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맥주) 23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맥주) 23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19.12.27 09:00
  • 최종수정 2019.12.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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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맥주는 뭐랄까, 굉장히 미묘한 음료다. 술은 술이지만 물처럼 마시는 문화에서 탄생한 것이다보니, 또 일반적으로 도수도 낮다 보니 술 취급을 아예 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맥주, 참 재밌는 물건이다.

[고대의 활력제 맥주, 신을 영접하는데 쓰여]

고대 수메르인들은 댐을 만들던 일꾼들에게 맥주를 물처럼 마시도록 제공했다. 그 무렵 맥주는 여러 곡물을 집어넣어 담아 걸쭉한 죽과 같은 형태로,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식사대용으로도 충분했다.

발효된 맥주에서 곡물을 거르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마시는 빵”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 죽 형태 맥주는 바빌로니아 맥주를 가리킨다. 실제로 당시에는 발효가 끝난 후에 밀가루를 더 넣어 다시 한 번 발효시켰다. 이런 맥주를 이용해서 부푼 케이크나 빵을 만들기도 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로 생각하여 사원 안에서 종교의식의 하나로 맥주를 빚었다. 그 무렵 술은 신을 영접하는 영험한 물질이자 나중에는 술 자체가 신격화되기도 했다. 이는 고대 브라만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에서도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이집트에서도 맥주가 신의 선물]

이집트에서도 5000년 전부터 맥주가 국민음료로 애용됐다. 실제로 맥주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절대신 오시리스가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고(古)왕국시대 벽화에는 구운 빵, 말린 포도로 만든 효모, 맥아를 사용해 맥주를 담그는 그림이 있다.

히브리 민족도 이집트에 기거할 적에 맥주 제조 기술을 습득하여 후에 가나안 지방에 맥주 양조장을 세웠고, 그들은 맥주를 세카(Sechar)라고 불렀다. 훗날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점거해 유대인 포로들을 바빌론으로 데려가 맥주 제조에 진력토록 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맥주의 진화]

오늘날의 맥주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시기는 중세이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수도원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그곳에 모인 지식층들은 보리 품종을 개량하고 양조기술을 연구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상당한 수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또한 이 외에도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순절 동안 금식해야 하는 수도사들은 하루 한 끼 작은 빵 하나로 버텨야 했는데 다행히 맥주는 허용했기 때문이다.

맥주가 처음엔 귀족들의 음료였지만, 길드 제도가 생긴 이후부터는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길드의 음주문화는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장인과 도제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 후, 소속감을 다지기 위해 코가 비뚤어지게 술판을 벌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현대 기업의 회식문화가 여기서 출발했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맥주는, 전문 맥주양조업자가 생겨나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문양조업자들은 더 독특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맥주에 각종 약초 등을 넣었다. 개중에는 더욱 빨리 취하게 하기 위해 독초를 넣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은 점차 건강상의 문제를 의심하게 되었다.

1598년 바이에른 공화국의 빌헬름 4세는 ‘맥주 순수령’을 공포했는데, 맥주를 양조할 때 보리와 홉, 효모, 물 이외에 어떤 것도 첨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까다로운 그 법 덕분에 독일은 오늘날 맥주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서민의 애환과 더불어 사랑과 예술의 뒤편에는 어김없이 맥주가 있었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 괴테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문호도 독서보다 맥주 마시기를 즐겼다. 셰익스피어 역시 극작가 시절 맥주를 즐겨 마셨다. 그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대본을 썼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맥주 사랑을 기념해 미국에서는 '셰익스피어 오트밀 스타우트'라는 이름의 흑맥주가 출시돼,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 대신 마시는 맥주]

14세기 유럽에서 포도주와 맥주는 물 대신 마시는 음료였다. 유럽의 물은 석회수가 많거나 세균이 많아, 정수 시설이 없었던 때라 물을 그대로 마시면 위험했다. 그런데 맥주는 만들 때 물을 끓여서 넣기 때문에 전염병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보통 한 사람이 하루에 2~3리터의 맥주나 포도주를 마셨다. 16세기 영국 가정에서는 하루에 1인당 3리터의 맥주를 마셨다. 그야말로 ‘물처럼 마신’, 아니 ‘물 대신 마신’것이다. 당시에는 보존 방법이 염장 외엔 거의 없어, 소금기 넘치는 음식들 덕에 갈증이 심했다.

