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 남자가 되는 병
여자로 태어나, 남자가 되는 병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05.13 12:00
  • 최종수정 2020.05.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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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도미니카 공화국의 샐리나스(Las Salinas) 마을에는 여자로 태어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남자가 되는, 현실로 믿기 힘든 일이 종종 일어났다.

이런 아이들은 태어날 때 생식기가 모호했지만, 전체적인 외관이 여자처럼 보여 소녀로 키워졌다. 그러나 12살쯤 믿기 힘들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다. 음경과 고환이 자라 외부로 돌출되었고, 근육도 붙어가며 ‘남자가 된’ 것이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여자아이 90명 중 1명꼴로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을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도대체 왜 이런일이?]

이것은 호르몬의 문제로 생겨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태아가 8주차에 접어들면 성염색체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 호르몬의 작용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외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식기도 형성되는데, 흔히 말하는 ‘아이 성별을 알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시점부터이다.

이 시점에 태아가 남자(xy염색체)면, ‘5알파-환원효소(5α-reductase)’의 작용으로, 남성호르몬인 T(테스토스테론)가 더 강력한 DHT(다이하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바뀌어진다. 이 DHT가 남성 생식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샐리나스 마을의 아이들은 유전적인 돌연변이로 인해 이 ‘5알파-환원효소’가 부족해 생식기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2차 성징, 즉 사춘기부터 신체가 성호르몬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성별에 따른 신체적 특징이 도드라지는 이 때부터, 부족하던 남성호르몬이 보충되어 남성 성기가 발달되어 외부로 자란다.

다만 DHT가 부족할 뿐, T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남성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근육 발달 정도는 정상 남성과 비슷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근친혼’]

해당 지역에서는 이런 현상을 ‘게베도세즈’, 즉 ‘12살에 생겨난 남성 생식기’라는 스페인어로 부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등의 미신적인 사고방식으로, 해당 아이는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 핍박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돌연변이는 저주나 징벌같은 것이 아닌, 소위 말하는 근친혼의 문제일 뿐이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그저 고립된 작은 지역에서 서로 결혼하며 살다보니, 세대를 이어나가며 유전적 결함이 생겨 발생한 지역성 질병일 뿐이다.

이러한 유전적 문제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다양한 유전성 질병에 고통받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문제에서 생겨난 탈모와 전립선비대증의 실마리]

그런데, 해당 질환을 겪은 환자들에게는 나이가 들면서 추가적으로 공통적인 특성이 발현되었다. 첫째, 탈모가 없었다. 둘째, 전립선이 커지지 않았다. 셋째, 여드름이 없었다. 많은 남성들의 고민거리가 이들에게는 없었다는 소리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DHT호르몬을 줄이면 위와 같은 문제의 근본적이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립선 비대증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부작용(?)으로 탈모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착안해서 탄생된 것이 바로 현재까지 쓰이는 ‘프로페시아’다. 또한 원래 목적대로 전립선 비대증 치료약도 탄생해 잘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고통과 혼란이, 또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던 모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