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갯벌) 39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갯벌) 39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4.21 09:00
  • 최종수정 2020.04.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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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인류의 생명줄, 갯벌 먹거리

[헬스컨슈머]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하루 3끼로 계산하고, 365일의 1년을 80번정도 반복하게 된다손치면 벌써 87,600끼니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들 접하게 되는 이 녀석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밥상머리에서 말해주기 좋은 지식, 이것이 바로 '어른의 교양 이야기'다. 교양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며, 그만큼 온갖 생명체가 갯벌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 갯벌의 경우, 면적은 전 국토의 2.5% 이상으로 조개류, 낙지 같은 연체동물 200여 종, 게 등 갑각류는 250여 종, 그리고 숭어 등 어류 약 200여 종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초기인류가 빙하기와 같은 거대한 재앙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갯벌이 제공해준 식량 덕분이었다.

 

[멸망할 뻔했던 현생인류]

7만 5천년 전에 발생했던 갑작스런 기후변화는 현생인류에게 심각한 타격이었다. 전에 없던 추위가 닥쳐오고, 주변에 널려 있던 풀과 과일들 그리고 다 같이 협동해 사냥해 먹던 사냥감들도 사라졌다. 이렇게 추위와 기아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죽어갔다.

이 시기가 어찌나 혹독했던지, 기후가 다시 따뜻해지고 푸른 풀과 사냥감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이 땅에 살아남은 인간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범인은 초대형 화산폭발이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토바’라는 거대한 화산이 있었다. 이 화산이 폭발하며 초대형 기후변화를 일으켰는데, 그 폭발이 얼마나 컸는지 화산폭발구가 제주도 정도 크기다. 그 폭발 흔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인도에서도 발견된다. 인도의 거의 전 지역에 걸쳐 화산재가 쌓였는데 그 두께가 1~3미터, 많게는 5미터까지 쌓였다. 심지어 화산재는 8937Km 떨어진 남아프리카 해안까지 날아갔다.

폭발의 후유증은 지독했다. 수백 도가 넘는 뜨거운 화산분출물이 시속 16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회색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무려 10개월간 햇빛이 차단되었다. 북반구 전체 식물의 3/4이 말라 죽었고 이를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들도 굶어 죽었다. 덕분에 인간도 멸종위기에 직면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토바 화산폭발이 어떻게 기후를 바꾼 것일까?]

빙하기 중에서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신생대 빙하기는 초대형 화산폭발이 원인이라 한다. 지난 10만 년 간 두 번의 큰 빙하기가 있었는데, 7만 4천 년 전의 토바 화산과 2만 5천 년 전의 옐로스톤 타우포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화산 폭발이 빙하기의 원인이 될까?

가장 큰 이유는 햇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화산은 폭발할 때 대량의 이산화황을 배출한다. 이 이산화황은 대기 중 수증기와 결합해 황산염 결정이 되는데, 이 결정이 태양광선을 반사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햇빛이 지표에 닿지 못해 대지는 어둠에 싸이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지구의 열 순환 체계가 먹통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토바 화산 정도의 큰 폭발이 일어나면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가는데 그렇게 되면 그 여파가 또 상당히 길어진다. 성층권은 대류권과 달리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 한번 성층권에 자리 잡은 화산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편서풍을 타고 서서히 지구 하늘을 뒤덮기 때문이다.

약 200년 전인 181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탐보라 화산 폭발로 1년간 이 지역에서 여름이 사라진 바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탐보라 화산 보다 100배 이상 강했던 토바 화산의 폭발은 전체 지구의 평균 온도를 5도 이상 낮춰 혹독한 겨울이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고 추측한다. 그 사이 많은 대형 동물들이 멸종되었다.

과학자들은 이후 지구 온도가 지역에 따라 7~17도나 떨어지면서 빙하기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던 수십만 명의 호모 사피엔스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얼마나 죽었을까? 그 규모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살아남았는가는 대략적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 연구진이 밝혀낸 바로는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그 숫자는 600~30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토바 화산과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 해안에서 살아남았다. 지상의 생물이 거의 전멸한 빙하기에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조개류 등 먹거리와 소금을 제공해준 갯벌 덕분이었다.

사진제공: 홍익희
세계 5대 갯벌, 자료제공: 홍익희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서해 갯벌]

지구에는 5대 갯벌이 있다. 우리나라 서해 갯벌을 위시해 북해의 아덴해 갯벌,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 3개가 있다. 그중에서도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한반도의 서해 갯벌이 가장 크고 다양한 생물종을 갖고 있다.

