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4)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4)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3.18 15:02
  • 최종수정 2020.03.19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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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수산물은 먹지 말라

[헬스컨슈머]서울 한남동 랍비 집에서 토라를 공부할 때였다. 추석 가까운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분들 중 한 분이 랍비에게 추석 선물로 한과를 가져왔다. 한과를 받아든 랍비는 곧바로 돌려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성의는 고맙지만 이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코셔가 아니면 먹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종교를 잘 믿는 유대인들일수록 코셔 율법을 꼭 지킨다. 코셔 율법은 안식일 율법, 정결 율법과 함께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율법 중 하나다. 코셔 율법에도 3가지 기본 줄기가 있다. (1)성경에서 섭취를 금지하는 고기, 조류, 수산물 등은 결코 먹어선 안 된다. (2)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어선 안 된다. (3)섭취한 고기는 반드시 코셔여야 한다. 1번과 3번은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코셔 동물이라도 코셔 율법에 맞는 도살 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피를 빼지 않은 고기는 코셔 식품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고기들은 먹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코셔 수산물]

이번 칼럼에서는 코셔 율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수산물을 살펴본다. 수산물 중 어류는 반드시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코셔로 인정받는다. 코셔 장(章)이라 불리는 레위기 11장에 코셔 어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레위기 11:9). 신명기 14:9에도 같은 구절이 기록돼 있다.

코셔 어류에는 대표적으로 잉어, 붕어, 숭어, 가물치, 도미 등이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생선 중에서, 코셔가 아닌 어류로 미꾸라지(추어탕), 장어(장어구이), 고래(고래고기), 상어(삭스핀), 복어(복어탕, 복어회), 고등어(고등어조림), 갈치(갈치조림), 메기(메기매운탕) 등이 있다. 이 어류들은 지느러미는 있지만 비늘이 없어서 코셔로 인정받지 못한다. 랍비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물고기로 만든 회(膾)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밖에도 게·새우·랍스터 등 갑각류, 낙지·문어·오징어 등 연체류, 바지락·굴 등 조개류 및 해삼·미더덕·해파리 등은 코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겐 결코 먹을 수 없는 수산물들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셔 수산물의 이유]

왜 하나님이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어류만 코셔 어류로 지정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이런 수산물들의 섭취를 금한 건 아닌가 하여 굳이 이유를 설명하려 든다. 내가 보기에는 비코셔 수산물이라도 건강에 좋은 면도 있으니 그런 시도가 조금은 억지스럽다. “이유를 알 수 없다”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율법의 이유를 다 설명하지는 않으신다.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와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율법이 있는가 하면, 정결·부정 율법처럼 전혀 이해하기 힘든 율법도 있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신비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필자가 유대인들이 많이 보는 여러 주석서를 찾아봐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은 한 군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믿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 상차림이 우리에겐 진수성찬이지만, 유대인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이 상차림이 우리에겐 진수성찬이지만, 유대인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먹지 못함과 죄는 다르다]

실제로 레위기 11:10에서 하나님이 이런 비코셔 수산물들이 유대인들에게 ‘가증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건강에 나쁘다는 이유로 금지하신 것 같지는 않다. 가증하다는 것은 부정해서 종교 의식에서 금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비코셔 수산물이 먹을 수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닌 것이다. 종교적으로 부정한 수산물이니 먹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런 수산물을 부정하다고 했으므로 유대인들도 그 말씀을 따라 먹지 않을 뿐이다. 그 수산물들에겐 죄가 없다!

이런 조치들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민족으로서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셨기에 정한 율법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민족과 달라야 했다. 이것은 섞이지 않고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수산물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은 여타 민족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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