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 판치는 필라테스, 몸매 가꾸려다 ‘골병’
무자격자 판치는 필라테스, 몸매 가꾸려다 ‘골병’
  • 김용인 기자
  • 기사입력 2019.11.27 09:00
  • 최종수정 2019.11.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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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헬스컨슈머] 휴학생 A씨(22)는 6개월 뒤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해준다는 말에 한 필라테스 학원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월 50만원의 ‘열정페이’였지만, 보통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드는 강사 자격증을 오히려 돈을 받고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근 첫날 A씨는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A씨와 같은 인턴들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인턴의 이야기였다. 그는 “여기서 ‘인턴’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면서, “(회원들이)경력을 물어보면 2~3년 정도라고 말하고, 자격증도 있다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A씨는 이전에 필라테스를 배워본 적이 없었고, 이는 다른 인턴들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새 여성들 사이에서 필라테스가 몸매를 가꾸는 데에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필라테스 학원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하지만 관리와 감독이 없는 민간 자격증이 난립하는 가운데 무자격자들까지 강사로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라테스란 무엇인가]

필라테스는 1차대전 당시 독일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요제프 필라테스’에 의해 포로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운동이다. 특히 수용소의 좁은 공간 안에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스프링이 달려있는 기구들을 밀고 당기는 동작과 스트레칭을 하는 동작이 대표적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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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필라테스로 병원 찾은 환자 多]

필라테스의 동작들은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는 항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고강도 운동에 속한다. 그중 스트레칭 동작은 관절의 적정 가동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 부상위험도 크다. 특히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등 척추 관련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지도가 이뤄지지 않아 환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스포츠전문병원의 재활의학 전문의는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20∼40대 목, 허리 통증 환자 중 20∼30%가 요가, 필라테스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통증전문병원의 의사는 “최근 들어 목, 허리가 아프다고 찾아오는 젊은 여자 환자 중 거의 대부분이 필라테스를 배우다 다친 경우”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수업 중 정확한 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2017년 한 필라테스 센터에서 수업을 듣던 장 씨(45)는 기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입술이 찢어져 18바늘을 꿰매고, 2개의 치아를 임플란트로 교체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 한 필라테스 센터는 “병원가도 낫지 않던 허리통증이 사라졌다”는 수강생의 말을 인용해 필라테스의 재활효과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필라테스 지도자들이 과연 그만큼 전문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커피’랑 ‘필라테스’랑 무슨 상관인가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2019년 11월을 기준으로 등록된 필라테스 관련 자격증은 540종이다. 이중 국가공인 자격은 없었다. 쉽게 말해 국내에서 발행되는 필라테스 관련 자격증은 ‘누구나’ 등록만 하면 발행할 수 있는 ‘민간 자격증’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필라테스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인식됨에 따라 ‘자격증 사업’이 성행한 탓이다. 때문에 필라테스 관련 협회들은 일정 금액의 수강료만 내면 단시간에 필라테스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며 ‘고객 유치’에 혈안인 상황이다.

실제로 한 필라테스 지도자 협회는 400만원을 내고 수업을 들으면 6개월 뒤 자격증이 나온다고 홍보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협회는 “타 협회 대비 거품을 뺐다”면서 195만원만 내면 1~2개월 만에 지도자 자격증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필라테스나 운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커피’ 관련 협회가 사업에 뛰어들어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듯 공신력과 전문성이 없는 자격증이 난립하다보니 설상가상으로 자격증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나오는 상황이다. 최근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는 자격증이 없는 강사들을 봤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고, 필라테스 경력이 없음에도 외모가 출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강사활동 제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처럼 전문성이 결여된 강사들의 확산이 부상과 사고 등 소비자들의 피해를 낳는 상황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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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시간 교육 받아야 지도자 되는 일본]

반면 미국과 일본은 공식 협회가 개설돼있고 지도자 자격증을 손에 쥐기 위한 과정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국제필라테스지도자협회에서는 최소 400~70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는 180시간의 교육만 받으면 자격증이 발급되는 국내 사례와 대조적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국가 공인 자격으로 신설해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자격증 등록 업무를 관할하는 교육부는 “민간자격에 대해 정하고 있는 자격기본법 자체가 정부가 정한 금지분야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만 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현재 온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는 민간자격의 질적 관리를 정부가 수행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선 소비자들 스스로가 주의해야 한다. 척추나 관절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는 무리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삼가고, 운동을 하기 전 전문의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또 필라테스 학원을 고를 때에는 민간 자격증의 유무뿐만 아니라, 필라테스 경력을 함께 따져보고 생활체육지도자 등 관련 공인 자격증을 소지했는지도 함께 따져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