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애저요리) 25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애저요리) 25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1.21 09:00
  • 최종수정 2020.01.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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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슬픈 역사, 애저 이야기

[헬스컨슈머]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하루 3끼로 계산하고, 365일의 1년을 80번정도 반복하게 된다손치면 벌써 87,600끼니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들 접하게 되는 이 녀석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밥상머리에서 말해주기 좋은 지식, 이것이 바로 '어른의 교양 이야기'다. 교양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돼지고기 요리 중에서도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것이 있으니, 바로 ‘새끼돼지’로 만든 요리다.

[애저란 무엇인가]

원래 애저요리란, 우리나라의 경우, 농가에서 태어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새끼돼지를 버리지 않고, 요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산, 또는 얼마 살지 못한 어린 새끼를 먹는게 슬프다하여 ‘슬플 애(哀)’ 자를 써서 애저라고 불렀다. 어린 새끼돼지라 한자로는 아저(兒猪)라고 쓰기도 하지만 애저라는 명칭이 좀 더 자주 쓰인다.

다만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명칭을 쓰진 않으므로, 여기서는 ‘새끼돼지 요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스페인의 구운 새끼돼지 요리, 그 뒤의 슬픈 이야기]

좌우지간, 이러한 애저를 재료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요리로 스페인의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곧 스페인어로 ‘구운 새끼돼지’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생후 2~3주된 새끼돼지를 통째로 화덕에 넣어 구워내는 음식이다.

조리방법은 새끼돼지의 배를 갈라 마늘을 넣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화덕에서 구워내는 방식이다. 중간 중간에 화이트 와인을 발라가며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게 포인트다. 어린 돼지라 육질이 연하고 담백해 맛이 좋고, 껍질은 바삭하니 그 맛은 가히 일품이다. 한 마리를 구우면 보통 8명이 먹을 수 있다. 필자에게도 역시 특별한 요리인데,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의 자녀들은 이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맛집'이 만들어낸 접시깨기 세레머니

뿐만 아니라, ‘코치니요 아사도’는 마드리드 근교 세고비야에 가면 꼭 먹어보아야 하는 관광코스의 하나이다. 실제로 애저요리 전문 레스토랑에 가면 이 통돼지 구이를 칼 대신 도자기 접시로 잘라 서빙 하는 걸 볼 수 있다. 접시로 잘릴 만큼 고기가 연하다는 뜻이다. 또한 그렇게 자르고 난 접시는 진짜 접시임을 증명하기 위해 던져서 깨버리는 것 역시 오랜 전통이다.

이 문화는 19세기, 그때 당시 ‘맛집’이었던 어느 레스토랑 시작되었다 전해진다. 주인이 칼이 없어 접시로 대신 썰다가 기름 때문에 미끌거리던 접시가 떨어져 깨졌는데, 이를 본 손님들이 맛집 퍼포먼스인 줄 알고 박수치며 환호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생겨난 접시 깨뜨리기 풍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이는 접시나 유리잔 깨기가 액운을 부수어 나쁜 기운을 없앤다는 전통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유대인의 마지막 남은 정체성을 앗아가다

이 애저요리에도 사실은 유대인의 슬픈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스페인 왕국은 1492년 3월31일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했다. 통일의 위업을 완성시키고자 가톨릭 국가로의 종교적 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전쟁 통에 바닥난 민심과 국고를 추스르고 보충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대인의 추방과 재산몰수만큼 적절한 게 없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 수도 톨레도는 경제, 문화 모두가 유대인이 주도하고 있었고, 상업도시 바르셀로나는 유대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 가톨릭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 17만 명은 스페인에서 한꺼번에 추방되었다. 이를 피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스페인에 남았는데, 이들을 ‘마라노’라 불렀다. 미들 대부분은 겉으로만 가톨릭 신자의 모습을 하면서 몰래 유대교 관습을 지켰다. 여기서 ‘마라노’란 스페인 사람들이 개종 유대인들을 부르는 경멸어로 돼지라는 뜻이다.

스페인 왕국은 이런 가짜 개종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애저요리를 먹는 행사였다. 유대인에게 돼지고기는 유대교 율법이 금지한 부정한 음식이다. 그래서 축제 기간에 모두가 애저요리를 먹도록 했다. 결국, 이 돼지고기 시식행사는 유대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풍습이 되었다. 이렇듯 애저요리는 스페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며 지내온 유대인들에겐 그 마지막 정체성마저도 버리도록 한 슬픈 사연이 담긴 음식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역마다 다양한 애저요리]

애저요리는 스페인 말고도 세계 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동물의 요리는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는 점에서 대부분 고급 식재료로 친다. 따라서 이를 찾아보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탈리아의 애저 통구이

이탈리아도 그중 하나인데, 스페인처럼 작은 돼지가 아니라 생후 6개월 정도 자란 돼지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애저요리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가지를 태우는 불 위에 어린 돼지를 쇠꼬챙이에 끼워 천천히 돌려 굽는 방식이다. 축제에서 많이 선보이는데 주로 소금을 뿌려 먹거나 빵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필리핀의 레촌 바보이

아시아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필리핀에서 접할 수 있는 ‘레촌 바보이(Lechon Baboy)’는 화덕에 구운 통돼지 요리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음식문화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의 카오루주

중국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 바로 광동식 애저요리인 ‘카오루주(烧乳猪)’다. 여기서 루(乳) 글자는 문자 그대로 젖의 뜻이 아닌, 젖을 아직 떼지 못한 어린 새끼를 의미한다. 이 요리는 숯불에 붉은 색을 띨 때까지 구워내고 잘라낸 조각들을 얇은 밀가루 전병과 파, 새콤달콤한 야채절임과 함께 먹는다.

한국의 애저찜과 회

한국 애저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돼지가 유명한 전북 진안과 제주도에서 애저요리가 발달했다. 진안의 애저찜은 사산한 돼지를 전피, 인삼, 마늘, 생강, 청주를 넣고 푹 끓여내어 부드러운 백숙처럼 먹는 게 특징이다. 제주에는 애저회 역시도 있다고 하니, 궁금한 사람들은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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