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 날 특집 ②] ‘산만한 아이’에 가려졌던 ‘조용한 ADHD’ 여자 아이들
[정신건강의 날 특집 ②] ‘산만한 아이’에 가려졌던 ‘조용한 ADHD’ 여자 아이들
  • 박서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0.18 17:10
  • 최종수정 2021.10.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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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행동(HA)’는 줄고 ‘집중력 저하(AD)’가 나타나는 ’조용한 ADHD’

-최근 20·30대 여성 ADHD 환자 크게 늘어나…조기 치료 소외된 탓

-“그동안 내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적극적 치료하는 사람들

-편집자 주-

10월 10일은 세계 정신건강의 날이다. 이를 맞이해 각 지자체 등에서는 10월 한달간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우리 신문 역시 가스라이팅-ADHD-틱 장애 등 총 세 개의 정신건강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신건강 상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헬스컨슈머] 최근 정신건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글이 있다. 바로 본인이 성인 ADHD로 의심된다며 증상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에는 자세히 몰랐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본인이 고치기 어려운 성격적 한계를 겪으면서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ADHD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한 가지 일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남자아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ADHD 연구가 그동안 유아기와 아동기 남자아이를 중심으로 이뤄진 탓이다. 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명 ‘조용한 ADHD’, 특히 여자 아이들은 잊혀진 채로 자랐고, 뒤늦게 성인이 되어 ADHD를 진단받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정신건강의 날 특집 ①]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 소아 ADHD, 성인 ADHD, 조용한 ADHD

ADHD, 다른 말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불리는 이 장애는 아동기에 주로 나타난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측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뇌 영상 촬영 시 정상인에 비해 주의 집중을 조절하는 부분의 활동이 떨어지는 소견이 관찰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가 요구되는 질병이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ADHD 아동들은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자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또한 앉아 있는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이나 발을 자꾸 움직이고 의자를 들썩거리며, 실내에서 유난히 뛰어다닌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지 못하고, 시험을 보더라도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는 등 오래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급하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규율을 알고 있더라도 어기기 일쑤다.

성인 ADHD는 이러한 증상을 유년기에 치료하지 못해 다 크고 나서도 그대로 앓고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또한, 위의 증상에 해당하지 않아 어린 시절 ADHD를 진단받지 못했던 조용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병이기도 하다.

‘과잉 행동(HA)’는 줄어들고 ‘집중력 저하(AD)’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조용한 ADHD’라고 한다. 휴대폰이나 지갑처럼 작지만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리거나, 숙제나 과제 등 해야할 일을 자주 잊어버린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지 못해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물어보고, 애완동물에게 제 시간에 맞춰 먹이를 주거나 방을 꾸준히 청소하는 것 등 사소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회사 생활에서 실수가 잦아 지적을 받는 일이 반복되며, 하루 중 멍하거나 공상에 잠기는 시간이 많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수치를 보았을 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만한 ADHD 증상은 남성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반면,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조용한 ADHD 증상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그동안의 ADHD 연구가 남성을 기준으로 이뤄졌기 때문임을 증명한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 최근 20·30대 여성 ADHD 환자 크게 늘어나…조기 치료 소외된 탓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데이터에 따르면, ADHD 여성 비율은 2016년 18.6%(1만4559명)에서 2020년 25.2%(3만1420명)으로 증가했다. 남성 비율이 기존 81.6%(6만3601명)에서 2020년 74.8%(9만3219명)로 감소한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30대 여성 환자 사이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의 증가폭은 무려 89.1%에 달했으며, 그 뒤로 20대 여성이 84.6%의 수치를 보였다.

신 의원은 “ADHD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낮은 상태로, 조기 진단 및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 여성이 늘고 있다”며 “성별과 연령별로 유병 현황을 파악하고 질병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연구와 조기 진단 및 치료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신지수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결과는 ADHD 진단의 기준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에서 “만 4~18세의 ADHD 치료제 복용률을 살펴보면, 남성은 7.8%이나 여성은 3.5%로 두 배 이상의 성차가 존재했다. 그러나 만 19~23세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4~5퍼센트의 수치를 보이며 진단과 치료에서의 성차가 거의 없었다”며 “ADHD 여성 환자의 증상은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무시되었으며, 의학 전문가들조차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의 문제로 자주 오진해왔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30년 넘게 ADHD 환자를 만나왔다는 앨런 리트만 박사 역시 “여성 ADHD와 남성 ADHD는 극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증상이 과잉 행동을 내보이는 것과는 달리, 여성의 증상은 부주의하고 구조화를 어려워하는 양상으로 발현된다”며 “일반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이러한 증상과 반대되므로 여성은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며 증상을 숨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 “그동안 내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적극적 치료하는 사람들

ADHD는 엄연히 신경 발달 장애의 일종이다. 위에 열거된 증상에 본인이 해당이 된다고 느낀다면 전문의에게 정확한 검사를 받은 후 약물치료와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또한 소아기 ADHD 검사에서 남아뿐 아니라 여아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의료진의 자세도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본인이 ADHD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는 한 여성은 인터넷 카페에 “원래 타고난 성격이 예민하고, 남들보다는 자존감이 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아보면 지난 학창시절은 제대로 된 친구 없이, 남들 보통만큼만 하자며 고군분투하는 하루하루였다”며 “성인이 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일에서 나도 모르게 실수를 했고, 상대방의 말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두 번은 계속 물어봐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단순히 건망증이나 스트레스성 증상인 줄 알고 서적을 뒤적이다가 내가 ADHD 같다는 생각을 했다. 50% 이상 확신이 들어 심리상담 센터에서 CAT 검사를 받은 결과, 역시 ADHD였다”라며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상이 뭐였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10만 원의 검사 금액이 스스로가 바보임을 인증하는 것 같아 창피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내 실수와 엉뚱한 말이 이 병명으로 면죄받는 것 같았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댓글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많은 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여주고 있었다. 또한 약 복용에 관한 이야기와 현재 받는 치료의 호전 상황에 대해서도 공유했는데, 각각의 사연은 달랐지만 ADHD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극복해나가려는 자세는 모두 똑같았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