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개장) 38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육개장) 38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4.14 10:00
  • 최종수정 2020.04.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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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국의 진화, 육개장

[헬스컨슈머]육개장은 1896<규곤요람>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이다. 이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중독성 있는 맛이 특징인 음식은 언제부터 우리의 곁에 있었을까? 

[고기를 먹지 않던 이유]

고대한국은 원래 채식국가였다. 산이 국토의 70% 이상인 산악국가라 목축 보다는 수렵이 발달해 모피 동물들을 잡아 모피를 수출하거나 그 가죽을 화폐 대용으로 썼다. 그리고 가죽을 벗기고 남은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육식문화는 보편적이지는 못했다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은 한반도에 풍부했던 콩과 해산물로 대신했다.

본격적인 목축은 13세기 고려를 침공한 몽골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고려시대는 불교의 영향으로 살생을 금하다 보니 육식문화가 그리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소는 농경을 위해 길렀으나 주로 식용에 쓰이는 돼지는 농가에서도 기르지 않았다.

한민족의 대표음식인 국류는 몽골 문화가 들어온 후에 채소국에서 고깃국으로 변화했다. 몽골은 기후 때문에 국물 음식이 발달했는데 몽골 국물의 특징은 고기와 뼈를 넣고 푹 삶는 것이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고깃국인 곰탕과 설렁탕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전반기에는 없었던 조리방식이 등장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몽골로부터 전달받은 요리법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농경 자산이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소는 죽이면 안되고, 돼지는 싫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소가 농사짓는데 유용한 동물이라 건강한 소의 도축을 엄격히 금하는 우금정책1398년부터 시행되었다. 그 무렵 소고기와 대체재 관계에 있는 돼지고기는 불교의 영향으로 그다지 즐겨 먹지 않았다. 돼지의 사육 두수가 많지 않아 고기를 맛볼 기회가 별로 없어 그 맛에 익숙하지 않았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소고기보다 비싼 가격도 이를 부추겼다. 심지어 돼지고기는 건강에 해롭고 질병을 유발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다.(출처: 한우마당)

조선시대 유일의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 이씨가 쓴 생활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는 돼지고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야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돼지고기는 본디 힘줄이 없으니 몹시 차고 풍병(風病)을 일으키며 회충이 해를 끼치니, 풍병 있는 사람과 어린아이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쇠고기와 같이 먹으면 뱃속에 벌레가 생기고, 생강과 같이 음식 만드는 것은 삼가야 하며, 붕어, 양의 간 등과는 같이 먹지 말라.”(출처: <한국의 생활사: 우리 역사 속 돼지>,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오늘날 우리가 삼겹살을 이토록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조상들이 기가 막혀할듯 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제 3의 선택, 개?]

이런 연유로 민가에서 잔치 날이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개를 잡아 국을 끊이는 풍습이 있었다. 일명 개장(狗醬)이다. 특히 선조들은 삼복 때 보양음식으로 개장을 즐겼다. 이때 개고기의 심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맵고 진한 양념과 함께 대파, 숙주, 고사리 등을 같이 넣고 끓였다.

개가 귀한 철이거나 개고기를 싫어하는 손님이 오면, 마을 어른들이 개(단고기) 대신 병들거나 늙은 소를 공동으로 잡아 개장 방식으로 국을 끓였는데 이것이 육개장(소 단고기국)이다. 육개장은 소고기가 들어간 개장이라는 뜻이다. 고기를 결에 따라 손으로 찢어서 탕에 넣은 모양새까지 똑 같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나라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대령숙주가 올린 육개장을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에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에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상심한 임금에게 대령숙주는 조선의 정신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영화 <식객(食客)>의 명대사이다.

현대에 와서 육개장은 장례식장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는 육개장의 붉은 국물색이 조문객들에게 잡귀들이 달라붙는 걸 막기 위함이라는 설과 아울러 이틀에 걸쳐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위해 대접할 음식을 선택할 때 고춧가루와 소금이 많이 들어가 쉽게 상하지 않는 육개장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 등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이제 육개장은 우리의 전통 음식이 되었다. 사골 육수에 대파를 많이 넣어 달큰한 대파육개장(육대장),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은 닭개장, 육개장 사발면 등 육개장의 진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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