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1)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1)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2.26 13:00
  • 최종수정 2020.03.05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유대인은 코셔 음식을 먹는가

[헬스컨슈머]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민족(또는 종교집단)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옷차림부터 생각하는 것, 심지어 먹는 것까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유대인들에게는 먹어선 안 되는 음식과 먹어야 하는 음식이 따로 있다. 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코셔 율법이다.

코셔 율법은 매우 중요해서 안식일 율법, 가족 정결 율법과 함께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3대 기본 율법 중 하나로 통한다. 코셔(Kosher, כָּשֵׁר)라는 말은 ‘합당한(fit)’ 또는 ‘적합한(proper)’이라는 뜻이다. 유대인이 성경인 토라에 기록된 코셔 율법에 비추어서 유대인들이 먹기에 ‘합당하고 적합한’ 음식이 바로 코셔 음식인 것이다.

음식은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친밀감을 나누고 사랑을 공유한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유대인들에게 코셔 음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코셔 율법과 긍휼]

첫째, 긍휼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의 인격의 핵심에는 긍휼(안쓰러워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긍휼이란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돕고자 하는 열정을 말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인격을 개발하는 길은 긍휼함을 고양하는 것이다. 코셔 율법도 긍휼과 관련이 깊다. 코셔 음식에 해당하는 초식동물은 대개 인간에 비해 매우 연약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도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즐기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거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방법으로 도살해서도 안 된다. 사냥과 잔혹한 방법으로 도살된 코셔 동물은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코셔 동물을 도살할 때 최대한 고통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가장 날카로운 칼로 가장 빨리 목숨을 끊도록 해야 한다. 코셔 도살장에서는 아주 날카로운 칼로 단 한 번에 동물의 경동맥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도살이 이뤄진다. 경동맥의 피가 쏟아지면 동물은 몇 초 안에 의식을 잃고 죽게 된다. 이처럼 고통을 줄여주는 도살은 사람이 동물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동물복지다. 이런 도살은 약한 동물에게 갖는 긍휼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동물에게 얼마든지 잔혹하게 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코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차원 높은 배려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런 배려심은 우리의 인격을 더욱 고양시킨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셔 율법과 거룩함]

둘째, 영적인 건강인 거룩함이다. 코셔 율법을 규정한 성경 구절은 레위기 11장이 대표적이다. 그 장 마지막 부분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You shall sanctify yourself for I am holy(레위기 11:44))"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코셔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말은 ‘분리 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허용한 음식은 모두 거룩하다. 그러니 그런 음식을 먹는 이는 모두 거룩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먹으라고 허용하신 음식으로부터 하나님의 불꽃(Godly Spark)를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만물에는 하나님의 불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음식에도 당연히 그런 불꽃이 담겨 있다. 다만 하나님이 허용한 코셔 음식들을 먹을 때만 그 불꽃을 우리 몸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코셔가 아닌 음식에 있는 하나님의 불꽃은 접근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코셔 음식을 먹어야만 우리 영혼이 영적인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셔 율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셋째, 코셔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 코셔 율법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율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번거롭고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것마저도 지키는 높은 수준의 복종을 의미한다.

사람이 토라에 지켜야 되는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놓은 계명만 지킨다면 하나님과의 유대가 그만큼 헐겁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이유를 알 수 있든 없든 어떤 계명이나 믿고 지킨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돈독하다는 것을 뜻한다. 코셔 율법을 지킴으로써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예루살렘 시장,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예루살렘 시장,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셔 율법과 정체성]

넷째, 유대인들의 정체성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코셔 율법은 유대인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보통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서로 간에 친밀감을 높이는 행위다. 탈무드 산헤드린에서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깝게 이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음식을 해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만든 이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친밀감을 공유한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만들지 않은 음식을 비유대인과 함께 먹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그들과 가까워져서 이방 민족의 풍습을 본받을까봐, 그들과 친밀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날까봐 겁내는 것이다. 그 긴 역사를 지나온 유대인들이 코셔 율법을 지키지 않고 비유대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방인들에게 동화되었을 것이다. 랍비(유대인 종교/사회적 멘토)들은 확실히 코셔 율법이 비유대인과의 결혼과 비유대인 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효율적으로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코셔 음식의 장점 - 정직함]

여기까지 유대인들이 코셔 율법을 고집하는 이유 4가지를 살펴보았다. 유대 랍비들에 따르면, 코셔 음식이 건강에 특별하게 좋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코셔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좀 더 차원 높은 방식으로 육체적인 건강을 도모하고 있다고 본다. 인간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코셔 율법은 역으로 육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체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적인 유추이니 말이다.

코셔 음식 검수 예시,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셔 음식 검수 예시,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최고의 장점

무엇보다도, 코셔 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 재료가 생산된 환경은 물론, 가공이나 포장까지 전 과정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트에 진열되기까지 코셔 제품은 코셔 전문 랍비나 검사자(mashgiach)가 직접 생산 공정 전 과정에 입회한 가운데 일일이 체크 받는다. 보통 음식 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만드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등 세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만든 사람이 이실직고하기 전까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코셔 음식은 다르다. 음식 재료 생산 공정 하나하나, 기계와 요리기구 하나하나, 첨가물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검사자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코셔 규정에 어긋난 어떤 물질이나 성분도 넣을 수 없다. 이것이 코셔 음식을 믿고 먹을 수 있는 이유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