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한 라임, 대영제국을 만들다
새콤한 라임, 대영제국을 만들다
  • 강지명 기자
  • 최종수정 2020.07.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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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라임’이라고 하면 새콤달콤한 주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한국의 소비자들은 라임을 먹을 일도 크게 없거니와, 일상 음식의 재료로 쓸 일은 더더욱 없어 어느정도 낯선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라임이 굉장히 친숙한 과일이자 향신료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많은 음식에 종종 들어가는 ‘식초’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적당할 듯 하다. 하지만 이런 라임이 근대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라임, 괴혈병을 막다]

작디작은 새콤한 과일이 수백년을 이어온 대영제국의 기틀을 놓았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이처럼 작은 요소들이 크나큰 태풍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다.

라임이 이러한 역할을 하게 된 것에는 그 영양적 의미가 크다. 비타민C가 풍부해서 괴혈병을 해결하는 특효약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 대항해시대가 펼쳐지며, 많은 유럽 국가들은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 많은 함대와 선원을 양성했다.

하지만 선박 건조 기술도, 동력 기술도, 의학적 지식도 부족했던 당시, 최대한 부피가 작고 오래가는 마른 비스킷과 육포, 술을 식량으로 실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그리고 물은 장기간 보관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항해 기술도 부족했던 당시는 한번 배를 타면 몇 달간 육지를 보지도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긴 시간동안 음식이라곤 사람 이빨보다 단단한 비스킷, 가죽구두보다 질긴 육포가 전부였다. 물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었다. 몇 달간 묵어서 냄새나는 물이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도수가 높은 술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해군이든 무역선이든 모두 괴혈병으로 인해 고생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긴 시간을 찾아 헤맸다. 그 결과 찾아낸 것이 바로 과일, 훗날 발견되는 비타민C였다.

 

[라임 주스는 기집애들이나 먹는거다?]

사실 괴혈병 대책으로 처음 발견된 것은 라임이 아니라 레몬이었다. 하지만 레몬은 가격이 너무 비쌌고 맛도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지급된 것은 오렌지였는데, 이 역시 비용상 문제가 컸다.

그러자 영국에서는 나중에 오렌지 대신 라임을 보급했는데, 이유는 오렌지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괴혈병 예방 효과는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바닷사람들은 매우 거칠고 사나웠으며, 이런 사람들은 라임 주스를 ‘기집애들이나 먹는 것’이라며 폄하했다. 때문에 많은 나라 소속 선원들이 괴혈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만, 당시 '바다 싸나이'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 없었나보다. 

하지만 영국 해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임 주스를 강제로 보급했고, 덕분에 영국 수병들은 다른 나라 수병, 혹은 다른 영국인들에게 ‘기지배들처럼 라임 주스나 먹는다’는 라이미(limey)라는 놀림을 받았다. 나중에는 이것이 대명사처럼 굳어져 영국군 전체를 라이미로 부리기도 했다. 영국 해군은 라임 덕분에 괴혈병에서 자유로웠다. 덕분에 다른 강대국 해군 장병들이 ‘남자답게’ 괴혈병으로 골골거릴 때, 이를 비웃으며 쌩쌩한 컨디션으로 바다를 제패했다. 이런 현상이 장기간 누적되자, 그저 그런 해적질이나 하던 영국은 결국 압도적인 차이로 바다를 제패하며 ‘대영 제국’의 기틀을 완성한 것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라임의 우수함]

당시 영국 해군의 영향으로 영국군과 영국과 그 식민지인들 사이에서 라임이 많이 퍼지기도 했다.

덕분에 영국 요리 계통에 속한 칵테일이나 크림, 잼, 음료 등에 자주 등장한다. 사실 영국 해군이 라임을 문제없이 보급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 요리가 워낙 맛없었는데 라임주스는 꽤나 맛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물론 라임 역시 생과일이니만큼, 보급 자체는 쉽지 않았다. 이처럼 생 라임을 보급하기 힘들어서 개발된 것이 바로 18세기에 등장한 라임 주스 ‘코디얼’이다. 코디얼이란 설탕을 이용하여 주스 원액을 농축해 장기 저장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선원들은 이것을 럼이나 진 같은 술에 타서 마셨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칵테일 레시피 중 다이키리나 짐렛 같은 것은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보다 좀 더 빨리 해상 강국으로 등극한 네덜란드 역시 괴혈병 예방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선원들에게 평소에 채소를 많이 먹이고, 항해시에도 양파와 자우어크라우트(배추절임)를 정기적으로 배급해 괴혈병 발병율이 그나마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비타민C 함량은 라임과 비교할 것이 못 되었고, 덕분에 장거리 항해에서는 여전히 괴혈병으로 골골대기 일쑤였다. 덕분에 영국은 네덜란드가 개척한 ‘해양 강국’이라는 개념을 고스란히 뺏어와 그 열매를 취했다. 그 작은 과일이 향후 수백년의 인류 역사를 좌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