹는 요리였다. 오히려 오븐만 있다면 굽기는 얼마 걸리지 않아, 미리 손질해 놓은 반죽과 다른 재료들을 손쉽게 올려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인 셈.

최초의 피자 전문점 포르트 알바, 사진제공: 홍익희
최초의 피자 전문점 포르트 알바, 사진제공: 홍익희

흔히들 피체리아(pizzeria)라고 불리는 화덕을 갖춘 최초의 피자전문점은 1830년 나폴리에 문을 연 '포르트 알바(Port’ Alba)'로, 지금도 성업 중이다. 이러한 상품성덕에 19세기 나폴리 거리에는 피자노점상이 흔했다.

수많은 피체리아 덕에 사람들은 피자를 저렴한 가격에도 빠르고 간편하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런 피체리아의 컨셉은 피자 대중화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의 서민음식 피자가 19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통일 과정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세계인의 음식으로]

피자의 세계화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19세기 후반 나폴리,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다. 이렇게 이주한 이들이 모여 살던 뉴욕, 보스턴 등 북동부 대도시들에 피자집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국 최초의 피자 전문점은 1905년 맨해튼 스프링 가에서 문을 연 ‘롬바르디’였다. 초기의 단골손님들은 피자로 향수를 달래고픈 이탈리아 이민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민자들 외에도 2차 대전 후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우고 돌아온 전역병사들에 의해 피자가 알려지면서, 피자는 본격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이탈리아계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가 피자 광이었는데 이들을 우상으로 여겼던 팬들이 덩달아 피자를 찾으면서 미국인의 피자 사랑이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소비층은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피자 역사까지 바꿔놓았다. 이탈리아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피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 즉 자본주의적 수요에 맞춰 피자집이 이탈리아 전국에 들어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로마, 밀라노, 피렌체 등 북부 지역 사람들도 피자를 알게 됐다. 이런 흐름은 특히 미국 문화를 선망하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1960~70년대 무렵 피자는 이미 이탈리아 국민음식이 되었다.

이후 피자 체인점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 피자는 외식사업의 성공적인 메뉴로 정착했다. 1954년 셰키스(Shakey’s)를 비롯해 1958년 피자헛(Pizza Hut), 1959년 리틀 시저스(Little Caesar’s), 1960년 도미노 피자(Domino’s Pizza)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1960년대 이후 피자는 미국인의 주식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선진 미국 문화를 동경하던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도 피자의 인기가 높아져 불과 50년도 안되어 피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나라는 1945년 미군들에 의해 소개된 것이 피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대중들에게 피자라는 이름을 최초로 선보인 곳은 1967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지의 기사였다. ‘제 6대 대통령 취임식 국빈 대접에 피자 파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경제사정이 썩 좋지 못해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피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의 대중화에 시동을 건 것은 경제성장 이후의 일이다. 1980년 전후로 피자는 서양음식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주로 경양식당에서 판매되었다. 당시의 식당들은 보통 피자가 이탈리아 전통음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식 피자를 팔았던 것이 특징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자는 술안주, 과자, 간식, 간단한 끼니 대용 등 다소 가벼운 음식이었다. 1984년에 최초의 이탈리아형 피자집 ‘피자가게’가 문을 열었으며 이듬해 피자헛이 점포를 열면서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이 열렸다.

오늘날 피자는 전세계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보잘것없는 서민음식이었던 피자가, 세계인이 즐겨먹는 음식으로의 변신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변화무쌍함’이다. 반죽 위에 토핑을 올려 불에 굽는 단순한 조리법 덕에, 만드는 사람이 좋아하는 식재료로 입맛 따라 쉽게 바꿀 수 있다. 크기나 두께도 다르게 만들기가 쉬워서 아이스크림처럼 한 손에 쥐고 먹는 피자 콘이나 파이 형태의 떠먹는 피자 등으로도 금세 변형이 가능하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대중들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피자는 마음만은 변치 않는 최고의 연인이다. 슬슬 추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늦가을, 저녁으로 따끈한 피자 한판은 어떨까?

출처: <세상을 바꾼 음식이야기>, 홍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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