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고추) 29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고추) 29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승인 2020.02.1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스컨슈머]우리 한국인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한다면 단연 김치이다. 특히 겨울철에 먹을 김치를 위해 온 가족과 친척들이 둘러앉아 김장을 담그고 이를 나누어 먹던 풍습은 우리 고유의 ‘나눔 문화’였다. 이러한 우리의 ‘김장문화’가 2013년 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김치가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빨간색이 된 지는 얼마 돼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로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

[신대륙 발견의 또 다른 보물]

중세시대 유럽의 향신료 탐험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밟은 땅이 인도라 굳게 믿었지만, 그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결국 후추는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감자와 고추를 발견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일기에 ‘후추보다 더 좋은 향신료’라고 고추를 평했는데, 그만큼 매력적인 맛이었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 고추는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인들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16세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져나간 고추는 현지인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추는 1세기 만에 전 세계로 전해졌고,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만큼 고추는 신대륙과 함께 발견한 또 다른 보물이었던 셈이다.

 

[빨간 후추(Red pepper, 고추]

왜 고추는 후추(pepper)와 종 자체가 전혀 다른데, 레드페퍼(red pepper, 빨간 후추)란 이름이 붙여졌을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493년 콜럼버스는 인도(실제로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증거로, 현지에서 발견한 빨간 후추(고추)를 스페인에 가져왔다. 후추(pepper)와는 많이 달랐지만 후추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를 ‘빨간 후추’라 불렀던 것이다.

한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달콤한’ 고추, 파프리카는 어떨까? 부드러운 고추의 변종인 파프리카는 미국의 열대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의외로 파프리카가 사랑받기 시작한 곳은 동유럽과 터키 쪽이다. 파프리카는 터키를 대표하는 향신료로 쓰인데다가 오스만제국 당시엔 헝가리로도 전파되었다. 파프리카는 단맛부터 매운맛까지 다양한데, 이 중 순한 맛의 파프리카 가루 역시 헝가리를 대표하는 향신료가 되었다. 헝가리식 쇠고기 스튜 ‘굴라시(Goulash)’는 파프리카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렇게 보자면 고추는 매운 맛, 순한 맛 가릴 것 없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중독성 있는 매력적인 매운 맛]

고추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효용의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고추는 요리 보존 효과가 뛰어나고, 해충 번식을 예방한다. 때문에 고추가 들어간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에 비해 더 오래 상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었다. 또 고추는 잃어버린 식욕을 북돋아주는 기특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원래 식물이 동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피 물질이다. 그러나 고추의 캡사인신은 인간에게는 유익함을 준다. 인간이 고추를 먹으면 캡사이신이 내장 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캡사이신 성분의 매운 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이다. 인간의 혀에 매운 맛을 느끼는 부분은 없다. 캡사이신은 혀를 강렬하게 자극해 통각을 만들어낸다. 캡사이신의 매운 맛은 일종의 통증인 셈이다.

일단 혀가 통증을 느끼면 몸은 그 통증의 원인인 고추를 빠르게 소화하고 분해시키기 위해 위장을 활발하게 움직인다. 우리 몸이 캡사이신의 독성을 중화해서 배출하려고 다양한 기능을 총동원하면 순간적으로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갑작스러운 캡사인신의 침투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한 뇌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배출한다. 엔도르핀은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진통 작용을 하며 피로와 통증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매운 맛 덕분에 쾌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고추 소스]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고추는 그 종류만 해도 150여 가지에 이른다. 매운 맛도 제각각이다. 기피물질의 특성상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는 고추가 매운 맛이 더 강하다. 고추는 보통 가루나 소스 형태로 여러 나라에서 애용되는데 고추장 형태로 만들어 먹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출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미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 나무사이, 2019. 8)

지금까지도 고추의 매운 맛은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우리가 고추장을 즐겨먹듯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를 중심으로 ‘살사, 타바스코, 칠리’ 등 매운 소스가 발전했다.

동남아에서도 덥고 습한 날씨로 음식에 곁들이는 양념이 발달해 인도네시아의 ‘삼발’, 태국의 ‘남프릭’ 등 매운 소스가 개발되었다. 또 태국에서는 똠양꿍 등 요리에 고추를 듬뿍 집어넣는다. 그리고 인도에선 매운 품종의 고추가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특히 아삼지역은 엄청난 매운 맛을 자랑하는 ‘부트졸로키아’ 고추가 재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고추의 한국 입성]

앞서 언급했듯이 고추는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신료이지만, 우리 고추 역사는 불과 4백년 밖에 되지 않는다. 고추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 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임진왜란 즈음에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고추는 포르투갈 무역선에 실려 1540년대 마카오와 중국 무역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 규슈까지 전해졌다. 그렇게 고추는 일본을 거쳐 지금의 부산인 동래의 왜관(일본인 무역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고추 재배가 경상도 일대로 퍼져나간 것이다. 재배도 어렵지 않은 덕분에 고추는 남에서 북으로 점차 확산되었다.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

여기서 고추의 단짝 음식,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한 김치는 고추 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하지만 김치가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다. ‘국물이 많은 절인 야채’란 의미의 ‘침채(沈菜)’가 김치의 어원인데, 여기에 고추를 넣어 담그게 된 것은 1700년경부터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마늘이나 산초, 생강, 파 등을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를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발효시켜 먹었다.

1614편 편찬된 <지봉유설>에선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왜(倭)개자’라 불렀으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왜초‘라고 일컬었다. 당시엔 고추를 일본인(왜놈)이 조선인을 독살할 목적으로 가져온 독초로 취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해오다 향신료 가격이 오르면서 점차 고추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18세기 들어 고추가 김치나 젓갈의 변질 방지와 냄새제거의 용도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의 재료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뒤 고추를 고초(苦草, 苦椒)라고 불렀는데 이는 후추같이 고미(苦味), 곧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추의 매운 맛이 서민들 밥상에 정착하게 된 것은 불과 19세기 초였다. 한국 요리가 맵다는 고정관념도 실제로는 2백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고추는 단순한 양념에서 나아가 고유한 민속주도 낳았다. 고추감주라 하여 고춧가루를 탄 감주는 감기를 낫게 하는 약으로 먹는 민속주였다. 또 민속 약으로도 쓰였는데, 신경통, 동상, 이질, 담 등에 민간요법에 쓰이기도 했다. 일례로 한국 사람들은 이질 등 세균감염성 소화기 질환에 비교적 강한 반면,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이질에 매우 약한 걸 보면 고추가 확실히 내장 등 소화기관을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고추, 이렇게 매력적인 고추는 우리 민족과는 때려야 땔 수 없는 찰떡궁합의 향신료이다. 수치로 봐도, 우리나라는 1인당 1일 고추 소비량이 7.2g에 달해, 전 세계에서 가장 고추를 많이 먹는 민족이라고 한다. 심지어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유일한, 명실상부한 매운맛 대국이다. 이제 고추의 알싸한 그 매운 맛은 세계인들이 자꾸 찾는 맛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않아 김치의 세계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