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2)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2)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3.04 17:00
  • 최종수정 2020.03.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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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셔율법1-살코기를 피째 먹어선 안 된다.

[헬스컨슈머]한국에선 일부 사람들이 돼지 피로 만든 선짓국을 즐겨먹고, 심지어 건강을 위해 사슴의 생피를 뽑아 마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유대인들은 경악할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의 기억에 동네 어른들이 추렴해서 돼지를 잡을 때 그릇에 담긴 생피를 함께 돌려 마시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고 소름이 돋는 건 필자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이처럼 생피를 즐겨 마시는 분들은 아마도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돼지나 사슴의 생피가 건강에 좋을까? 건강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비위가 상한다는 느낌이 든다.

[유대인들은 피를 먹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절대 피를 먹지 않는다. 토라(유대인 성서)에 기록된 코셔 율법 때문이다.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토라의 첫 책인 창세기 9장 4절에 기록돼 있다. "너는 결코 고기와 함께 피를 먹지 말라(You must not, however, eat flesh with its life-blood in it)."

‘피를 먹지 말라’의 유래

사실, 이 계명은 노아 홍수 이후에 주어졌다. 놀랍게도 그 이전에는 동물을 잡아먹을 수 없었다. 당시 인류는 식물만 먹어야 했다. 고기, 난류, 유제품 등 동물과 관련된 어떤 식품도 먹지 않는 ‘비건’에 버금가는 완전 채식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노아 홍수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그 풍부하던 식물성 식량들이 홍수에 다 쓸려갔고, 덕분에 노아의 가족들은 힘들게 방주에 데려다놨던 동물이라도 잡아먹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단서가 있었다. 바로 동물의 살코기를 피째 먹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동물복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동물복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불필요한 고통을 금하라]

중세의 유명한 토라 및 탈무드 주석가인 라쉬는 이 구절을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살코기를 떼내 먹어선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가축이라도 산 채로 잡아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산 채로 동물의 살코기를 뜯어먹으면 그 동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게 된다. 실제로 동물을 산 채로 먹는 요리 풍습이 중국에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카오야장(烤鸭掌)', 즉 오리발바닥 요리다. 불에 달궈진 두툼한 철판 위에 양념을 바른 후 오리를 산 채로 올리고 그 위에 철망을 씌운다. 이때 오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달궈진 철판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결국 발만 익게 된다. 이런 요리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화상을 입어 갈라진 발에 양념이 고르게 잘 배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리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와중에 요리사는 오리의 발만 똑 떼서 손님 상에 내놓게 된다. 현재 중국에서는 너무 잔인하다는 여론에 따라 이 요리를 금지하고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유대인들은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요리하는 풍습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사람이 동물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잔인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되면 일종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고 사람의 성품도 점점 더 잔인해져 간다고 믿는다. 특히 피를 자주 보는 사람은 잔인하고 냉혈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만 위와 같은 잔인한 사례는 극희 예외에 속하고, 동물을 살아있는 채로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먹지 말라는 해석은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이 구절을 도살한 짐승의 살코기는 반드시 피를 뽑아내고 먹으라는 뜻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피를 빼지 않고 파는 고기는 절대 사먹지 않는다. 피를 뽑아내기 위해서 도살한 짐승을 거꾸로 세워놓고 일정시간 놔두거나 소금을 뿌리고 때에 따라서는 살짝 굽기도 한다. 도살 율법에 따라 죽이지 않은 동물은 아무리 하나님이 먹으라고 허용한 코셔 동물(소, 양, 염소, 사슴 등)일지라도 먹어선 안 된다. 코셔 도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다.

 

[피를 먹지 말라는 건강 측면의 이유]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에서 건강 상의 이유를 찾아본다면, 피는 다른 부위보다 일찍 부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가 남아있으면 살코기에 나쁜 독소를 남기거나 균을 퍼뜨릴 수도 있다. 지금이야 도살한 즉시 냉동 또는 냉장하기 때문에 그럴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그런 장비가 없는 오랜 옛날에는 살코기에 남아 있는 피가 고기를 쉽게 부패시켰을 것은 명백하다. 코셔 도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다.

 

[어쩌면, 동물복지의 시작]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율법 중에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율법도 있다. 사람은 비록 식용으로 쓰일 동물이라도 최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을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유대 율법에는 이런 것도 있다. ‘집주인이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기르는 동물에게 먹이를 챙겨줘야 한다’, ‘새 둥지에서 새끼나 알을 꺼낼 때는 어미 새가 직접 보지 못하도록 미리 멀리 쫓아내야 한다’, ‘안식일에는 어떤 가축이라도 반드시 쉬게 해야 한다’ 등 다양하다. 지금 기준에서도 상당히 선진적인 동물복지 개념이 수록되어 있다.

동물을 재미로 죽이지 말라

'동물에 고통을 줘선 안 된다'는 율법에는 ‘동물을 재미로 사냥해선 안된다’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먹을 식량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사냥하는 것은 허용된다. 하지만 동물을 죽이는 재미로, 다시 말하면 스포츠 형태로 행해지는 사냥은 절대 금지다.

심지어는 동물을 도살할 때조차도 최소한의 고통만을 줘야 한다. 그래서 도살할 칼의 날은 그 예리함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만약 이가 빠진 칼로 동물의 목을 그으면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도살된 동물은 코셔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도살업자는 동물의 경동맥을 끊고 나서는 매번 칼의 이빨이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를 손톱에 칼날을 부드럽게 그어가며 꼼꼼히 검사해야 한다. 게다가 동물의 목을 벨 때 칼에 힘을 주어 눌러서도 안 된다. 힘주어 목을 자르면 동물에게 역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짐승보다 못한 놈’의 유래

도살 율법에 따라 죽이지 않은 동물은, 아무리 하나님이 먹으라고 허용한 코셔 동물(소, 양, 염소, 사슴 등)일지라도 먹어선 안 된다. 탈무드에서는 모든 만물이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창조된 것에 빗대 사람이 만물에 존중심을 보여야 함을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합당하고 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경우, 다시 말해 동물을 잔혹하게 죽이는 행위를 일삼는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가르친다. 어떤 사람이 잔인하게 행동하면 그런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다'고 욕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유래가 바로 이것이다.

사진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고기를 먹어서 수명이 줄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의 수명이 노아 홍수 이후로 급격히 짧아졌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길게는 거의 1천년에 이르던 수명이, 이후에는 아무리 장수해도 200살을 넘지 않았고 보통 120살이었다. 지금은 그보다 줄어들어서 기대수명이 90살 정도로 줄어들었다. 평균수명은 이보다 더 낮아서 70-80세 정도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고기의 섭취에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고기를 많이 먹으니 성인병에 자주 걸리니 수명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장은 제법 길어서 식물을 섭취하기에 더 알맞다고 한다. 고기를 섭취하게 되면 고기 찌꺼기가 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부패한 찌꺼기로부터 나온 독소가 장을 통해 온 몸에 퍼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독소가 일으키는 염증이 심해지만 각종 성인병에 걸리고 결국 일찍 죽게 되는 것이다. 고기를 공급하는 동물들의 사육환경도 문제다. 밀식사육과 GMO(유전자변형생명체)로 만든 사료, 과도한 항생제와 살충제 투여는 고기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는 코셔 율법은 동물을 잡아먹더라도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동물을 죽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인함의 악영향과 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동물도 하나님이 정성스레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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