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난 지원금은 대체 언제?
일본, 재난 지원금은 대체 언제?
  • 최유진 일본 도쿄 특파원
  • 기사입력 2020.06.05 14:46
  • 최종수정 2020.06.0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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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대두되며, 많은 국가에서는 ‘전국민 지원금 지급’이라는 과감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 역시도 이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인당 10만엔 (약 110만원)의 재난 지원금 지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홍보만 요란할 뿐, 정작 실제 지원금의 지급은 한없이 늦어져 국민의 불만과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재난 지원금을 신청하는 방법은 온라인 신청과 우편 신청 두 가지가 있다. 문제는 온라인 신청은 절차가 너무나 까다롭고, 우편 신청은 신청서가 집으로 보내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온라인 신청의 문제]

주민등록증 = ‘마이넘버카드’ 소지율 15%

먼저 온라인 신청의 경우, ‘마이넘버카드(주민등록카드)’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얼핏 보면 당연한 소리인 것 같지만, ‘주민등록증=신분증’인 우리나라와 달리 마이넘버카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신분증과는 또 다른 별개의 주민증이다. 이 때문에 누구나 필수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국민 중 마이넘버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15%에 불과하다.

공인인증서 = ‘온라인 서명용 증명서’의 불편함

하지만 운 좋게도 이 마이넘버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온라인 신청이 일사천리인 것은 아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많은 지적을 받은 공인인증서와 비슷한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마이넘버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온라인 이용이 가능한 ‘온라인 서명용 증명서’를 추가해놓은 상태여야 하고, 또한 이 ‘온라인 서명용 증명서’가 기간에 맞춰 유효기간 갱신을 해놓은 상태여야 한다.

다행히 위의 기준들을 모두 만족한다 해도 마이넘버카드를 읽을 수 있는 PC용 IC카드리더기 또는 마이넘버 앱 설치가 가능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인 비율이 높은 일본의 특성상 스마트폰 대신 구형 휴대폰을 사용하는 인구도 적지 않은데다, 안드로이드 폰의 경우 통신사별로 기종이 너무 많아 설치를 해 보기 전까지는 사용 가능 여부를 알기 어렵다. 아이폰 계열은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온라인 신청을 위한 카드나 PIN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이를 새로 받으려 해도 이 또한 쉽지 않다. 카드 발급 자체가 1개월 정도 소요되고, PIN코드를 여러 번 잘못 입력해 사용이 차단된 경우 직접 관공서로 가야만 차단을 해제할 수 있다. 덕분에 도쿄에서는 수백명이 관공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심지어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시스템 과부하로 인한 웹사이트 다운으로 인해 신청이 쉽지 않았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신청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했어도 확인은 수작업으로?

천신만고 끝에 온라인 신청을 했다고 하자. 더 큰 고비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최첨단 기기’로 신청을 했어도, 결국 확인은 공무원들이 일일히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신청을 했다고 한들 우편신청보다 빨리 입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공무원의 인력부족 문제까지 생겨, 한 공무원은 취재를 통해 ‘인터넷 신청을 하신다면 저희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되도록이면 우편 신청을 권장하고 싶다’고 밝히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재난 지원금 신청 안내문, 사진: 최유진
재난 지원금 신청 안내문, 사진: 최유진

[우편 신청의 문제]

그렇다면 우편 신청은 어떨까? 우선은 집으로 신청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 기간이 또 천차만별이다. 빠르면 1주일 이내, 길면 3개월까지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수도인 도쿄의 가장 중심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5월 말 정도가 되어서야 신청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는 점은 상황의 심각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면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동봉해서 보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 가정집에서는 프린터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외출 자제’가 요구되는 이러한 시기에 회사 혹은 편의점에 가서 각종 서류를 복사하고, 우체통에 서류를 넣어야만 절차가 끝난다. 물론 이 또한 서류를 보낸 후 언제쯤에야 입금이 이루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도와줄 방법도 애매해]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지난 4일 일본 고치(高知)시에는 빈곤층 국민들이 신속하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 창구를 설치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정 기준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길거리 생활을 하는 노숙자나 생활 보조금 수여자 등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이 폭력집단 등 반사회적 세력”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계좌가 없을 시 다른 지급 방식을 희망할 수 있는 란을 신청서 자체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노숙자나 생활지원금 수여자들의 경우 계좌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도 5월 1일~5월 29일 사이 계좌가 없는 십수명의 사람들이 방문했지만 지원금 수령에 실패했다. 시청 담당자는 “모두는 아니지만 일부 분들의 신청 기회 자체를 박탈하였을 수는 있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5월 말 기준, 한국에서 90%정도의 가구가 재난 지원금을 손에 쥔 데 반해 일본에서 실제로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의 수는 19%에 머물렀다. 지금과 같은 일처리 방식이라면 향후 업무 처리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수도 도쿄에서도 제대로 수령한 사람이 몇 안되는 수준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