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아빠, 매 맞는 엄마는 문제아 양산
때리는 아빠, 매 맞는 엄마는 문제아 양산
  • 김영숙(미국 LA 정신건강의학전문의)
  • 기사입력 2020.05.20 11:31
  • 최종수정 2020.05.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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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제 아버지 이름은 프랑켄쉬타인입니다!”, “70킬로그램의 괴물이 저의 엄마를 지금 때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 괴물은 저의 아버지에요!”

위의 표어들은 ‘매 맞는 엄마들’을 힘없이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어린이들의 호소이며, 절규다. 1980년대 어느 정신과 의사들의 통계에 의하면 아내의 20~25%가 일생에 한번 이상 배우자에게 폭행을 당했다니, 그것을 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끼칠 심리적 악영향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잘못했기 때문일까?’,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가 맞지 않을까?’, ‘내 차례는 언제일까?’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는 않는다. 단지 ‘의리감(Loyalty)’에 심한 혼동이 올 뿐이. 왜냐하면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사랑한다면, 엄마를 배신하는 결과가 될 테니까 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아이들의 역할모델, ‘따라가기’]

그런데 아이들이란 부모를 ‘따라감으로써(Identification)’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에 대한 심한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만일 내가 엄마 같은 어른이 된다면, 커서 계속 얻어맞기만 할 테니 아빠같이 되는 것이 낫겠지? 그렇지만 만일 아빠 같은 어른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엄마 같은 사람들을 때리고 못살게 굴 텐데…그렇지만 내가 맞는 것은 싫다’ 등등...

공격자

어떤 아이들은 맞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에, 숫제 자기 자신도 어느 날 ‘공격자’로 탈바꿈을 해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격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남을 공격하는 ‘문제행동아’가 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보자면, 아버지의 ‘괴물성(Monster-Component)’이 이제 아이의 성격의 일부로 합쳐진 셈이다. 이런 아이들이 언론이나 TV를 통해서 난무하는 폭력을 접하게 되면 그 결과는 더욱 증폭된다. 특히 부모 중에 약물 중독이나 음주벽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교도소에서 형을 살아야 하는 젊은이가 많다.

우울한 엄마를 지켜보는 아이들

매 맞는 ‘우울한 엄마’들의 자녀들 중에는 자주 우울증, 자살기도, 마약 사용, 학교 무단결석 등의 문제들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성애’를 선호하는 딸들이 이런 가정에서 나오기 쉽다고 하는 것이다. ‘짐승 같은 아버지’로부터 ‘불쌍한 어머니’를 보호하려면 자신도 ‘남자’처럼 강해져야 되겠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생기고, 이 딸은 ‘강한 남자’같은 여자로 일반적 방향과 다른 성 정체성(Sexual Identity)를 키워 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의 여성 동성애자에게 해당되는 현상이지만, 어린이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부모들이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인간관계 문제의 출발]

필자는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것이지 결코 ‘절대적’으로, 한 사람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폭행을 하는 남편이 존재하려면, 맞아주는 아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물론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교훈을 필자는 100% 믿는다. “맞고, 참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수천 년간의 ‘비뚤어진 가르침’을 틀린 것이라고,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인간과 개, 돼지 등의 포유동물의 차이는 몸 전체의 5%정도에 불과한 ‘대뇌’ 기능의 차이에서 온다. 어른이 된 이후에라도 술에 ‘만취’되어서 대뇌기능이 마비되었거나, 교통사고나 병으로 대뇌세포가 파괴되면 인간은 ‘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개’에 노출되어 지속적으로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스스로 여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가 그 역할을 담당해주어야 한다. 이런 ‘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부모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켜주는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조절’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개가 광견병에 걸려서 날뛰면, 잘 묶어 놓아서 남은 물론 자신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경찰’, ‘사회의 법규’, ‘쉘터’ 등의 가죽 끈으로 ‘동물화 된 인간’이 남을 해치지 않을 때까지, 힘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대뇌의 기능이 돌아온 후에(그것이 수분, 수시간, 수개월이 되더라도) 가족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해당 기사는 <엠디저널>의 자료 협조로 제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