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감자와 고구마의 이름)43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감자와 고구마의 이름)43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6.02 09:00
  • 최종수정 2020.06.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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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에서 고구마와 감자가 이름이 바뀐 사연

[헬스컨슈머]고구마의 원산지는 멕시코 유카탄반도 지역과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강 하구지역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작물은 현지 원주민 사회에서 재배 및 소비되다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고구마도 다른 여러 작물과 함께 유럽에 전파되었다. 아시아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온 것인데, 무역로를 따라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온 때는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 후반으로, 감자가 들어온 시기보다 조금 빨랐다. 1760년대 초 우리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을 때 조엄이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이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일본기행문 ‘해사일기’에 보면 “대마도에 먹을 수 있는 뿌리가 있다. 감저(甘藷) 또는 효자마(孝子麻)라 하는데 왜음으로는 고귀위마(高貴爲麻)이다. (중략) 이것들을 우리나라에 퍼뜨린다면 문익점이 목화를 퍼뜨린 것처럼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 뒤 우리나라에서 고구마는 ‘감저’(甘藷), 즉 ‘단맛이 나는 덩이뿌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초기에는 고구마의 특성에 생소해 보급에 문제가 있었는데, 주로 사람들이 감저의 월동 방법을 잘 몰라 추위에 얼어 죽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이후 실용학문에 눈 돌린 동래부사 강필리가 쓴 <감저보>, 서유보가 쓴 <종저보>가 출간된 뒤에야 비로소 고구마 재배가 널리 퍼졌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구황작물]

특이하게도 고구마는 땅이 기름지면 잘 자라지 않는다(이는 감자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식물들은 땅이 기름진 곳에서 잘 자라는데, 감자와 고구마는 기름진 땅에서 재배하면 썩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들은 산간지방의 모래 섞인 곳에서 잘 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감자와 고구마를 구황작물, 즉 ‘흉년의 비상식량’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고구마는 덩이뿌리 식물이라 섭취한 영양소를 최대한 뿌리에 저장한다. 그래서 고구마가 영양소를 뿌리에 많이 모아둘 수밖에 없는 환경, 곧 척박하고 가문 땅에 고구마를 키우는 것이 제격이다. 땅이 기름지면 고구마는 애써 뿌리에 영양소를 비축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뿌리는 별로 발달하지 않고 줄기와 잎이 우거지게 된다.

산지가 전 국토의 70%인 우리나라에서, 감자와 고구마는 척박한 산지에서도 잘 자라는 고마운 작물이다. 고구마는 다른 밭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면서 소출이 아주 많은 편이다. 고구마는 예로부터 마땅한 식량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산간지역 돌밭을 개간해 심는 일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평지에는 쌀을 심고, 다른 곡물을 심기 힘든 비탈진 곳이나 황폐한 곳에 고구마를 심어 월동준비를 했다. 고구마를 잘게 썰어 몇 개월 동안 잘 말렸다가 끓여먹는 빼떼기죽은 과거에는 힘든 겨울을 나기 위한 조상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고구마 보다 늦게 북쪽에서 들어온 감자]

감저(고구마)보다 늦게 청나라로부터 들어온 감자는 북쪽에서 왔다 하여 ‘북감저’라 불렸다. 고구마는 원산지가 열대아메리카 지역으로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반면, 감자는 원산지가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인지라 추운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이렇게 고구마는 따듯한 곳에서 자라는 작물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재배지역이 남쪽에 제한된 반면 감자는 한반도 전역에서 쉽게 자랐다. 그래서 점차 한반도에서는 고구마보다 감자를 더 많이 먹게 되어 식량으로서의 기능이 탁월했다.

이로 인해 ‘북감저’에서는 ‘북’자를 떼어버리고 감자가 되었고, 고구마는 남감저로 불리다 이마저도 잃어버리고 일본의 ‘고귀위마’에서 유래된 고구마라 불리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감자나 고구마가 다 같이 영어로 ‘potato’라 불리고 고구마가 좀 더 달다 하여 ‘sweet potato’라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고구마가 ‘potato’였다. 그 뒤 비슷하게 생긴 감자가 전해졌고 고구마를 뜻하던 ‘potato’와 구분해 ‘white potato’라 불렀다.

이후 둘의 운명이 바뀌었다. 보관하기 어려운 고구마는 대량재배에 성공하지 못한 반면 감자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주식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potato’라고 하면 감자를 떠올리기 시작했고, 고구마는 ‘sweet potato’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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