또한 맥주가 취하기 위한 술이라기보다 식사 때 곁들여 먹는 음료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 목적으로 마셨다. 맥주 효모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섬유, 지방 등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쌉살한 맥주 맛의 원천, 홉]

이처럼 중세에 맥주는 귀족에서부터 농민들까지 일터나 의례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음료였다. 16세기까지 싹이 튼 곡물 ‘맥아’로 만든 술을 모두 “맥주”라고 불렀다.

오늘날과 같은 쌉쌀한 맥주는 16세기 이후부터 ‘홉’(hop)을 넣기 시작하면서 맥주는 깊은 맛으로 거듭났다. '맥주의 영혼'이라는 홉은 독일의 수도원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로 홉을 첨가해 맥주를 만든 것은 12세기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의 힐데가르데 원장이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녀는 홉에 대한 책까지 썼다. 우리가 흔히 호프라고 말하는 홉은 맥주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거품을 만들고 맥주의 부패를 방지하고 보존성을 높여주어 점차 홉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18세기에는 영국에 펍(pub: Public house의 줄임말)이라 불리던 술집이 등장하면서 맥주는 여가를 즐길 때나 정체성의 동질감을 확인할 때 마시는 대표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맥주 순수령]

1598년 바이에른 공화국의 빌헬름 4세는 ‘맥주 순수령’을 공포했는데, 맥주를 양조할 때 보리와 홉, 효모, 물 이외에 어떤 것도 첨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까다로운 그 법 덕분에 독일의 맥주는 엄청난 질적 상승을 실현했고, 덕분에 오늘날 맥주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맥주는 각국만의 스타일을 가진 음료로 발전했다.

 

[기네스 맥주와 기네스북]

가장 유명한 맥주라고 하면 하나를 꼽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 후보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기네스 맥주이다. 기네스 흑맥주의 진한 루비색의 비결은 바로 구운 보리에 있다. 기네스는 1759년 아서 기네스에 의해 더블린에서 탄생해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대표 흑맥주로, 1914년 세계 1위 맥주회사로 등극했다. 아일랜드 최대 명절인 3월 17일 '성패트릭데이'에는 기네스 맥주로 축배를 들며 퍼레이드를 즐긴다.

기네스하면, 사람들은 맥주와 더불어 '기네스북'을 떠올린다. 기네스의 4대손인 휴 비버 경은 사냥을 즐기던 중 골든 플로버라는 물새가 워낙 빨라 단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그는 친구들과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가 어떤 새인지 논쟁이 붙었다. 그러나 그 새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을 알고, 이렇게 특이한 기록을 모아놓은 책도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기록 왕으로 알려진 맥훠터 형제를 편집인으로 의뢰해 그들과 함께 세계 최고기록을 모아 1955년 《기네스북》을 발간했다.

 

[맥주 양조기술의 발전]

맥주 양조기술이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은 맥주 양조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맥아의 분쇄, 맥즙의 교반, 물 이송 등에 동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맥주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독일의 카를 폰 린데는 냉동기를 발명해 겨울에만 만들 수 있었던 발효맥주를 계절에 관계없이 양조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열처리 살균법을 발명해 효모를 제거함으로써 맥주의 장기 보관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덴마크의 에밀 한센은 파스퇴르의 이론을 응용해 효모의 순수배양법을 개발하면서 맥주의 품질을 한 차원 높였다.

오늘날 우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것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기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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