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건강기행 -1-]  영화 '가을 소나타'와 쇼팽 '전주곡 2번'을 통해 본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음악건강기행 -1-]  영화 '가을 소나타'와 쇼팽 '전주곡 2번'을 통해 본 부모와 자녀의 관계
  • 음악 전문 객원기자 최은혜
  • 기사입력 2021.05.26 10:34
  • 최종수정 2021.05.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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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어머니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1978년 스웨덴 영화 <가을 소나타>를 소개한다.

영화 <가을 소나타>

 


- 자의식 강한 엄마와 엄마의 인정에 목마른 딸

자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자신의 커리어가 더 중요한 피아니스트 엄마 샬롯과 유년 시절 엄마에 대한 애정결핍을 안고 있는 목사의 아내인 딸 에바가 오랜만에 만난다.

엄마는 딸에게 피아노를 한 곡 연주할 것을 권하고, 딸이 쇼팽의 <전주곡 2번> 의 첫마디를 치자마자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과 못마땅한 눈빛. 샬롯이 직접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이 곡은 쇼팽의 자신감과 열정, 고통에 찬 남성성, 아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슬픔이 느껴지는 곡으로 알량한 감상에 젖은 중년 부인의 감성으로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연주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딸에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샬롯.

(사진출처) : 영화 '가을 소나타' 스틸컷
(사진출처) : 영화 '가을 소나타' 스틸컷

 

자신감 넘치고 화려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 에바의 주눅들고 위축된 망연자실한 표정의 대비를 잉마르 베르만 감독은 섬세하게 연출한다.

평생 엄마의 인정과 칭찬, 관심에 목말랐을 딸에게 자신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예술가 엄마가 아닌 그저 따스하고 평범한 엄마의 존재는 큰 욕심일까?

 

- 모녀 간 갈등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쇼팽 전주곡 Op.28-2 a단조

<가을 소나타> 영화에서 감정의 응어리가 쌓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대변하듯 쇼팽 전주곡 2번은 주선율과 어울리지 못 하고 겉도는 불협화음 (dissonance)으로 시작한다.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지속되다 곡의 말미에 a단조의 으뜸 화음으로 마무리되며 오랜 시간동안 비틀어진 '엄마와 딸'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여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연주시간 2분 여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쇼팽의 전주곡 2번 연주 장면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애증의 모녀관계를 보여주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사진출처) : 영화 '가을 소나타' 스틸컷

 

특히 스웨덴 출신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노르웨이 출신 리브 울만의 불꽃 튀는 감정 연기가 정말 압권이다.

이 영화로1979년 영화 <카사블랑카> 의 히로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전미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 마조르카 섬에서 탄생한 쇼팽의 전주곡 (Prelude)

1838년 쇼팽과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는 스페인령의 마조르카 섬으로 요양 여행을 떠나고, 쇼팽이 폐결핵에 걸렸다는 소문으로 인해 발데모사 마을의 수도원으로 쫓겨난 그들은 고립 생활을 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불타오르는 쇼팽의 창작열은 전주곡 24곡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평생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완벽하게 설계된 기하학적 도면에 비유했던 쇼팽은 자신도 장조와 단조를 각각 12곡씩 24곡으로 배치한 전주곡을 작곡한다.

형식적인 절제미와 아름다운 서정미의 균형으로 높게 평가받는 쇼팽의 전주곡에는 마조르카 섬에서 상드와의 사랑, 상드의 아이들과의 갈등, 예측 불가능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부모와 자녀의 올바른 관계를 되돌아보는 5월

사랑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이뤄지는 감정의 대물림. 엄마의 상처가 딸에게, 엄마의 실패가 딸에게 보상심리로, 엄마의 불행이 딸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마치 탯줄 (umbilical cord)처럼 끊어내지 못 하는 그릇된 모녀간의 악순환의 고리, 나의 불행이 엄마의 승리냐고, 나의 슬픔이 엄마의 은밀한 즐거움이냐고 반문하는 장면은 오늘날 부모의 욕심이 자녀에게 과도하게 투영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5월이다.

부모의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자녀들의 결과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녀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5월이 되었으면 한다.

각자의 사명을 타고난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되 생각까지는 주지 말 것을 강조한 칼릴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 Prophet> 에 수록된 ‘아이들에 대하여’ 라는 시를 많은 부모님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