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두구와 뉴욕)28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두구와 뉴욕)28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2.04 13:00
  • 최종수정 2020.02.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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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맞바꾼 육두구 산지

[헬스컨슈머]육두구(넛멕, Nutmeg)이라는 향신료가 있다.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가 원산지인 육두구는 '사향 냄새 나는 호두'라는 뜻으로,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미각을 잃게 한 주범이기도 하다.

[금과 맞먹는 후추, 그 10배의 육두구]

17세기 후춧가루는 그야말로 금값이었다. 실제로 같은 무게의 금가루와 가격이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무사히 후추가루를 싣고 돌아오는 배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현지 생산가의 100배 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게 후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후추의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향신료가 있었다, 바로 육두구였다.

따라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육두구의 원산지인 반다 제도를 장악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1621년에 네덜란드인들은 천여 명의 군인들과 10여척의 전함을 이끌고 반다 제도로 쳐들어갔다. 여기엔 심지어 일본인 용병인 사무라이들까지 있었다.

그들은 영국군을 물리치고 원주민 대부분을 죽이고 부락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반다 제도 네이라 섬에는 식민 지배를 위한 나소 요새가 건설되었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야만적 침탈로 육두구를 독점 매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향신료에는 피의 역사가 함께 했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곧 자본주의 종자돈은 이렇게 대항해 시대의 무수한 살육과 약탈 행위를 통해 마련되었다.

육두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육두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육두구 가격의 통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독점을 통해 육두구 가격을 통제했다. 가격이 비싸지면 대량으로 재배했고, 반대로 싸지면 육두구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내는 식으로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이득을 보았다.

육두구는 열매 속에 든 씨앗 부분을 갈아서 만든다. 후추나 정향에 비해 향이 자극적이지 않지만, 묘하게 고급스런 향미가 나며 누린내나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그 외에도 씨앗을 감싸고 있는 붉은 껍질 역시 메이스(mace)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향신료로 쓰인다. 유럽에 메이스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오히려 이게 육두구보다 인기가 많았다. 때문에 육두구와 메이스의 관계를 몰랐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경영자들이 반다제도에서 육두구 나무를 전부 베어버리고 메이스 나무를 심으라는 명령을 했다는 우스운 설도 있다.

뉴욕시 전경,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시 전경,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전쟁의 시작, 항해조례 법안]

1660년 영국의 2차 항해조례 법안은 설탕, 담배, 목화 등 중요 상품은 영국 식민지로부터 영국과 영국령으로만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돈 되는 상품은 영국령끼리만 무역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무역 강국인 네덜란드의 목을 조르자는 의도였다. 게다가 1663년의 3차 항해조례는 더 가관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아메리카 영국 식민지로 수송되는 모든 화물은 먼저 영국에 들러 육지로 올려 진 후 식민지로 재선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다른 국가로부터 식민지로 향하는 화물에 영국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해상권을 장악한 영국이 바다의 통행세를 걷게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식민지와 다른 국가 간의 직접무역을 제한하려는 의도였다. 예전의 열강은 이렇게 무대포였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1665년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은 그해 7월 브레다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2차 전쟁은 네덜란드의 승리였다. 1667년 전쟁의 종식과 함께 승전국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 반다제도와 사탕수수 산지인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내주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육두구와 사탕수수 산지가 네덜란드에게 경제적 가치가 더 높았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크나큰 손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 이긴 네덜란드가 뉴욕을 포기한 건 큰 실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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