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돈다는 우유, 가격 왜 안 떨어지나?
남아돈다는 우유, 가격 왜 안 떨어지나?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20.12.02 12:32
  • 최종수정 2020.12.0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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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가격연동제

[헬스컨슈머]최근 휴교의 여파로 우유 급식 수요가 급감하며, 우유 산업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하지만 수직 하락했다는 우유 수요와는 달리,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우유 가격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찾는 사람은 없다는데 계속 오르는 우유값, 도대체 왜 그럴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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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에 맡길 수 없는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원유가격연동제때문이다. 이 제도는 낙농업자들이 업계의 안정화를 위한 요구에 의해 20138월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이러한 제도가 통과된 배경에는, 낙농업은 굉장히 장기적인 산업이라, 시장 상황에 따른 적응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원유(原乳)를 젖소에서 짜내기 위해서는, 일단 충분히 성숙한(생후 14개월 이상) 암컷 젖소가 임신 후 출산을 한 상태여야 한다. 게다가 계절(발정기) 편중에 임신 기간(270)까지 고려해야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생산조절이 어렵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신한 젖소는 매일 일정량 젖을 짜 주어야 건강함을 유지 할 수 있다.거기다 갓 짜낸 원유는 상하기 쉽고, 이 때문에 반드시 가공을 거쳐야 판매가 가능하다.

가격하락이 이어지면, 원유를 그냥 폐기해버린다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수요와 관계없이 매일 일정량을 생산해야 하고, 저장성도 안 좋으니 결국 생산해서 버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시장 상황이 한번 불안정해지면, 수십년동안 이어온 젖소 농가가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는 것도 흔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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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결정제도와 연유가격연동제]

그래서 결국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고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는, 가격 결정 제도가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정부의 고시가격으로 결정되다, 1999년에 낙농진흥회가 설립되면서 가격 결정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가격 결정을 두고 혼란이 이어졌고, 결국 2013년 이후 매년 원유가격을 조정하는 원유가격 연동제가 시작됐다.

연동제는 통계청 우유생산비 조사결과에 따라 전년도 생산비 증감액을 원유기본가격에 반영하고 매년 81일부터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배제되고 기계적으로 원유가격을 산출한다는 부정 여론이 형성된 데다 통계청 생산비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론도 있어 2015년에 현재의 원유가격 연동제로 개선이 이뤄진다.

 

[제도의 악용, 가격 배짱?]

물론 해당 제도의 도입 의도는 좋은 일이고, 이 때문에 국내 낙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제도로 인해 경직화된 가격은 사실상 우유의 가격하한제로 작용했다. 결국 우유 재고량은 남아도는데 우유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그래서 소비도 증가하지 않는 악순환만 벌어졌다.

게다가 원유 쿼터제(총량제)로 인해 매년 낙농가로부터 사전에 계약된 분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하는 유가공업체(우유 업체)는 재고만 쌓이고 있다.

사실상 이는 제도를 이용한 낙농가의 가격 배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시행 후 우유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기만 했고, 반대로 판매량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물가는 오르면 올랐지 내리는 일은 드물기에 물가 상승률과 원유 가격이 연동되는 한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의 2020년 원유 가격은 킬로그램 당 1034원으로, 세계 최고가격 수준에 달했다. 게다가 2020년 기준 낙농가들의 연간 영업이익률은 25%를 상회한다, 상위 10개 유가공업체의 평균 연간영업이익률인 2.5%과는 상당히 격차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우유 한 품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유제품, 우유 및 분유를 원료로 이용하여 만드는 과자, 빵 등 식품 물가까지 덩달아 이 제도 때문에 상승하고 있다. 당연히 서민들의 체감 물가도 악화되고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의 낙농업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우유 낙농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은, 우리와는 반대로 우유 가격이 물보다 싸서 문제라고 한다. 원유 가격을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따른 현지 낙농가의 손해는 사육 두수나 생산 면적당으로 계산해 국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격적 차이 때문에,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가격을 이유로 탈지분유를 수입해 쓸 정도다. 결국 낙농업 자체의 산업경쟁력이 국내보다 낫다는 해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이와 같은 차이는 사료의 국산화(국내에서는 젖소 사료를 대부분 수입해서 쓴다), 지리적 특성, 식문화적 특성상 극복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극복이 힘들다 해서 그저 내버려 두는 상태는 전혀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