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
  • 김철중(전문의,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및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07.29 09:00
  • 최종수정 2019.07.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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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진짜로 이기는 방법

[헬스컨슈머] 정보는 많다, 하지만 믿을만한 정보는 드물다. 그렇기에 이제는 신뢰할만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볼 때가 되었다.

 
친절한 전문가

김철중 박사는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

한때 고려대 의대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하다 의학전문기자로 전향한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로,

대한병원협회, 한국과학기자협회, 대한암학회 등에서 수상하며 언론인으로서의 굵직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은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본격적인 고령화사회의 문턱에 들어섰다. 여기에 WHO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7년 후인 2026년에 노인 인구비율이 전체의 20%를 초과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면, 국가의 중요한 한 축이 될 노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앞서 말했다시피 대한민국의 고령화는 상당 수준 진행되었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노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썩 좋은 곳은 아니다.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다루기 힘든 전자기기와 키오스크 등의 자동화가 과도하게 진행되었고, 가파른 계단과 미끄러운 바닥들은 항상 노인들을 위협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

사진제공: 헬스투유
사진제공: 헬스투유

일반적으로 사회의 공공 자본은 생산력과 효율로부터 흐른다. 즉, 덜 성숙한 사회일수록 사회의 공공성 재화(버스, 지하철 또는 공중화장실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건물 시설 등)은 생산성이 높은 일반 성인이 기준이 된다는 소리이다. 반대로 성숙한 사회일수록 사회의 공공 자본은 약자, 즉 노약자, 어린이 또는 장애우의 기준에 맞춘다. 일견 복잡한 이야기지만 예를 들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들의 공중화장실을 가 보면 어린이 키에 맞춘 변기는 보기 드물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장애인용 화장실, 또는 공공기관 복도의 노약자용 손잡이, 휠체어 전용 저상버스 등 역시도 마찬가지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바꿔 말하면 사회가 성숙할수록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의 질문을 우리 사회에도 던져보자,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대답은 아마 ‘아니다’일 것이다. 하물며 그 약자들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일궈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8년 헬시에이징학회에서 이 내용을 강연한지 어언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변화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참고할만한, 약자에 대한 사회의 배려가 가장 제도화된 곳은 어디일까.

 

[일본의 답변 - ‘배리어 프리’]

이에 대한 답변은 사실 좀 껄끄러운 나라다, 바로 일본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썩 양호하지 못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꽤 나쁜 상태다. '1919년에는 일본을 이기지 못했지만, 2019년에는 일본을 이기자'라는 슬로건까지 등장하며 일제 불매운동이 펼쳐질 정도이다. 물론 필자도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일본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일본의 장점은 배울만 하다. 삼국시대에 백제를 상국으로 모시던 그 일본이,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조선시대에는 우리를 능가해버렸던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배우고,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로 일본을 이길 수 있다.

흔히들 일본을 보면 한국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국가의 특성이야 별개라고 쳐도, 일본의 과거 사회와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회 변천기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급격한 변화에 몸살을 앓는 우리 사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사회 고령화의 핵심은 바로 ‘배리어 프리’이다. 이는 물리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분야 모두를 포함한다. 요즘 일본의 병원이나 관공서들에는 ‘문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책상이든, 세면대든 모두 휠체어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아래가 널찍하게 비어있고, 버스, 택시, 복도 등 공공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곳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도록 손잡이가 세심하게 설치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주택이든, 병원이든, 실제로 노인과 환자들이 거주하는 장소에는 넓은 채광창과 빛이 비치는 우윳빛 커튼, 그리고 휠체어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방사형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에게 있어 빛의 육체적, 정신적인 역할과 시간관념까지 모두 확보하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시간에 햇볕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며, 때문에 날이 밝고 다시 저물때까지 햇빛을 충분히 쬐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진제공: 헬스투유
사진제공: 헬스투유

뿐만 아니다, 노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가장 훌륭한 배려는 바로 정신적인 부분이다. 고령화 사회에서의 의료의 중점을 질병 완치가 아니라 환자 본인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에 중점을 둔다. 물질적인 준비가 아무리 잘 되어 있더라도, 사회가 노인들을 그저 ‘노약자’로 구분하고 격리해버린다면 그 모든 준비가 무의미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즉 살아가는 동안 그 어느때라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7만개의 살롱과 20만개의 고령자 클럽이 존재하며 노인 인구의 사회화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의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따스함 같은 문제를 노인들 스스로가 해결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일본도 고령화사회 초기에는 노인 고립이 굉장히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사회와 정부의 전반적인 노력으로 방송에서 젊은이/노인의 동반 출연, 노약자석을 일반석과 적절하게 섞어서 배치하고, 횡단보도 노약자 전용 신호등과 같은, 핵심은 ‘노인을 배려하되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날 일본의 노인들이 과거에 그랬듯 현재도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곳에서 살아가고 존엄성을 간직한 채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재정지출을 필수로 한다.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00%에 가까운 지금, 일본정부가 부담을 느낄만도 하다. 현재 일본은 대출이자를 갚는데만 국가 전체 예산의 30% 가량을 쏟아붓고 있다. <포브스>지의 예상에 따르면, 2040년 즈음에 세수의 100%가 대출이자 갚는데 들어갈 것이라니, 일본에게 있어서는 꽤나 마음이 걸리는 부분일 터이다.

 

[일본을 진짜로 이기는 방법]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 대비 40%도 채 되지 않아 재무구성이 탄탄하며, 국제 신용도도 높은 편이다(무디스 기준 Aa2등급). 우리가 준비하고자 한다면 일본보다 더 멋진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 이 슬로건은 일본 노인들의 새로운 격언이다.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와 연금 등의 금전적 보상이라도 본인의 건강보다는 무익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 맞춰 일본의 사회학자들은 ‘움직이는 고령사회 3대 목표’라는 3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 노인들이 병들고 쇠약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춘다.

- 노인들이 고립되고 소외되는 것을 방지한다.

- 노인들이 자기가 살아온 장소에서 늙어가고 마지막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어떤가, 우리 사회는 다가오는 미래의 수많은 노인들에게 어떠한 답을 줄 수 있을까. 2019년 현재 우리는 전국민이 단결하여 일제 불매운동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일본보다 더 훌륭한,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일본을 정말로 이길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이 그 답의 일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 자료제공: 한국헬시에이징학회, 엠디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