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가 지켜낸(?) 소비자 건강
마피아가 지켜낸(?) 소비자 건강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06.12 11:54
  • 최종수정 2020.06.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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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품질관리의 선구자, 알 카포네

[헬스컨슈머]우유란 정말 엄청난 식품이다. 그 영양학적 가치는 둘째치고, 식품문화적 가치는 정말 압도적이다. 그래서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외식 메뉴판이란 지뢰나 다름없다. 한국에서도 이런 정도인데, 미국 등지의 서양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우유를 먹는다는 ‘도박’]

하지만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우유를 먹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박은 안 하면 되지만 우유를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도박보다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그때 당시 품질관리란 개념은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냉장수송의 비용도 하늘을 찌르다보니 일상 소비재인 우유를 차갑게 운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제대로 된 도시화가 진행된 그 시절의 소비자들에게는 더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상한 우유는 보통 우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아이들에게 실제로 유익합니다(Swill milk was actually as good or better for children than regular milk.)”

마이클 투미(Michael Tuomey) 의원, 1858년 5월 진행된 뉴욕의 ‘상한 우유 청문회(Swill milk Scandal)’에서 발언

실제 우유 ‘장난질’

그때 그 시절엔, 팔다 남은 우유를 새 상품에 섞어 넣는 것은 문제 축에도 못 들었다. 밀가루(심지어 분필 가루까지)를 섞어 흰색을 내던가, 성분 조작을 위해 멜라민(2008년에 중국에서 수만명의 영유아 환자를 냈던 그 ‘멜라민’이 맞다!)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미국 중부에서는 우유병(Milk Sickness)라는 질병도 발생했다. 이는 소가 서양등골나물이라는 독초를 먹어서 생기는 병인데, 개인에 따라 유해성이 다르다고 한다.

1854년 뉴욕에는 1만 4,948명의 사망자가 있었는데 그중 8,000명이 상한 우유를 먹고 사망한 것일 정도로, 우유 품질관리는 심각한 문제였다. 심지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키워낸 주인공인 그의 어머니도 우유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며, 덕분에 링컨은 꽤나 긴 시간동안 우유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 역시도 여러 품질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기존 유통업자들의 저항이 매우 거셌다. 그 때문에 여러 품질 제도를 도입하는데 그로부터 70년, 우유 유통 시스템의 기술적/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

물론 그것이 2차대전 이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참고로 그 당시 미국엔 이미 고층빌딩과 엘리베이터(1853년)가 일상인 시대로, 지하철(1892년)도 개통되었으며, 가정용 냉장고(1913년)도 개발된 때였다.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과학적/사회적 능력이 이미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193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던 셈이다.

알 카포네, 사진제공: 구글
알 카포네, 사진제공: 구글

[문제 해결사, 알 카포네]

이런 끔찍했던 우유 유통제도를 바꾼 사람은 정치인도, 기업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었다. 바로 미국의 전설적 마피아인 ‘알 카포네’였다.

알 카포네는 미국의 금주법 시행 당시 밀주를 유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결국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밀주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자 알 카포네는 발상을 전환했다. 밀주 유통 시스템과 그의 사업 조직(?)을 동원, 당시 처참한 수준이었던 우유 판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현대 식료품 유통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방침은 의외로 상식적이었다. 물론 그를 실현하는 과정이 문제이긴 했다. 그는 깨끗하고 정직한 원료를 확보하고(돈과 총으로 좋은 농장을 확보), 원료의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며(조직원 동원한 감시 및 직접 노동), 이렇게 생산한 제품을 신선한 상태로 냉장 수송(금주법 당시 맥주를 유통하던 방식)을 하고, 전국적인 유통 운송을 조직(폭력과 돈으로 노조 제압 및 비용 협상)했으며, 우유병에 유통기한을 표시(유통기한 표시 기계의 매점매석 및 독점, 강매)하는 등, 상당히 선구적인 제도를 정착시켰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그는 금주법 시절에 밀주를 팔면서도 상당히 품질 관리에 신경썼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는데, 제일 신빙성이 높은 것은 ‘생산할 때는 고품질이었는데 정작 팔 때 보니 저품질이란 것은, 밑의 부하가 돈을 빼돌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나중에 우유 사업을 할때도 비슷한 이유로, 품질이 안 좋은 우유를 판 사람을 납치해서 그 제품을 모조리 입에 들이부었다는 소문이 있다.

“우유가 밀주보다 마진이 높아! 우리가 업종을 잘못 골랐어!”

알 카포네의 발언, <Uncle Al Capone: The Untold Story from Inside His Family> 중에서,

좌우지간, 알 카포네는 그의 우수한 품질관리 방침으로 인해 우유 사업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다. 많이 마셔봤자 일부 가정에서 하루 서너잔이 전부인 술에 비해, 신선하고 건강한 우유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매일 몇 통씩 소비되었다. 시장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우유 시장은 합법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행한 온갖 범죄와 악행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알 카포네는 우유 유통을 시작한지 3달 만에 잡혀갔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인은 그가 만든 품질관리 및 유통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분명 마피아로서의 행적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오늘 마신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떼에도 그의 역할이 있었다. 이쯤 되면 미국 소비자, 아니 전세계 소비자 건강의 수호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