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건강기행 -5-] 바다 그림과 떠나는 음악 바캉스
[음악건강기행 -5-] 바다 그림과 떠나는 음악 바캉스
  • 음악 전문 객원기자 최은혜
  • 기사입력 2021.08.25 13:35
  • 최종수정 2021.08.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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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건강 챙겨주는 ‘바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 불러와

-바다를 그림으로 그린 호야킨 소로야…음악으로 표현한 샤를 트레네·드뷔시

-삶에 대한 낙천적인 마인드 표현한 이탈리아 칸초네 ‘오! 나의 태양’

[헬스컨슈머] 예전 이맘때에는 바다와 계곡, 휴양림 같은 자연에서의 피서나 해외여행 등 여름 휴가를 계획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도, 사람들과 모여 활기찬 바캉스를 즐길 수도 없는 요즘의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TV나 스마트폰으로 도시 여행을 떠나고 VR (가상현실)로 구현된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을 하는 등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상과 세계가 결합된 메타버스(metaverse) 개념이 각광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템포 쉬어가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여름 휴가로 독서나 음악 감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번 ‘음악건강기행’은 음악과 그림으로 떠나는 아트 바캉스(art vacance)의 일환으로 스페인의 바다를 주로 화폭에 담은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과 바다를 주제로 한 음악을 준비해 보았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를 보며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 속의 걱정과 불안함도 말끔히 씻겨 나가는 듯하다. 여름 최고의 피서지이자 휴양지인 바다를 그림과 음악으로라도 느껴 보자.

 

■ 호아킨 소로야 (1863~1923) : 캔버스 위에 바다를 담다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1863년 태어난 스페인의 대표 작가 호아킨 소로야는 프란시스코 고야와 파블로 피카소 사이에 있다고 평가받는 화가다. 젊은 시절 로마와 파리에서 유학을 마친 그는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둔다. 

그의 그림에는 해변가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과 사람들을 향한 화가의 따스한 시선과 사랑이 묻어나기에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들은 ‘눈으로 즐기는 여름 휴가’와 딱 들어 맞는다.

그는 밝고 풍성한 색채감으로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파도와 고운 모래, 강렬한 자연의 빛 아래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를 일터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그려냈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해변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해변을 따라 달리기’를 보면, 코발트블루의 투명한 지중해 바다를 놀이터 삼아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해변을 따라 달리기 @ Museo de Bellas Artes de Asturias
해변을 따라 달리기 @ Museo de Bellas Artes de Asturias

소로야의 고향인 발렌시아 해변만큼 그의 가족이 많은 시간을 보낸 '하베아 해변'. 그림 속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하얀 보트의 로프에 매달린 두 소년의 즐거운 모습과 빛에 반사된 물결은 시원함과 청량함을 선사한다. 

흰 배, 하베아 해변 @historia-art.com
흰 배, 하베아 해변 @historia-art.com

「나는 아이처럼 행복했다네.

우리는 여기 자리를 잡고,

영혼을 기쁘게 해 주는

너무나 파랗고 격렬한 바다를 이미 즐기고 있네.

하베아 해변은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충만한 느낌이라네.」

호아킨 소로야 「바다, 바닷가에서」 p17

 

시원한 바다에 절로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소로야의 그림. 보다 보면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인 샤를 트레네가 부르는 <바다> 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 샤를 트레네가 부르는 샹송 ‘la mer(바다)’

1943년 샤를 트레네가 기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의 정경에 영감을 받아20분 만에 작곡한 샹송인 ‘la mer’. 이 곡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던 샤를 트레네가 1946년 재즈풍으로 편곡을 의뢰하여 탄생한 ‘바다’는 발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삶의 즐거움과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하는 ‘바다’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유럽의 시대적 배경과도 부합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히트곡이 되었다. 1940년대 당시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되고 유급휴가가 허용된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산과 바다로 여유로운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 삶의 기쁨과 환희가 넘쳐흐르는 노래. 샤를 트레네가 밝은 표정과 생기발랄한 제스처로 ‘la mer’를 부르는 흑백 영상을 보면 어깨가 절로 들썩일 것이다. 

