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이 암 세포 성장 억제한다
독감 백신이 암 세포 성장 억제한다
  • 이소정 기자
  • 기사입력 2020.01.10 17:00
  • 최종수정 2020.01.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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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러시대학교 연구진, 독감 백신이 유방암, 피부 흑색종 종양 성장 억제하는 효과 확인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헬스컨슈머] 최근 암 면역치료(cancer immunotherapy)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DNA를 기반으로 한 백신의 전달 체계 등을 이용한 것으로, 면역항암제로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암을 치료하겠다는 개념의 암 환자 치료법이다.

현재 일부 암 면역치료에서는 살아있는 병원체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치료법은 일부의 환자만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 있고, 반응하는 암 유형도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러시대 연구진이 독감 백신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차가운 종양과 뜨거운 종양]

종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종양이 아니다. 사람마다 차가운 종양(cold tumor)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뜨거운 종양(hot tumor)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차가운 종양은 염증세포가 없어 면역반응을 잘 일으키지 못해 암 면역치료의 반응이 낮은 종양을 뜻하며, 반대로 뜨거운 종양은 주변에 염증세포가 많아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 암 면역치료에 대한 반응이 높은 종양을 의미한다.

다수의 암 환자의 경우는 면역세포가 결여된 차가운 종양을 갖고 있다. 이런 차가운 종양은 암에 맞서 싸우는 면역체계의 저항력을 억제하기 때문에 암 종양의 면역 세포를 늘리면 면역계의 암세포 탐색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이런 차가운 종양을 뜨거운 종양으로 바꿔 면역항암제의 반응을 높이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뜨거운 종양은 암 치료제에도 좋은 반응을 보여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

 

[독감 백신이 ‘뜨거운 종양’ 만들어, 종양 성장도 억제]

이번 연구의 실마리는 미국 국립암센터(NCI)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왔다. 미국 러시대학교 연구진이 독감 바이러스의 폐 감염으로 입원한 폐암 환자의 경우 독감에 걸리지 않은 폐암 환자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차가운 암 종양에 독감 백신을 주입하면 뜨거운 종양으로 변한다는 걸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생쥐의 몸에 생긴 종양 한 개에만 백신을 넣어도 다른 종양까지 성장이 억제된다는 점도 확인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또한, 연구진은 생쥐에 독감 백신을 주입하면 면역계를 자극하는 수지상 세포(dendritic cell)의 종양 내 점유율이 높아지고, 종양 세포를 공격해 죽이는 'CD8+ T세포'가 증가함을 발견했는데, 이는 독감 백신이 종양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생쥐의 몸 한쪽에 생긴 흑색종에 백신을 주입했을 때, 해당 종양은 물론이고 백신을 주입하지 않은 다른 쪽 종양까지 크기가 작아짐 또한 확인되었다. 삼중 음성 유방암(metastatic triple-negative breast cancer)이 폐로 전이된 생쥐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유방의 원발암에만 독감 백신을 주입했을 때도 폐의 종양까지 성장이 억제됨이 확인되었다.

 

[사람과 쥐 유전자 95% 일치, 임상시험이 관건]

이번 실험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계절 독감 백신이 사용되어, 독감 백신을 이용해 새로운 암 면역치료법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에 2017~2018 독감 시즌에 FDA 승인을 받은 백신 5종을 사용했는데, 이 중 4종이 이번 실험결과와 동일한 효과를 보였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미국 러시대학교 의대 앤드루 즐로자(Andrew Zloza) 교수는 "희망을 갖고 추정컨대, 하나의 종양에 독감 백신을 주입하면 같은 환자의 다른 종양에도 면역 반응이 생기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요즘 주목받는 '면역 관문 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s)'와 함께 독감 백신을 주입하면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더 커진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면역관문 억제제에 반응 여부와 관계없이, 독감 백신만 단독으로 투여할 때도 종양의 성장이 저하되었다.

앤드루 즐로자 교수는 "사람과 생쥐는 유전자의 95%가 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치료법이 암 환자에게도 통하기만을 기대한다"며, "임상 시험을 통해 다양한 변수를 시험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은 통상 4단계로 진행되는데, 대략 8~10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계절 독감 백신이 이미 FDA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임상시험 기간이 대폭 단축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