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쓰려면 탄수화물이 필수라고?
머리를 쓰려면 탄수화물이 필수라고?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06.19 14:53
  • 최종수정 2020.06.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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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날 먹는 초콜릿은 그냥 기분전환용이다

[헬스컨슈머]시험날이 되면, 학교 주변 매점과 편의점에서 달콤한 초콜렛과 사탕을 사는 모습이 종종 보이곤 한다. 이것은 아마도 ‘머리를 쓸땐 탄수화물, 즉 단 것을 먹어야 한다’라는 속설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건강을 신경쓰는 가정의 아이들도 시험날에는 은근슬쩍 평소에 맛보지 못했던 달콤한 간식들을 입에 넣곤 했다.

하지만 일단 그런 사소한 달콤함에 즐거워하던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한다. 우리가 머리 쓰는 것과 탄수화물은 필연적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탄수화물이란 무엇인가]

탄수화물이 우리 두뇌활동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탄수화물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탄수화물이란 포도당, 자당(설탕) 등 당류 유도체를 통틀어 일컫는 표현이다. ‘탄+수+화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화학적으로는 탄소,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천연 고분자 화합물(Natural High Polymer)이다. 또한 탄소가 포함되어 있기에 유기화합물(Organic Compounds)에도 해당된다.

탄수화물의 범위

탄수화물은 비교적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흔히 단맛이 나는 당류가 대표적이고, 곡물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걸쭉한 녹말, 그리고 심지어 식이섬유 등도 전부 탄수화물에 속한다.

탄수화물이 사랑받는 이유

그렇다면 왜 이 탄수화물이 그렇게 주목을 받느냐? 그것은 탄수화물에 속하는 포도당이 지구의 가장 근원적인 생산활동인 ‘광합성’의 대표적인 생산물이자, 절대다수 생명체들이 기본적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대부분 소화를 통해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그래서 현대 인류는 일상의 식사인 빵, 밥, 면 등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했고, 이는 농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친근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고기와 유제품, 해산물은 산지가 아니면 귀한 편이었으며,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에게는 곡물 음식이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뇌는 탄수화물이 아니라 포도당을 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뇌가 탄수화물을 쓴다’라는 말은, 사실 ‘뇌는 포도당을 최우선적으로 사용한다’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또한 뇌뿐만 아니라 적혈구도 포도당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지만, 그 포도당의 출처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탄수화물이 친숙할 뿐이지, 단백질과 지방에서 분해된 포도당도 똑같은 포도당인 것이다. 포도당을 빠르게 섭취하고 싶다면 초콜릿이나 사탕보다는, 아예 약국에서 포도당 용액을 사서 들이켜라. 물론 그래봤자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테지만 말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오히려 탄수화물을 줄여야 할 이유]

한국 문화에서는 ‘밥’의 의미가 절대적이다. 안부를 물을 때 ‘밥 먹었냐’, 약속을 잡을 때 ‘언제 밥 한번 먹자’, 건강이 걱정될 때 ‘밥은 먹고 다녀야지’ 등, 밥을 언급하는 빈도수가 절대적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과도한 탄수화물은 지방의 소모를 막아 비만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간단히 말해 섭취한 에너지와 사용한 에너지를 서로 비교했을때, 에너지 과잉이면 살이 찌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살이 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탄수화물이 위험한 것이, ‘무심코 많이 먹기 쉬운’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게당 에너지, 양 대비 칼로리는 지방이 제일 높다. 하지만 한국사람의(그리고 대부분 문화권 시민들의) 입맛에 과도한 지방은 썩 달갑지 않은 메뉴다. 돼지 비계만 구워먹거나 버터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을 상상해보자. 아무리 먹는 것이 취미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지방 비율이 절반을 넘는 음식을 양껏 먹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탄수화물을 생각해보자. 굳이 식탐이 많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자칫 방심했다간 달콤한 초콜릿 한두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운다. 또한 식사시간이 아니더라도 과자, 빵 등 간단한 간식을 통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절대 적지 않다. 또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아질수록 비만과 당뇨 등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혈장 팔미톨레산 농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이어트에서 탄수화물을 제일 경계해야 할 이유다.

열매가 아닌 씨앗을 먹는다는 발상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열매가 아닌 씨앗을 먹는다는 발상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원래 탄수화물을 잘 안 먹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량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아 주로 에너지를 고기나 열매에서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식단은 단백질, 지방 및 약간의 당분이 전부였을 것이다. 애초에 식물의 열매가 아닌 씨앗을 먹는다는 발상은 그리 오래된 아이디어가 아니다.

