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으로 읽는 건강 ③] 아이부터 노인까지…조선에선 담배가 약초였다
[조선왕조실록으로 읽는 건강 ③] 아이부터 노인까지…조선에선 담배가 약초였다
  • 박서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1.23 17:53
  • 최종수정 2021.11.23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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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 하멜 “조선인은 담배를 좋아해 어린이도 4~5세때부터 담배를 피운다” 기록

-못 말리는 애연가 정조…백성들에게 흡연 권유할 정도로 담배 예찬론 펼쳐

-21세기, 연초보다 전자담배 더 선호…그러나 여러 지적도 잇따라

■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조연, 다름아닌 ‘담배’

[헬스컨슈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있었고, 1636년에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조선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담배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담배가 들어왔고, 이후 병자호란 때 조선은 청나라 군대에 납치된 조선 포로를 구하기 위해 담배 한 짐과 포로 한 명을 교환했다. 척박한 만주 땅에서 담배 재배는 어려웠기 때문에 여진족에게 담배는 당연히 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무역을 할 때도 조선의 대표 수출 품목은 담배였다.

조선인들의 담배 사랑은 이후에도 여러 문헌에서 발견된다. 1653년 조선에 도착했던 네덜란드 상인 하멜은 “조선인들은 담배를 좋아해 어린이들도 4~5세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남녀 간에 담배를 배우지 않은 이가 드물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신윤복의 <연소답청>이나 김홍도의 <담와평생도> 등의 당시 그림에는 담배를 피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사진설명) : 신윤복 '연소답청' / 문화재청 제공

특히 정조의 경우 담배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훈어(訓語)를 통해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을 말하면, 더울 때는 더위를 씻어주고, 변을 볼 때는 이것으로 악취를 쫓게 하고, 추울 때는 추위를 막아준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이것을 피우면 잠이 오게 되며, 시를 짓거나 문장을 엮을 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고요히 정좌할 때도 유익하지 않은 점이 없다”고 예찬했다. 오죽하면 조선을 흡연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백성들에게 담배를 권유했을 정도다. 반면 담배를 무척 싫어했던 아들 순조는 “아이들이 젖 떼자마자 담배부터 문다”고 크게 한탄했다.

이처럼 워낙 수요가 많다보니 벼농사를 하던 자리는 모두 담배밭이 되었다. 나중에는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이때 담배가 무익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건강에 무익하다는 것이 아니라 농경사회에 무익하다는 뜻이었다.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상식이 너무나 보편적인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조금 낯설고 신기한 모습이다.

-정조실록 50권, 정조 22년(1798년) 11월 30일- 담배의 재배로 곡식의 생산이 줄어드는 피해가 몹시 심합니다. 신은, 원장(元帳)에 등재되어 있는 토지에는 차를 심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산을 깎고 숲을 불사르는 버릇을 금지시켜야 하니, 무익한 작물을 지어 유익한 것을 해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모두가 담배를 무조건 약초라고 믿은 건 아니었다. 실학자 이익은 “담배는 담을 없애 병을 물리치고, 몸속 기생충 박멸에 효과적이다”라고 치켜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털이 빨리 희어지게 하고, 이가 상해서 빠지게 한다. 또한 얼굴빛이 푸르러지거나, 입냄새가 추악해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 MBC 드라마 '이산'
(사진출처) : MBC 드라마 '이산'

 

 

■ 전자담배, 과연 연초보다 덜 해로울까

당연한 말이지만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다. 직접 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담배 냄새를 맡는 것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800만 명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한다. 이 중 100만 명은 간접흡연이 원인이다.

한 번은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팀이 금연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독일의 한 영화관에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모아놓고 그곳의 공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흡연자에게 묻어있던 독성물질 35가지가 영화관 공기 중에서 측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자와 같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셈이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에 담배 회사들은 전자담배 판매에 주력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궐련형을 두고 얘기하자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 궐련담배보다 유해성이 적다는 게 이들 회사의 주장이다. 담뱃잎을 태우지 않고 가열을 하는 방식으로 연소를 하기때문에 연기에 포함된 유해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자담배는 연초에 비해 덜 해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덜’ 그렇다는 것이지, ‘아예’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9년 기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전자담배 관련 부작용 보고 건수는 총 127건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니코틴 중독으로 인한 경련 현상이었다.

또한 달콤한 향기를 내기 위해 각종 감미료 성분을 첨가한 가향담배까지 등장하면서 전자담배가 오히려 금연을 유도하는 게 아닌 흡연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리얼미터가 흡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국민 흡연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62.7%가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유해물질도 일반 전자담배에 비해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럽(EU)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발 빠르게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 상태고, 미국의 바이든 정부 역시 금지 법안을 가결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법적제재가 없는 상태다. 인류가 금연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몇백 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