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문제로 보는 中김치 국제표준?
번역의 문제로 보는 中김치 국제표준?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11.30 12:15
  • 최종수정 2020.11.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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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번역 체계의 허점을 이용한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

[헬스컨슈머]중국이 김치를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 등재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중국 관영매체에서는 ‘김치 종주국인 한국의 굴욕’이라고 도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국내 다수 매체들이 일거에 일어나 한국의 전통음식 주권을 강탈하려는 중국과, 이를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정부를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한국의 김치 주권은 이미 전세계가 인정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과연 ‘팩트’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언어, 그 미묘한 차이]

중국의 주장은, 그리고 그것을 보도한 국내 매체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정부가 자기네 음식인 ‘파오차이’를 ISO에 등재한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중국 매체들이 그것을 와전한 것이고, 이어서 한국 매체들 역시 중국 매체들 및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감안했는가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굉장히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한국인들이 아는 바로 그 ‘라면 먹고 갈래?’라는 필살의 대사를 미국에서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묘한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다. 반대로 ‘Wanna watch Netflix and chill?’라는 그 문장을 한국에서 ‘쉬면서 넷플릭스 좀 보고갈래?’라고 그대로 옮기는 것은 썩 좋지 못한 선택이다.

위의 예시처럼,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장이, 문화에 따라 이렇게 이질적일 수 있다. 그런 이해 없이 그대로 문장을 옮겨오는 것은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 파파고 같은 인공지능들이 할 실수이지, 팩트와 그 너머 진실을 전달해야 할 기자들이 해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파오차이’는 ‘김치’가 아니였다

같은 맥락으로, 본디 ‘파오차이’는 ‘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좁게는 중국 사천성의 배추 반찬, 넓게는 배추를 모종의 양념으로 절인 반찬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즉, 굳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자면 ‘김치’가 아닌 ‘배추 절임’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한 것이다. 반대로 ‘김치’를 중국어로 번역하자면 ‘파오차이(泡菜)’가 아닌 ‘라바이차이(辣白菜)’가 더욱 정확하다. 중국 내에서는 원래 파오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라바이차이라는 독립적인 단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국 공통의 새해인사조차 그 의미는 각기 다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만국 공통의 새해인사조차 그 의미는 각기 다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어의 한계,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의 차이]

이것은 중국어의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은 사전에 없었던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기보단 원래 있는 비슷한 단어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것은 뜻 위주의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중국어의 문제다. 소리 위주의 표음문자인 알파벳이나 한글,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언어들은 소리 자체를 묘사하기 쉬워, 필요하다면 그 단어 자체를 외래어로 가져올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생각해보면 쉽다. 해당 브랜드의 본고장인 미국인들에게, 한국어로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를 말하면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어로 씽빠커(星巴克), 마이땅라오(麦当劳)를 백날 외쳐봤자 알아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표의문자는 문자 자체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냥 발음만 묘사하다간 본래 의미와 굉장히 동떨어진 의미의 외래어가 완성된다. 그래서 기존의 중국 번역가들은 의미 중심의 번역을 선호했다. 물론 최근에는 다시 발음 중심의 번역을 선호하는 추세로 돌아서긴 했다만, 중요한 어휘들은 이미 다 의미 중심의 번역으로 고정된지 오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예전에는 일본이, 이젠 중국이 김치를 뺏어가려 든다]

다시 ISO등재로 돌아와서, 등록 문서의 내용 자체는 파오차이 관련 사항으로, 김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해당 규격이 김치(Kimchi)와 무관하다는 단서조항도 명시되어 있다.

결국 중국 매체들의 ‘김치를 중국 주도로 등록했다’는 주장은 자국 번역의 허점을 이용한 말장난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중국 언어체계의 허점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한국 김치에 관한 식품 규격은 19년 전인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이미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사실이 어떻든, 중국 넷상에서 즐비한 김치 주권에 대한 조롱은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된 중국의 관영매체이자 정부의 입김이 강한 <환구시보>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옛날에는 일본의 ‘기무치’, 이제는 중국의 ‘파오차이’가 우리의 식문화를 강탈하려 하는 것이다.

한국 식문화의 시작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치, 그 김치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고, 코로나 방역 최우수국이라는 타이틀이 이보다 더욱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