다만 지역별로 기후의 차이는 어느정도 존재했기 때문에, 지역별 식단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춥거나 척박한 지방에서는 사냥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겠지만, 덥거나 토질이 비옥한 지역에서는 지천에 자라나는 열매가 식량의 중요한 부분이었을 터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런 비옥한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들조차 최소 절반 수준의 에너지를 단백질에서 얻었다. 농경 목적하에 인위적으로 육종하지 않는 자연적인 식물이 제공하는 에너지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인류 식량은 수렵에 의존해야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수만년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에서 탄수화물이 주 식단이 된 것은 겨우 몇천년에 불과하다. 그 자리는 원래 사냥을 통한 고기와 해산물, 그리고 약간의 채소의 것이다. 인간이 탄수화물을 주로 먹는 것은, 수십년간 휘발유를 쓰던 엔진에 갑자기 경유를 집어넣는 것과 같은 문제다. 그래서 최근 ‘저탄고지’, ‘황제 다이어트’등도 이 점에 착안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 역시도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탄수화물 과다인 우리 식문화]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로 정평이 나있다. 전 세계를 다 뒤져봐도 한식처럼 깔끔하고 속이 편한 식단은 드물다. 심지어 한국 어른들 기준에는 ‘불량식품’인 라면이 미국 등지에서는 ‘건강식’으로 소개될 정도다.

하지만 그런 한식도 완벽하지는 않다, 왜냐면 한식을 포함한 한국식 식문화에서 탄수화물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끼니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비우는 밥 한그릇만 해도 상당한 양의 탄수화물이다. 여기에 라면이나 전, 수제비와 같은 것을 곁들여 먹는것도 다반사다.

솔직히 한국처럼 극단적인 지역도 많이 없다. 한국인들은 밥반찬으로 라면을 먹는, 영양학적으로 보자면 탄수화물 반찬으로 탄수화물을 먹는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김치볶음밥 반찬으로 김치를 먹는 민족 답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한국 사람들은 인슐린 기능이 비교적 약하다는 것이다. 인슐린이란 혈당, 즉 체내 포도당이 너무 많을 때 분비되는 단백질성 호르몬인데, 포도당을 분해해 지방에 저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견 보면 살찌기 쉽지 않은 유전자라고 좋아할 수 있지만, 이 때문에 고혈당과 당뇨병에 걸리기 훨씬 쉬운 것이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몽골 제국의 전사들도 야채따윈 안 먹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몽골 제국의 전사들도 야채따윈 안 먹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탄수화물이 굳이 필요없는 이유]

인간의 몸에서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포도당은 탄수화물 뿐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으로도 만들어진다.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을 ‘3대 영양소’가 아닌, ‘3대 에너지원’이라고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실 뇌를 사용하는데 탄수화물이 필수적이라면, 결국 생명활동에 탄수화물이 필수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뇌는 온 몸의 의식적/무의식적 활동을 총괄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며칠, 심지어 몇 달간 탄수화물을 거의 섭취하지 않던 사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였고, 때로는 탄수화물을 듬뿍 섭취하는 ‘문명화된 농경사회’를 무력으로 정복하는 기록까지 남겼다. 바로 척박한 몽골지역에서 짐승의 고기를 먹고, 그 피와 젖을 마시며, 그 가죽으로 천막과 옷을 지어입던 몽골인들이다. 또한 이 외에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등지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도 혹한의 추위 속에 고기만을 먹다, 매년 며칠 되지 않는 여름에만 간신히 소량의 과일과 줄기식물들을 잠시 먹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소위 ‘문명인’들보다 훨씬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 이 외에도 러시아의 추반인, 아프리카의 삼부루 및 렌딜레족, 미국 원주민의 일파인 수족, 브라질의 가우초 등이 이러한 삶을 이어왔다.

앞서도 언급했듯, 우리 몸 속 세포는 대부분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형태에서 지방을 연소하는 형태로 전환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의 몸은 탄수화물에서 지방으로 에너지원을 전환할 수 있는 생화학적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이런 변환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전환 과정이 우리 몸 속에서 신진대사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몸에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일부 세포를 위해, 간은 각 세포에서 쓰기 충분할 정도의 포도당을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위해 특별히 큰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부모님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들에게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좀 먹어라!’라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과학적 근거가 발견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성이 있는 듯하다. 어느날 아이가 "동서양을 공포에 떨게 하고,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 제국의 전사들도 야채따위는 먹지 않았는데요?"라고 반박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