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불교정신치료
정신과 의사의 불교정신치료
  • 전현수(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원장,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창립자)
  • 최종수정 2020.05.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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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헬스컨슈머]‘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융의 분석심리학처럼 불교정신치료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필자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이 이것이었다.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 여정을 아는 것이 독자분들의 불교정신치료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 같아 간단히 적어보겠다.

 

[첫번째 스승, 불교와 정신을 가르치다]

시작은 1985년으로, 그 해에 필자는 첫 번째 스승을 만났다.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처음 뵈었는데, 선생님은 오십대 초반이었고 필자는 서른살이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시기에, 정신과 전공의 2년 차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정신의학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 아니겠느냐. 내가 생각하기론 불교의 괴로움을 없애는 시스템을 용어만 조금 바꾸면 훌륭한 정신의학 시스템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분 대단한 것 같다. 이분에게 좀 배워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서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부 모임에 그해 11월부터 참여해 불교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분이 누구냐면, 바로 고익진 선생님이다. 고 선생님은 전남대학교 의대에 다니던 중 심장에 물이 차는 병을 얻었다. 심장에 물이 차니까 심장이 충분히 뛰지 못하고, 그래서 온몸에 활력이 부족하고, 걸어다니기도 힘드며, 그냥 누워만 있어야 했다. 상태가 심각하여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낸 후, 선생님은 어머니 소유의 절에서 요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액자에 적혀 있는 반야심경 구절 가운데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費舌身意)에 딱 꽂혔다고 한다. ‘나는 눈이 있는데, 부처님은 왜 눈이 없다고 했을까’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셨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3년쯤, ‘아 부처님이 눈이 없다고 한 이유가 이렇구나!’ 하고 ‘나’를 깨우쳤다고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불교 정신치료의 시작]

선생님의 공부 모임에 든 그해, 그러니까 1985년 12월에 필자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그것을 ‘업설(業說)’이라고 했다.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선생님은 업설에 바탕을 두고 말씀하셨다. 그 설명을 듣는데 눈이 확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내가 평생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해에 필자는 레지던트 2년 차여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의학계의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은 물론이다. 거기에 더해 그해 결혼도 해서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고익진 선생님께 업설을 배우고 나서, 그 이치를 스스로의 삶에 적용한 다음부터는 지내기가 무척 수월해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 이치가 정신적 문제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정신치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불교를 정신치료에 이용하려고 생각했다. 정신치료를 그대로 두고 그 속에 업설의 원리를 조금 넣은 것이다. 실제로 군의관 시절에 그렇게 해서 써보니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고익진 선생님이 가르친 불교는 좀 특별했다. 해석부터 기존불교하고는 달랐는데 그래서 선생님께 그 가르침의 내용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에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빠알리어를 배워서 니까야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이 이후 필자가 불교정신치료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두번째 스승, 질문을 던지다]

고익진 선생님 말고도 필자에게 큰 영향을 준 분이 계신다, 바로 이동식 선생님이다. 1984년에 서강대학교에서 정신치료자와 수도자의 만남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동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그 세미나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불교와 정신치료가 연결되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동식 선생님께는 1988년 11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4년 2개월 동안 분석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아,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고 조금씩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는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진단도 내리고 약을 써서 치료도 했지만, 왜 병이 나는지를 정확히는 몰랐다. 그런데 이동식 선생님께 분석을 받고 나서는 왜 정신적 문제가 생기는지 필자 나름대로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정신치료자의 과정

정신치료자가 되려면 누구나 세 가지 과정을 밟는다.

첫째, 자기 교육분석을 받는다. 이 교육분석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동식 선생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필자보고 “자네 문제가 뭐야?”라고 했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교육분석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는데, 바로 치료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가 어떤 체험을 하는지 직접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후일 본인이 누군가를 치료할 때 상대가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교육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남이 자기를 보듯이 자신을 그렇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을 볼 때 빤히 보이는 게 있지 않는가, 그렇듯 남도 우리를 볼 때 잘 보이는 게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기 일쑤다. 교육분석 과정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계속 받으며, 그 질문을 받다 보면 자기가 자기를 보게끔 된다.

둘째, 사례지도(Supervision)를 받는다. 자기가 치료한 사례를 녹음이나 녹취를 해서 경험 많은 치료자에게 들고 가서 지도를 받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먼저, 치료 장면에서 자기가 해결하지 못한 자기 문제가 나올 수 있다. 그걸 지도받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험 많은 치료자의 풍부한 경험을 배우는 것이다. 사례지도는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그룹으로 할 수도 있다.

셋째, 이론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이론이란 원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론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실제만 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가까운 사람 몇몇과만 교류하려 했다면 그냥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 심지어 자기와 다른 시대의 사람에게 자기 견해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체계를 세워 글을 쓴 거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런 것을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이론 세미나를 할 땐 이론 속에 있는 경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다. 경험, 선배 치료자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고익진 선생님은 1988년도에 작고하셨다. 그 후 12년 정도, 그러니까 2000년 즈음까지 필자는 교육분석, 사례지도, 이론 세미나를 기본으로 하고, 스스로가 치료한 사례를 발표도 하면서 정신치료 쪽에서 여러 경험을 많이 쌓았다.

<다음 호에 계속>

해당 기사는 <엠디저널>의 자료 협조로 제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