모든 문명은 소금 획득이 가능한 곳에서만 탄생했다. 소금이 인간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4대 문명은 모두 강 하류에서 발전했다.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손쉽게 물과 식량, 그리고 소금과 땔감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 하류의 퇴적층이 비옥한 농토를 제공해 농사짓기에 좋았고 바다와 가까워 소금을 구하기 쉬웠다.

그런데 여기에 갯벌이 발달해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갯벌에는 수많은 생물종들이 있어 농사 외에도 해산물 채취와 소금 획득의 난이도가 더 내려가기 때문이다.

갯벌에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펄갯벌, 혼합갯벌, 모래갯벌이 그것이다. 서해의 경우 이 세 갯벌이 함께 발달되어 있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육지 부근에 고운 진흙으로 이루어진 펄갯벌이 펼쳐져 있고 그 다음에 진흙과 모래의 혼합갯벌 그리고 바닷가에 모래갯벌이 있다. 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은 대부분의 외국 바닷가에는 모래 갯벌 또는 모래톱만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에서 생활하는 생물들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갯벌은 겉으로는 색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엄청난 밀도의 생물체를 부양하고 있다. 특히 펄갯벌이 넓게 발달한 우리 서해 갯벌에는 생물종의 다양성이 엄청나다. 해조류를 비롯해 게. 조개, 낙지, 굴, 갯지렁이 등 이러한 연체동물들이 진흙 갯벌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갯벌 위에 구멍을 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채취하기도 쉬웠다. 게다가 해산물은 기본적으로 소금을 포함해 염분 섭취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갯벌에는 함초를 비롯한 짠맛을 가진 염생 식물들이 많아 당시 내륙에서 구하기 힘든 소금을 대신할 수 있어 사람들은 이들 채취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게다가 펄갯벌 웅덩이와 바위 위 움푹 파인 곳이나 바위틈에는 소량이나마 햇빛에 마른 흙소금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대륙붕에 고기도 많아 어업도 발달했다. 강 하구 갯벌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살면서 문명이 발달한 이유이다.

이런 연유로 서해갯벌 주변에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도 산악지대를 제외한 발해만과 서해안 일대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의 하나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갯벌 음식의 흔적, 패총]

세계 해안가 곳곳에서는 조개무지, 곧 패총이 발견되곤 한다. 특히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현재 기준으로 약 700개가 넘는 패총이 밀집되어 있었다. 얕은 해안과 갯벌에 많은 플랑크톤이 서식하면서 조개의 성장에 적합한 생태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패총에는 굴, 꼬막, 백합, 고둥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개껍데기가 발견된다. 그와 함께,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짐승과 물고기의 뼈, 사람들이 쓴 도구도 나온다. 패총은 고대인의 쓰레기장이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패총은 갯벌을 생존 터전으로 활용한 초기인류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보물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빙하기의 서해평원]

그렇다면 이 서해 갯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약 2만년~1만 2천 년 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 보다 120미터나 낮았다. 그래서 그 무렵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붙어있던 대륙이었고, 서해 지역은 해발 약 80미터의 육지였다.

그 무렵에는 황하강과 양자강 그리고 압록강과 한강이 서해평원에서 합류되어 바다로 흘러내렸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었다. 그 주변에는 사냥하기 좋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초목지대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해평원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꽃피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1만 3천 년 전 인류 최초의 토기가 한반도(제주도 고산리), 일본 열도, 연해주 세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다. 이곳이 가장 먼저 농경문화가 시작된 곳으로 추정되는 이유이다.

그 무렵 북반구 육지의 30%가 얼음으로 뒤덮여있었다. 특히 북위 60도 이북은 약 3천 미터 두께의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12,000년 전경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구 기온이 따듯해지자 그 많은 빙하들이 녹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해수면이 차츰 올라가 1년에 몇 mm씩 올라갔다고 하는데 기온 상승이 심했던 100년간은 1년에 무려 5cm씩 높아지기도 하면서 육지였던 서해가 8000년 전쯤 지금과 같은 바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바다 중 하나로 평균 수심이 44미터에 불과하다. 육지의 연장인 낮은 대륙붕인 것이다. 발해만 연안은 더 얕다. 평균수심이 22미터로 세계에서 대양에 접한 바다로서는 가장 수심이 낮은 바다다. 이렇게 육지가 바다로 바뀌는 과정에서 탄생한 게 광대한 서해 갯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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