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구충제의 항암논란에 대해
개 구충제의 항암논란에 대해
  • 장석원 원장(충민내과 원장, 연세대 의대 임상지도교수, 대한임상통합의학회 회장)
  • 기사입력 2020.03.16 09:00
  • 최종수정 2020.03.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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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의료의 눈부신 발전으로 조기 진단율이 높아지고 면역 항암제의 개발로 치료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진행된 암은 여전히 치료가 어렵다. 환자는 의사로부터 더 이상의 치료법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의 병을 완치시켜줄 새로운 치료법이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여러 가지 방법에 매달리게 된다. 설령 치료 방법이 없다 하더라도 보호자 입장에서는 손을 놓고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환자로서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효과가 있다는 치료법은 무엇이든 써 보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때 기적처럼(?)등장한 것이 바로 개 구충제 ‘펜벤다졸(Fenbendazole)’이었다. 사람이 아닌 동물용 약이었던 이것을 복용한 말기암 환자가 극적으로 치유되었다는 환자 사례가 유튜브를 통해 국내에 전해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개 구충제는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게 되었다. 면역 항암제도 효과가 없고, 항암치료에도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 환자에게 개 구충제는 분명 매달리고 싶은 약이다. 따라서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무작정 복용을 말려봐야 펜벤다졸 복용은 계속될 것이다.

 

[개 구충제의 효과?]

그렇다면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는 걸까? 실제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언급한 논문도 존재하니 아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개 구충제가 어떤 기전으로 항암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자. 펜벤다졸은 기생충으로 가는 영양분을 막아 기생충을 굶겨 죽이는 구충제다. 2018년 네이처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Vinca alkaloid(Vinblastine, Vincristine)계열 항암제와 같이 암 세포의 미소관 중합(microtubule polymerization, 쉽게 말해 말해 세포 반응)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 암세포 증식을 저해한다고 한다. 현재 임상에서 사용되는 항암제는 대부분이 세포분열을 억제하는데 빈크리스틴 항암제는 세포분열의 중기를 억제한다.

또 펜벤다졸(Fenbendazole)이 동물 실험에서 비교적 독성이 적고 안전성이 높다고 이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 구충제는 미토콘드리아의 대사를 억제하는 기전도 갖고 있어 항암제로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기생충 굶겨죽이듯 암세포도 굶겨죽인다]

참고로 구충제는 자가포식을 억제하여 기생충의 먹이를 차단하여 기생충을 굶겨 죽인다. 같은 논리로 구충제는 암세포도 굶겨 죽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어 항암제로 연구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암(종양)은 섬유질이 풍부한 기질로 둘러싸여 있고(암 미세 환경) 섬유아세포(CAF)는 호기성 해당과정으로 높은 에너지를 가진 부산물(젖산, 케톤체)을 생산한다. 이러한 영양물질이 인접한 암세포로 이동하게 되고 암 세포 안에서 Acetyl CoA로 전환되고, TCA회로로 들어가 에너지(ATP)를 생산한다. 결국 섬유아세포(CAF)의 호기성 해당과정이 인접한 암 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해 준다. 즉 섬유아세포(CAF)는 암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공급자인 셈이다.

암도 기생충처럼 정상세포에 산화적 스트레스를 가함으로써 자가포식에 이르게 하여 영양분을 섭취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기생충도 숙주세포에 산화적 스트레스를 통한 자가포식을 유발해 그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치료약=우연의 산물?]

역사적으로 치료약이 우연히 개발된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다이너마이트의 주성분인 니트로글리세린이 폭약과는 정반대인 협심증 치료제로서 인정받고 있고, 비아그라도 원래는 혈관 확장제로 심장병 치료를 위해 연구되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원하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일부 시험자 중에서 발기가 되는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원래 계획했던 고혈압 치료제와는 달리 나타난 부작용이 ‘발기부전 치료제’ 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가능성을 아예 닫아둘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암 치료의 가능성이 있는 제제에 대해서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보며 개 구충제도 임상 연구를 통해 '제2의 비아그라'처럼 기적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선택하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확실한 검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암 치료 효과가 검증될 때까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부담하는 건 개인의 몫임을 명심하고 혹시 복용하더라도 주치의와 꼭 상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