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8)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8)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4.22 09:00
  • 최종수정 2020.04.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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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코셔 율법에 담긴 깊은 의미

[헬스컨슈머]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번 해산물 코셔 율법을 소개할 때 매우 의미 깊지만 간과하고 넘어간 이야기가 있어서 보충하려고 한다. 이미 밝혔듯이 해산물 코셔율법 중에서 물고기에 관한 것도 있는데 보통 유대인들이 먹도록 허용된 물고기의 특징으로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조건을 달아 먹을 수 있는 물고기를 구별하였는가에 대해 지난 칼럼에서는 성경에서 그 이유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랍비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이 율법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초이성적 율법이란?]

일단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가리켜 초이성적인(superrational) 율법, 즉 이해불가한 율법이라고 부른다. 그렇더라도 이 율법에 담긴 의미를 새기려는 랍비들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며 물고기 코셔 율법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자.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레위기 11:9-10)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초이성적 율법의 이성적 해석]

중세의 유명 탈무드 학자였던 람반(Ramban, R' Moshe ben Nachman, 나흐마니데스라고도 부름 Nachmanides)은 물고기 중에서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는 주로 산소가 풍부히 녹아있고 좀 더 깨끗한 물의 윗부분에 서식하기 때문에 먹기에 적합하고 그렇지 않은 물고기들은 주로 흐리고 탁한 강이나 바다의 바닥에 사는 까닭에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랍비 아하론(Aharon)은 여기에서 나아가 좀 더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섭취를 금한 물고기들은 몸에 해롭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선행을 통해 영적으로 높아져야 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이 금한 물고기 섭취를 자제함으로써 영혼이 건강한 육체와 더불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코셔 율법에 합당한 물고기의 비늘은 반드시 빛에 비추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 현미경이나 돋보기로 보았을 때만 보여선 안 된다. 게다가 코셔 물고기 비늘은 또한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 벗겨지지 않으면 비늘로 인정받지 못해 코셔 물고기이라고 할 수 없다.

탈무드(Avodah Zara 39a)는 랍비 아시의 일화를 들며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랍비 아시가 탐두리아를 방문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뱀장어 비슷한 물고기를 식사로 대접했다. 랍비 아시는 그 물고기를 들어 햇빛에 비춰보며 작은 비늘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코셔에 합당한 물고기임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그 물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물고기 중에는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많지만,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없다. 따라서 비늘 유무만 확인해도 상관이 없다. 결국 지느러미를 언급한 것은 사족이라고 말해도 될 듯싶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물고기 코셔 율법에서 불필요하게 지느러미까지 언급하신 것일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비늘과 지느러미를 동시에 언급한 이유]

랍비 아바후와 랍비 이스마엘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늘과 지느러미를 동시에 조건으로 삼은 이유는 토라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조금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으로 해석을 하자면 "둘 다 중요하지만, 둘중에서도 우열이 나뉜다"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보통 토라를 물에 비유한다. 탈무드(Taanit 7a)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토라의 말씀도 겸손한 자에게 흘러들어 머문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탈무드는 고대 로마의 토라학습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토라를 가르쳤던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로마 당국이 법률을 정해 토라 공부를 금지했다, 그러던 와중 파푸스 벤 예후다(Papus ben Yehudah)는 랍비 아키바가 로마의 지시에 불복하고 토라 교실을 여는 것을 보고 물었다. "처벌이 두렵지 않습니까, 랍비님?" 랍비 아키바는 대답으로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주었다. 여우 한 마리가 강둑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물고기들이 빠르게 이쪽저쪽으로 헤엄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여우는 물고기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달리는 거니?" 물고기들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물을 쳐서 우리를 잡을까봐 두려워서요." 여우가 교활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물가로 올라와서 나와 함께 사는 건 어떠냐? 우리 부모들도 너희 부모들과 함께 살았었지." 물고기들이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무서운데 땅에서는 오죽 더 무섭겠어요? 그곳에서는 틀림없이 죽고 말 거예요." 비슷하게, 토라도 우리의 인생의 원천이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것 없이 우리는 영원히 멸절될 것이다."(Talmud Berachot 61b)

이스라엘의 생선 가판대, 코셔를 준수하는 생선만 판매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스라엘의 생선 가판대, 코셔를 준수하는 생선만 판매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비늘과 지느러미의 토라적 의미

이처럼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물고기처럼, 유대인들은 토라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기 때문에 토라공부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평생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토라공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안 된다. 탈무드(Shabat 31a)는 라바의 말을 인용해 사람이 대심판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6가지의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정기적으로 토라를 공부했느냐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때 사람이 평생 토라공부를 정기적으로 했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이 토라를 공부했다면 그 공부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밀을 보관할 때 보통 부패를 방지하는 물질을 조금 섞는데 이런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라고 한다. 이는 물고기의 비늘에 해당한다. 물고기의 비늘이 마치 옷처럼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듯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토라공부가 잘못되는 걸 막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느러미는 무엇인가?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물고기를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한다. 이는 마치 토라공부를 할 때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토라공부를 할 때 토라 말씀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들을 항상 추구한다. 하지만 새로운 통찰력은 자칫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말씀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엉뚱한 의미를 발견해서 새로운 통찰력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욱 잘못되면 이단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토라 말씀의 해석은 진정한 토라의 영적인 뜻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늘과 지느러미의 유무를 기준으로 삼는 물고기 코셔 율법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굳이 지느러미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토라의 진실된 영적인 뜻에 맞게 토라 말씀을 해석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비늘 없이 지느러미만 있는 물고기가 코셔 율법에 합당하지 않듯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절대로 금지되며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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