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품절 사태와 필수의료 부족 사태
[헬스컨슈머] 우리나라 의료 인프라는 전세계적으로 그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우수한 의료인력과 좋은 의약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체계만이 사회주의적인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다른 사보험과는 달리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전국민이 가입해야 하는데다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횟수나 비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소득자가 비용을 더 내고 저소득자들이 비용을 적게 내는 다분히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고자 하는 설계가 깔려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꾸준히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태어나는 아이 수가 노인 수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도 튼튼하고 혜택도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구조가 바뀌고 고성장의 시대도 끝을 보이면서 의료업계에서 먼저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 기관은 그 동안 의료인과 제약사에 돌아가는 수익을 통제하여 의료비를 낮게 유지하였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은 날로 떨어져가고 수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의료인들과 제약회사들은 서비스 제공을 망설이고 있다.
[위기에 빠진 건강의료 시스템]
전공의들의 단체 사직이 연일 뉴스에 오르며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약국에서 의약품 품절 사태가 3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 이상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온 것이 없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보험 약가로 인해 제약사들의 손해가 막심하여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해마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약들의 약가 인하가 진행되고 있기에, 급격한 인플레이션 문제와 더불어 원가 보존이 안 되는 약들이 무수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의료업계에서도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위중한 수술일수록 원가 이하의 수가가 보존된다. 그 때문에 일정 부분 소득을 거두어야 하는 병원에서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술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인간의 이기심과는 다른 문제라고 보여진다. 제약사들에게도 손실을 보존해주는 것이 먼저이지 손실이 나는 의약품의 생산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수 항암제 품절 사태]
최근 항암제 공급 부족 사태로 암환자들의 항암 치료가 늦어지면서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항암 주사제 ‘5-플루오로우라실(5-FU)’의 품절이 큰 영향을 미쳤다. 5-FU는 췌장암, 위암, 유방암, 결장암 등 국내의 많은 암환자들이 해당 약물치료에 의존하고 있다. 암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암이 커지거나 전이될 위험이 증가하는데, 항암제 부족으로 치료가 계속 지연되는 사태에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번 독감이 유행할 당시에는 독감 치료제인 페라미플루와 타미플루가 품절됐었고, 타이레놀과 기침, 가래약,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 감기약과 소아 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일어났었다.
이 사태 속에서 약사들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어찌저찌 위기를 넘겼지만 품절 사태는 완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사회에서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 정보를 의료기관과 의약품 공급자가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다빈도 의약품들은 국가비축의약품으로 지정하여 의약품 생산량 확대를 위한 행정적 재원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인 뿐만 아니라 의약품 부족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사태도 곧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의약품은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체계도 갖추어주어야 한다. 건강보험 의약품의 약가는 계속 인하하면서 수급은 민간 시장에 맡겨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가 의료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의약품 품절 사태 해결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