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와 홈쇼핑의 같은 제품, ‘절묘한 우연’인가. (下)
다큐멘터리와 홈쇼핑의 같은 제품, ‘절묘한 우연’인가. (下)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19.05.29 14:12
  • 최종수정 2019.06.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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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규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주말 아침마다 나오는 서로 같은 내용의 다큐와 홈쇼핑, 역시 그것은 또 우연일까?

이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그것이 우연이라고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너무 당한 것이 많다.

이런 문제는 왜 발생하는지, 향후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방송과 제약의 결탁’ 문제점의 근본은 세가지다.

  1. 국가의 비합리적인 규제
  2. 그 비합리적인 규제에 대해서 결탁의 방식으로 나오는 기업과 미디어
  3. 의료인의 자긍심을 내려놓은 모습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국가의 비합리적 규제]

제68조(과장광고 등의 금지) ①의약품등의 명칭ㆍ제조방법ㆍ효능이나 성능에 관하여 거짓광고 또는 과장광고를 하지 못한다.

②의약품등은 그 효능이나 성능에 관하여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수의사 또는 그 밖의 자가 보증한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는 기사를 사용하지 못한다.

 

일견 보면 간단한 법률이지만, 이 조항의 유권해석으로 의료전문인의 의약품 광고 자체가 완전히 막힌다.

물론 이 규제 역시도 의도는 훌륭하다. 의약품의 과도한 광고를 막아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에 비해 그 영향이 과도하다는 것이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는 ‘의료전문인이 의약품 광고를 할 수 없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런 문제는 (1)비전문가 연예인들의 광고 (2)이로 인해서 부족한 광고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한 ‘합법적’ 꼼수가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비합리적인 규제에 대해서 결탁의 방식으로 나오는 기업과 미디어]

기업은 또 기업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의 타파를 위해서 연예인을 쓴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에 참여하며 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그것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눈높이가 높아진 소비자들의 요구수준에 맞추기 힘들어 전문적 지식의 인증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기업과 미디어의 결탁이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정보가 흘러넘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 역시도 높아져,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녹아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은 최후까지 TV방송을 신뢰한다.

기업과 미디어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결탁한다. 바로 저렇게 ‘우연히’ 의약품을 파는 채널의 옆에서 그 의약품이 좋다고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다.

미디어는 공공재이다, 따라서 국민을 위해 중립의 의무를 지닌다. 그런 의무는 이미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5월 19일 아침 8시, 실제 JTBC [알짜왕]방송(좌측 상/하)과 같은 시간의 NS홈쇼핑 모링가 상품(우측)
(좌 상/하) 5월 19일 아침 8시, 실제 JTBC [알짜왕]방송, (우) 같은 시간의 NS홈쇼핑 모링가 상품

[자긍심을 내려놓은 의료인]

또한 이 모든 것의 마무리에는 일부 비양심적인 의료인이 있다.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증한 전문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게 관한 권리와 책임, 존중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의료인들이 하는 행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씩 축적되며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5월 19일 아침 8시 홈쇼핑에서 모링가 상품을 파는 바로 그 순간에, 옆 채널에서 새싹보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열변을 토하는 전문인들을 보며 그 의구심은 깊이를 더해간다.

소비자는, 국민은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까.

 

[결론]

건강소비자연대 강영수 대표는 “OECD국가중 절대다수가 전문인의 일반약 광고를 허용한다. 심지어 미국이나 뉴질랜드는 대중을 향한 전문약 광고까지도 허용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의료전문인의 일반약 광고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물론 과도한 규제 개방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 현재의 우스운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악법도 법이다. 하지만 그 악법을 그냥 놔두는 것도 문제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을 먼저 고치고자 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터다. 그의 죽음은 현실을 외면한 대가이다.

현실은 그냥 내버려둔다고 변하진 않는다. 이제 국민이 움직여야 할 때다, 국가의 주권자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