「바다 / 은빛 감도는 / 맑은 해안을 따라 춤추네 // 바다 / 빗줄기 아래 / 반사되어 반짝거리네 // 바다는 / 여름 하늘에 뒤섞어 놓네 / 자신의 하얀 양 떼와 / 티 없이 순수한 천사들을 / 바다는 무한한 창공의 목동이라네 // 보라 / 연못가의 / 물에 젖은 저 커다란 갈대들을 // 보라 / 저 하얀 새들을 / 그리고 저 녹슨 집들을 // 바다가 / 그것들을 흔들어 잠재워 주었네 / 맑은 해안을 따라 / 그리고 사랑의 노래로 // 바다는 / 내 마음을 위로했네 영원히」 - Mr. Bean 주연의 영화 <Holiday> 속 샹송 ‘바다’

영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완 앳킨슨이 좌충우돌 문제를 일으키는 중년의 남성으로 분한 ‘미스터 빈’ 시리즈는 90년대 전세계인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대사보다는 행동과 상황 자체로 웃기는 어수룩한 4차원 캐릭터인 Mr. Bean은 2007년에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특히 영화에서 빌딩 창문으로 우연히 본 바다 풍경에 매료된 미스터빈이 고층 빌딩에서 해변까지 도달하는 기상천외한 장면은 포복절도할 정도로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소로야의 대표작인 ‘바닷가 산책’ 역시 바다 풍경이 등장한다. 발렌시아 해변을 걸으며 캔버스 뒤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녀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선을 끈다. 하얀 드레스와 양산 위로 빛과 그림자의 명암대비, 스냅 사진을 찍는 듯한 구도 등이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바닷가 산책, 1909 @commons.wikepiedia.org
바닷가 산책, 1909 @commons.wikepiedia.org

 

■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 소묘’

1889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영향으로 파리의 예술가들은 동양의 문화 예술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일본의 문화가 유럽에 많이 소개되었는데, ‘우키요에(일본의 에도 시대, 서민의 일상이나 풍경을 주제로 한 풍속화)’는 모네, 마네, 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드뷔시 역시 일본 화가인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를 모티브로 하여1905년 관현악곡 ‘바다’를 작곡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

시적이거나 회화적인 주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교향시(symponic poem)의 형태인 드뷔시의 ‘바다’는 ‘1악장 :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2악장 : 파도의 희롱’, ‘3악장 : 바람과 바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드뷔시는 이 곡에서 바다의 일시적인 '정지 화면'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바다의 다양한 인상과 변화를 다채로운 음색들의 자유로운 흐름으로 표현했다.

특히 해가 수평선에서 떠오르며 바다 위를 붉게 물들이는 정오의 모습을 표현한 금관악기의 활약이 돋보이는 1악장, 잉글리시 호른과 오보에 등 목관악기가 빚어내는 물보라를 만들어내는 파도의 움직임이 압권인 2악장, 막상막하의 힘을 겨루는 바람과 바다의 대화를 상상할 수 있는 3악장에 이르기까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색채감을 눈과 귀로 느끼게 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하는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가 명반으로 꼽히지만, 2003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이끄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명연주가 유튜브에 있으니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 나폴리 민요 ‘오! 나의 태양’

습하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와 강렬한 태양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 그 중에서도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항구 도시 나폴리. 그곳에서 탄생한 민요인 이탈리아의 칸초네 중 가장 유명한 ‘오! 나의 태양’ 역시 여름 바캉스 하면 빠질 수 없는 음악이다.

디 카푸아가 작곡한 ‘오! 나의 태양’은 19세기 나폴리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피에디그로타 음악제에서 입상한 곡으로, 데 쿠르티스가 작곡한 ‘돌아오라 소렌토’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칸초네로 손꼽힌다.

3대 테너(the three tenors) 로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약을 펼쳤던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가 1994년에 불렀던 ‘오! 나의 태양’을 들어보자. 나폴리의 바다 물결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노래한 가사는 삶에 대해 낙천적이고 개방된 자세를 지닌 이탈리아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면 하늘에 밝은 빛이 비치운다. 나의 마음에 사랑스런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오!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오! 나의 태양’ 칸초네는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 ‘돛 바느질’과도 잘 어울린다. 밝게 빛나는 햇살과 여름철의 장미를 배경으로, 여럿이 모여 배가 출항하기 전 돛을 바느질하는 장면에서는 묵직한 노동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축제를 한창 준비하는 경쾌함과 부산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돛 바느질 Cosiendo la vela, 1896 @es.wikipedia.org
돛 바느질 Cosiendo la vela, 1896 @es.wikipedia.org

더위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신이 힘들고 지치기 쉬운 8월, 우리들의 일상에도 찬란한 태양빛이 비추길 바라면서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과 음악으로 ‘아트 바캉스’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