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3)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3)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3.11 17:30
  • 최종수정 2020.03.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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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동물만 먹어라

[헬스컨슈머]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의 역사에서 육식을 처음 하기 시작한 것은 노아의 방주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어도, 아무 동물이나 잡아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먹어도 되는 동물의 2가지 조건]

하나님은 레위기 11장에서 코셔 율법에서 허용하는 먹을 수 있는 짐승의 2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육지에 사는 짐승 가운데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수 있다.”(레위기 11:2-3) 이 규정에 딱 들어맞는 짐승에는 소, 양, 염소, 사슴 등이다. 이런 짐승들의 공통된 특징은 초식동물이라는 점이다.

초식동물들은 육식동물처럼 사납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손쉽게 잡을 수 있다. 또한 가축으로 기르기도 수월하며 성격이 잔인하지도 않다. 초식동물이다보니 입에 피를 묻힐 일도 없다. 그래서 이런 동물들은 정결한 동물들로서 성전제사에 희생제물로도 쓰였다.

코셔 동물의 두 가지 조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이들은 갈라진 발굽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별하라는 의미로, 되새김질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배운 것을 늘 음미해서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되새김질을 하고 발굽이 갈라진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양이나 소 같은 초식동물이다, 자료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되새김질을 하고 발굽이 갈라진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양이나 소 같은 초식동물이다, 자료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셔 동물의 해부학적 특징]

하나 더 흥미로운 사실은 소, 양, 염소 같은 코셔 동물들의 해부학적 특징은 추골동맥이 목부위에서 경동맥과 하나로 합쳐진 채로 머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동물들을 도살할 경우 경동맥만 칼로 끊으면 피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짐승은 순식간에 의식을 잃게 된다. 그만큼 고통을 느낄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코셔 동물에게서 이러한 특징이 발견된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반면 말, 돼지와 같이 코셔가 아닌 동물들은 추골동맥과 경동맥이 별도로 머리로 들어가기 때문에 도살할 때 짐승의 고통이 가중된다. 유대인들의 식량이 될 동물이 도살 과정에서 겪게 될 극심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이비(?) 코셔 동물]

이처럼 식용으로 적절한 코셔 동물과는 달리, 호랑이, 고양이, 사자,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들은 먹을 수 있는 코셔 동물에서 제외되었다. 육식동물들은 발만 봐도 코셔 동물인지 아닌지 금세 구분이 된다. 하지만 두 개의 조건 중 하나만 만족하는 사이비(?) 코셔 동물들이 세상에 딱 4종류가 있다고 레위기 11장은 기록하고 있다.

발굽이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돼지, 되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져 있지 않은 낙타, 토끼, 바위 너구리 등이다. 이런 동물들은 부정하다고 하여 유대인들은 절대 먹어선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절반만 코셔인 이런 동물은 성경에 기록된 이 4종류의 동물을 빼고는 없다는 것이다. 성경의 이 구절에 의구심을 품은 한 동물학자가 실제로 전세계 모든 동물들을 대상으로 직접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정말 딱 4종류의 짐승 외에는 한 가지 코셔 조건만 만족하는 동물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동물학자는 어떻게 성경이 정확히 4종류 동물만을 지적해 절반만 코셔인 것을 알아서 기록으로 남겼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김정완
사진제공: 김정완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돼지]

돼지고기는 유대인들이 유달리 혐오하는 고기 중 하나다. 돼지는 겉보기에 발굽이 갈라져 있어 코셔 동물일 것 같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코셔 동물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가 겉으로는 선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악한 심성을 가진 위선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돼지는 잡식성으로 이것 저것 다 먹어 치우기 때문에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고 섞이는 것을 경계하라는 하나님 말씀과도 배치된다.

어떤 이들은 사막기후 때문에 돼지고기가 부패하기 쉬워 건강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하신 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척박한 근동 지방에서, 사람과 먹는 음식이 많이 겹치는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음식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삼겹살이지만, 안타깝게도 유대교인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동물의 잔재일 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에게 친숙한 삼겹살이지만, 안타깝게도 유대교인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동물의 잔재일 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유대인과 돼지의 악연]

유대인들과 돼지의 악연은 역사적으로도 그 뿌리가 깊다. BC 2세기경 유대인 마카비 혁명의 시작도 그리스 지배자들이 성전에 돼지 피를 뿌려 유대인들을 모욕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경우와 비슷하게,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모욕할 때 돼지를 빗대 모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AD 15세기경 기독교를 신봉하고 반유대주의에 빠져 있던 스페인 정부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추방 작업을 진행했는데 일부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500여년 동안 번영을 누려온 스페인 왕국을 떠날 수 없어서 기독교로 억지 개종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기독교 신자인 척했지만 비밀리에 모여 유대교식 예배를 드리곤 했다. 이를 눈치 챈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을 ‘마라노’라고 불렀는데 번역하면 ‘돼지’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스페인 정부는 이들의 개종을 확인하기 위해 생후 2-3주 된 어린 돼지를 통째로 화덕에 구워낸 애저요리를 마라노들에게 먹어보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한국인 가이드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비유대인들의 돼지고기 수요가 늘어나자 할 수 없이 이스라엘에서도 돼지를 사육하게 되었는데 일부 사육업자들은 돼지가 거룩한 이스라엘 땅에 발을 딛게 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축사 바닥과 대지 사이를 띄어놓았다. 말하자면 돼지를 공중부양(?)시켜 사육하는 것이다.

 

[엉덩이와 뒷다리를 먹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

유대인들에 따라 코셔 동물에게서 잘라낸 고기라도 먹을 수 없는 부위도 있다. 엉덩이와 뒷다리 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부위를 통과하는 좌골신경(Sciatic nerve)과 그 부위에 광범위하게 붙어 있는 지방(Celev)이다. 이 두 부위는 코셔가 아니다. 이 부위를 잘라내고 먹으면 되지만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보통은 엉덩이와 뒷다리 부분은 먹지 않는다. 대신 일반 정육점에 팔아 넘긴다.

이런 부위의 식용이 금지된 것에는 조상의 일화가 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던 길에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밤새 씨름하다가 동이 틀 즈음 천사에 의해 환도뼈(넓적다리뼈) 부위를 강타 당해서 위골(뼈가 어긋나는 증상)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창세기 32:26).

야곱은 그 뒤로 다리를 절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겪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뒷다리와 엉덩이 부분은 먹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통을 동유럽이나 독일 지역에서 살던 아쉬케나지계 유대인들은 지금도 지키고 있는데 비해, 스페인에서 거주하던 세파라디계 유대인들은 전통과 상관없이 이 부분 섭취를 금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좋은 환경에서 생산된 고기를 가려서 먹자]

유대인들이 아닌 우리는 이 율법을 꼭 지킬 이유는 없다. 고기는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이라는 이유로 섭취를 권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고기 수요가 점점 증가하다 보니 밀식사육이 늘고 살충제와 살균제 또는 항생제 사용이 늘고 있어 이를 섭취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고기도 사람됨이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처럼 까다롭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좋은 환경에서 사육된 건강한 동물의 고기를 가려먹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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