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확대 조치는 추가 검토 필요”…中대사 “한국, WHO 따라야”
[헬스컨슈머] 이른바 ‘우한폐렴’으로도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끝을 모르는 확산세를 보이면서 세계 각국의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발생 두 달 만에 확진자가 2만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도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국제사회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中유학생 ‘1만 명’ 입국 이어져…‘중국인 입국금지’ 청원, 67만여명 동의]
이에 국내에서는 바이러스 추가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으로부터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중국 체류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발병 초기 중국의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도 실제 감염자와 사망자는 더 많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금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국내 대학들의 개강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국내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7만 명 중 1만여 명이 지난달 21일 이후 입국한 사실이 교육부를 통해 알려지면서, 바이러스 유입에 대한 공포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일 오후 3시 기준 67만여 명이 동의를 했다.
이 같은 여론이 점차 확산되자 앞서 정부는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 대한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우한에서 다른 지역을 경유해 입국할 경우 감염자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최근 ‘후베이성’에 방문한 이력이 있는 외국인에 한해 입국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4일 0시부터 해당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후베이성 안 갔다” 한 마디면 통과…입국 거부 ‘0건’]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조치에 여론은 오히려 들끓는 양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중국 전역으로 확산돼 후베이성 지역에만 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후베이성 방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마저 허술하다는 것이다.
현재 외국에서 한국행 항공권을 발권하는 경우 최근 14일 이내에 후베이성 방문 여부에 답변해야 하고, 국내 입국 시 건강 상태 설문지를 통해 증상 유무를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이 여행객의 주관적인 답변에만 의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허위답변을 걸러낼 수 없어 실제 건강상태나 후베이성 등 발병지역 방문력에 관해서는 객관적으로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또 실제 검역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현행 방식은 체온계로 여행객의 발열 여부를 확인하고 육안으로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 유무를 확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염 후 바이러스 잠복기인 사람이나, 무증상 감염자, 해열제 복용자 등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된 이후 외국인의 입국이 거부된 사례는 5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단 한 건도 없었다.
[의협, “방역 외적인 요인 고려하다 골든타임 놓친다”]
이에 의사단체도 정부 방침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의 담화문을 통해 정부의 검역 강화와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와 중국 항공사 운항 제한을 권고한 바 있다. 의협은 지난 3일 발표한 4차 담화문에서도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산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면서 “어제(2일) 발표된 조치만으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감염학회와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도 지난 2일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후베이성 제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후베이성은 중국 당국이 이미 봉쇄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입국제한은 실효성이 없다”면서 “전체 발생자의 40%가 후베이성 외의 중국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회장은 “방역 외적인 요인을 고려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경우 가장 중요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잃을 수 있다”면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입국 금지를 주장했다.
[미국 등 26개국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EU “논의 중”]
최대집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여행과 교역의 제한이 불필요하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속도와 감염력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사례를 보면 감염력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여행과 교역의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WHO의 권고를 따르는 대신, 자체적인 결정을 내려 중국에서의 입국을 차단하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2일 오후부터 최근 2주간 중국 전역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싱가포르도 최근 14일간 중국 본토를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과 공항 경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외 호주와 뉴질랜드 등 모두 26개 국가가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아직 입국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유럽연합(EU)도 가세해, 유럽연합 국가들 간 국경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솅겐조약’을 염두에 두고 20여개 국가들이 동시에 입국 거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확대 조치는 추가 검토 필요”…中대사 “한국, WHO 따라야”]
한편 국내에서는 오늘(5일) 2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확인돼 전체 확진자는 모두 18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바이러스 확산 방지 대책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본부장은 중국 전역에 대한 추가 입국 금지 요구에 대해 “역학조사 결과가 추가로 나오는 것을 일단 확인하고, 그 결과 등 관련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확대 조치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싱하이밍 신임 주한중국대사는 4일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이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장 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기구다. WHO에 근거했다면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한국 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