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 50년의 추적, 

햇빛 비타민은 암을 막을 수 있을까

2026-11-05     전의혁(사단법인 건강소비자연대 해외학술정보이사)

[헬스컨슈머] 11월 2일은 세계 비타민D의 날이고, 11월은 비타민D 인식의 달이다. 올해 이날에는 비타민D와 암 예방 연구의 길을 연 이들을 기리는 '배걸리-갈랜드 상'이 처음 시상됐다. 이 상에 얽힌 다섯 명의 이야기에는 반세기에 걸친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다. 햇빛과 비타민D는 정말 암을 막을 수 있을까.

암 사망 지도에 숨은 이상한 무늬
1970년대, 프랭크·세드릭 갈랜드 형제는 존스홉킨스대의 한 발표장에서 미국 지역별 암 사망률을 색깔로 칠한 지도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햇빛이 적은 북부의 대장암 사망률이 햇볕 좋은 남부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형제는 질병이 어디서 누구에게 많이 생기는지 추적하는 '역학' 연구자였다. 범인의 동선을 쫓는 형사처럼 이들은 햇빛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햇빛 속 자외선B가 피부에 닿으면 몸은 비타민D를 만든다. 일조량 차이가 비타민D 차이를 낳고, 그것이 암 사망률 차이로 이어진다는 가설이었다. 1980년 발표한 논문 「햇빛과 비타민D는 대장암 위험을 낮추는가?」는 암 연구에 새 길을 열었다. 프랭크 갈랜드(1950~2010)는 이후 유방암, 난소암 등으로 연구를 넓혔다.

대기오염과 옛 소련에서 찾은 단서
에드워드 고럼 박사는 갈랜드 형제와 함께 증거를 북미 밖으로 넓혔다. 1989년 캐나다 20개 도시를 분석한 결과, 자외선B를 가로막는 황산염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일수록 유방암과 대장암 사망률이 높았다. 이듬해에는 옛 소련 북쪽 지역의 유방암 발생률이 남쪽의 약 2배임을 밝혀냈다.

하늘을 연구하던 물리학자의 합류
윌리엄 그랜트 박사는 원래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소 등에서 오존과 대기 중 미세입자를 연구한 물리학자다. 자외선이 땅에 얼마나 닿는지 잘 알던 그는 2002년 미국 지역별 암 사망률을 분석해, 자외선B를 많이 받는 지역일수록 사망률이 낮은 암을 더 찾아냈다. 그의 연구는 이후 심혈관질환과 감염병으로 넓어졌다.

지도를 넘어 실험으로 확인하다
남은 질문은 비타민D를 먹으면 정말 암이 줄어드는가였다. 크레이튼대 조앤 라페 박사가 이 숙제를 맡았다. 그가 택한 방법은 참가자를 제비뽑기하듯 나눠 한쪽엔 진짜 영양제를, 다른 쪽엔 모양만 같은 가짜약을 주는 '무작위 대조시험'이었다.
2007년 폐경 여성 1,179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비타민D3와 칼슘을 먹은 그룹은 첫해 진단된 암을 빼면 암 발생이 약 76% 적었다. 2017년 2,300여 명 대상의 두 번째 시험에서는 전체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실제 도달한 혈중 농도로 다시 따지자 결과가 달라졌다. 혈중 농도 55ng/mL인 사람은 30ng/mL인 사람보다 암 위험이 약 35% 낮았다. '얼마나 먹었나'보다 '몸에 얼마나 채워졌나'가 중요하다는 신호였다.

연구실의 지식을 시민의 손에
캐럴 배걸리(1942~2024)는 연구자가 아는 것과 대중이 듣는 것 사이의 큰 간극을 보았다. 그는 2007년 비영리 연구단체 그래스루츠헬스를 세워 이 연구자들을 한자리에 모았고, 이듬해 시민이 직접 자기 수치를 재며 연구에 참여하는 ‘D*액션' 연구를 시작했다.
이 협력은 2018년 여성 5,038명의 자료를 합친 분석으로 이어졌다. 혈중 농도 60ng/mL 이상인 여성은 20ng/mL 미만인 여성보다 유방암 발생이 82% 낮았다. 다만 이는 함께 나타난 경향을 지켜본 관찰 결과여서, 수치를 올리면 위험이 똑같이 준다고 확정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선구자들이 남긴 숙제, '내 수치' 알기
다섯 선구자의 여정이 가리키는 곳은 하나다. 비타민D는 먹는 양이 아니라 혈액 속 농도로 관리해야 한다. 같은 양의 물도 그릇에 따라 차오르는 높이가 다르듯, 같은 양을 먹어도 체중, 나이, 장 건강, 유전에 따라 수치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건강상 이득이 나타나는 구간은 40~60ng/mL이고, 암 예방을 생각한다면 50~60ng/mL 이상이 거론된다. 20ng/mL는 뼈가 약해지는 병을 막는 최저선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인 평균은 16.1ng/mL로 국민의 97% 이상이 부족하거나 결핍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걸음은 검사다. 동네 검진병원에서 1만~2만 원이면 혈액검사를 받을 수 있다. '부족', '정상' 같은 판정만 듣지 말고 숫자를 확인해 기록하는 것이 좋다. 검사는 1년에 한 번 이상 받기를 권한다. 복용량은 검사 결과와 복용 중인 약 등을 고려해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타민D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치료가 제 효과를 내도록 받쳐주는 토대다. 50년 전 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 질문에 답하는 일은 이제 내 수치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