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낮잠을 자야만 하는 운명(?)
우리는 낮잠을 자야만 하는 운명(?)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04.03 12:41
  • 최종수정 2020.04.0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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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피곤한 몸을 침대에 묻고 눈을 감고 노곤노곤한 느낌을 즐기는 것도 잠시, 체감상 몇 초 후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아침이 온다. 그렇게 출근을 해도 다시 점심식사 후면 졸린 것이 현실. 도대체 왜 이리 피곤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운명’을 거스르며 잠을 참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하루에 2번 자도록 만들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 말하자면 우리는 ‘낮잠을 자야만 하는 운명(?)’일수도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낮잠의 이공학적 근거]

호주 아델레이드대 뇌과학자 피오나 커는 "대부분의 포유류는 생물학적으로 하루에 2번 자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유류의 85%는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강렬한 졸음을 느끼도록 설계됐다. 연구에 따르면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졸음을 느끼는 것은 밥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에 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낮잠이 두뇌회전을 돕는다

중국 남서대학교의 연구진팀은 소리 구별 테스트를 통해 낮잠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드러누워서, 한 그룹은 베개를 베고 책상에 엎드려서 낮잠을 자게 했다. 마지막 한 그룹은 자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게 했다. 각각의 상태로 20분이 지난 뒤 음을 구별하는 테스트를 다시 해보았더니 낮잠을 잔 두 그룹 사람들의 (당연하게도)기분과, 테스트 결과가 더 좋게 나타났다. 즉 낮잠이 두뇌의 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성장기 아이들의 경우 낮잠이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낮잠이 건강에 좋다

놀랍게도, 낮잠을 잔 두 그룹에 속하는 피험자들의 응답에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책상에 잠깐 엎드려 자는 것도 분명 효과가 있다. 전혀 자지 않는 것보다야 고개를 숙이고 몇 분 낮잠을 자면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피험자들이 실험을 하는 동안 측정한 뇌전도 변화를 보자 누워서 잔 그룹이 더 깊은 잠에 빠져든 것으로 나타났다. 낮잠을 자는 것 자체가 효과가 있긴 하지만, 기왕이면 누워서 깊게 자고 일어나는 경우 그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낮잠을 자는 사람들의 평균 스트레스 지수와 수명이 훨씬 양호하다는 연구 결과가 수두룩하다.

농경을 주제로 한 14세기 판화,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농경을 주제로 한 14세기 판화,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낮잠의 인문학적 근거]

사실 ‘근면과 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낮잠이란 부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부지런할 필요가 없었다

인류 역사에서 경제, 즉 산업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산업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바로 농업이다. 하지만 이 농업이라는 것은 상업이나 공업과 달리 날씨와 토양 등 인간의 성실함으로 감히 극복할 수 없는 자연조건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밭갈기를 아침에 하던 저녁에 하던, 파종을 오늘 하던 내일 하던, 적당히 ‘그 즈음’에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연히 누군가 부지런해봤자 거기서 거기인 결과물이 나오니, 성실할 필요도 없었다. 그 즈음에는 한낮의 땡볕에서 일하는 것을 피하고자 ‘낮잠 문화’도 있었다.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하다.

당장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나라’인 한국이 이렇게 성실을 극도로 미덕으로 삼게 된 것도 한강의 기적, 즉 산업화 시기부터이다.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잠 안잔 위인들’의 허상

한국은 괴상하게도 나폴레옹 같은 경우를 잠 많이 안 자고 성공한 사례로 홍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사실 나폴레옹은 절대로 수면량이 적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은 토막잠으로 인해 몸이 망가져 워털루 전투에서 자리를 비움으로 인해 패배하여 결국 몰락했다.

윈스턴 처칠도 오후에 한 번 정도는 낮잠을 잤다고 한다. 토마스 에디슨도 수면보충을 위하여 낮잠을 잤다. 하지만 에디슨은 3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했다고는 하나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그가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이 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낮잠이 정식 일과인 나라들

낮잠이 정식 일과에 편성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남유럽/남미의 ‘시에스타’ 문화. 앞서 언급했듯, 과거 농업 위주의 우리나라에도 이런 관습이 있었다. 새벽같이 나가 일하다가 점심 먹고 한숨 푹 잔 후 저녁까지 일하고 들어오는 것.

특히 동남아나 남미 같은 외국의 더운 지역일수록 낮에 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낮잠을 문화화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도 아예 낮잠 자는 시간이 따로 있다. 중국에서는 점심시간이 2시간으로 길게 잡혀있고, 북한에서도 점심시간과 별개로 오침시간이라 해서 낮잠시간을 따로 두고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낮잠 잘 자는 법]

여기까지 장황하게 낮잠의 이유를 들었다면, 이제는 낮잠을 어떻게 하면 잘 자볼 수 있을지 논해볼 때다.

낮잠을 잘 마음이 생겼다면, 오후 2시 이전으로 정해진 시간에 즐기는 게 좋다. 그날 그날 아무 때나 잔다면 신체리듬이 끊기며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

또한 15분 이내의 짧은 잠은 (기분 전환 외에는)의미가 없다. 수면시간은 무의식 상태에서 수면뇌파가 정상적으로 발생하는 ‘15분 이상, 30분 이내’가 좋다. 게다가 깊은 잠까지 빠지는 수면(60분 이상)은 생체리듬이 무너져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낮잠을 자면 뇌를 안정시켜 치매를 감소시키고 혈압을 낮춘다. 직장에서 잠시 낮잠을 잔다면 책상에 엎드리는 것보다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자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