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으로 읽는 건강 ②]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작, 천연두
[조선왕조실록으로 읽는 건강 ②]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작, 천연두
  • 박서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1.16 17:53
  • 최종수정 2021.11.1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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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상화, 일본·중국과 달리 ‘천연두 곰보 자국’ 하나 숨기지 않았다

-계속되는 천연두 유행에 부부 동침·제사까지 금지

-천연두 백신 개발까지 3000년 시간 소요…코로나19는?

■ 조선 회화(繪畫)에 그대로 남아있는 전염병, 천연두

[헬스컨슈머] 조선의 초상화는 얼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염 한 가닥, 피부의 사마귀 하나, 안면을 다 덮은 두창의 흉터 자국까지 놓치지 않는다. 잡티를 숨기기 위해 컨실러를 바르고, 레이저 시술까지 받는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러한 조선의 회화는 진귀하다.

영조 50년(1774년)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한 특별시험 ‘등준시무과’ 합격생 18명의 초상화를 모은 ‘등준시무과도상첩’이 발간됐다. 그림 속 무인 관료 김상옥의 얼굴에는 두창 자국이 가득하다. 이보다 더 앞선 영조 4년(1728년)에 그려진 오명항 초상화는 더 사실적이다. 흑생황달을 앓아 새까매진 피부 위에 곰보 자국이 도장으로 찍어낸 것처럼 자리잡고 있다.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설명 및 출처) : 김상옥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여기서 말하는 두창은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연두다. 감염 시 평균 12일간의 잠복기를 거친 뒤 고열과 오한, 허리 통증,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이후 2~3일간 붉은색 발진이 피부 곳곳에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전염성이 매우 강하므로 주변에 쉽게 옮길 수 있다. 당시 천연두에 걸린 환자 30~40% 정도는 목숨을 잃었을 정도다.

이때 조선도 엄격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했다. 부부간의 동침은 물론, 심지어 유교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까지 금지했을 정도다. 이처럼 당시의 심각했던 상황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진출처) : MBC '선을 넘는 녀석들' 캡쳐
(사진설명 및 출처) : 오명항 초상, MBC '선을 넘는 녀석들' 캡쳐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1645년) 5월 28일- 그런데 요즘에는 전염병과 천연두로 인하여 사망자를 헤아릴 수 없고, 물고(物故)된 군정(軍丁)은 전염병으로 죽은 숫자보다 갑절이나 되므로, 대신하여 정하도록 독책하더라도 그 숫자를 다 메꾸기 어려운 형편이요……(후략)

-현종실록 14권, 현종 9년(1668년) 4월 28일- 이때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잇따라 죽었는데, 천연두와 홍역으로 죽은 자가 더욱 많았다. 경성의 5부에서 죽었다고 보고한 자가 9백여 인이었는데, 실제로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의관으로 하여금 약을 가지고 가 구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 인류 문명 함께한 천연두…그래도 끝은 있었다

2021년 현재, 천연두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연두는 현재 지구상에 없다고 봐도 좋다. 최초의 천연두 백신은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했다. 이 백신은 우두(牛痘) 바이러스를 환자에게 접종하는 방식이다. 180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군대에게 백신을 맞도록 했으며, 1853년에는 영국이 본격적으로 천연두 백신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이를 ‘우두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정조 때 정약용이 인두법을 도입함으로써 천연두를 예방하려 나섰다. 인두법은 우두법과 조금 다른데, 천연두 환자에게서 시료를 얻은 뒤 다른 사람에게 접종시켜서 항체를 만드는 방식을 일컫는다. 정약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두법까지 소개했으며, 이후 지석영이 우두법을 본격적으로 보급하면서 천연두는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완전 퇴치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진화심리학자이자 과학 저술자인 스티븐 핑거는 EBS ‘위대한 수업’에 출연해 “천연두 백신이 개발되기까지는 3천 년이 걸렸다”라고 평가한다. 천연두는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 등 전세계를 괴롭혀온, 사실상 인류 문명을 함께 한 질병이다.

핑거는 그러면서 “반면 코로나 백신은 9개월만에 개발됐다”고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혀왔던 천연두의 종말은, 우리가 얼마나 ‘태평성대’ 시기에 태어났는지를 일깨워주는 기록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