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버튼에 붙이는 비닐, 무슨 원리일까?
엘리베이터 버튼에 붙이는 비닐, 무슨 원리일까?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04.16 15:30
  • 최종수정 2020.04.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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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의 살균 작용이란?

[헬스컨슈머]코로나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꿔놓은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호기심을 끄는 특정한 변화가 몇 가지 있는데, 엘리베이터 버튼마다 붙어있는 ‘비닐막’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제공: 강지명
요즘 갑자기 늘어난 엘리베이터 버튼 필름, 사진제공: 강지명

[버튼을 누르나, 비닐을 누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소위 ‘항균 필름’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문자 그대로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기에 매우 비위생적인 엘리베이터 버튼의 세균을 억제한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던 것이 비닐 위를 누르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제품들은 실제로 살균 능력이 충분히 있다.

 

[구리 함유로 균 번식 억제]

일견 보기에 그냥 비닐 필름처럼 생긴 이 물건들은, 구리를 함유한 필름으로 국제 공인시험 기관인 FITI시험 연구원의 항균작용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들이다. 각종 박테리아나 세균의 99.99% 이상을 24시간 내에 살균한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구리는 2008년 미국 환경보호국에서 인정한 첫 번째 항균 작용 금속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사람들 손에 많이 닿는 물건을 구리로 바꾼 뒤 병원 내 감염률이 58%이나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 병원에서는 손잡이 등 세균번식이 우려되는 부분에 구리를 사용하도록 권고 또는 규제하고 있다. 일본에는 심지어 병원을 통째로 구리로 만들기도 했다니, 구리의 항균작용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구리는 어떻게 살균을 하나]

그렇다면 구리는 어떻게 항균(살균)작용을 할까? 그것은 바로 '미량동'(oligodynamic)이라는 작용 덕분이다. 이 작용은 많은 금속에서 흔하게 발생하는데, 쉽게 말해서 미생물이 금속 이온을 밥으로 착각해 먹고 죽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면,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들이 구리 이온을 필수 영양소로 잘못 인식한다. 그래서 이 구리 이온을 세포 안으로 흡수하지만, 흡수된 구리 이온이 세포막에 구멍을 내고, 덕분에 영양소과 수분이 빠져나간다. 거기에 구리 이온이 이 구멍을 통해 활성 산소까지 끌어당기면 세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사멸해 버린다.

수천년 전부터 유명한 능력

구리의 이런 능력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이 놋(구리 합금)으로 수저와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던 것도 그 덕이다.

하지만 그 훨씬 이전에도 인류는 구리의 살균 능력을 알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의 기록엔 구리를 사용해 식수를 살균하고 상처를 소독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식수를 구리 그릇에 저장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정맥류에 의한 다리궤양에 구리를 쓸 것을 권장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의 아스텍 등지에서도 보건의료에 구리를 활용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구리가 코로나도 막아준다?]

2015년 영국 사우샘프턴대 연구진이 미생물학학회지인 <엠바이오(mBio)>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인간 코로나바이러스(229E)는 세라믹 타일이나 유리, 고무, 스테인레스 스틸 등의 표면에선 최소 5일 동안 생존하지만, 구리나 구리 합금(60% 이상)을 포함한 '항균 구리' 표면에선 바이러스가 30분 이내에 급속히 비활성화하면서 사멸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2010년에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국제구리협회, LS니꼬동제련과 공동으로 구리의 항바이러스 관련 임상시험을 6개월간 진행한 결과다.

물론 구리의 항균 능력은 비교적 검증되었지만, 세균보다 훨씬 작은 개체인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까지 확실하게 박멸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결론나지 않았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에 편승한 ‘구리 상품 마케팅’은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 된다.

다만 주로 세균에 기생해서 살아남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그 숙주인 세균에 대해 살균작용을 충분히 하기에 바이러스 박멸에도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결국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