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잘 버리고 계십니까?
약, 잘 버리고 계십니까?
  • 남정원 약사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0.09.11 10:31
  • 최종수정 2020.09.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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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약을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약은 제대로 버리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모르는 분이 많다.

약국에 오는 환자 분들 중에 오래된 약이나 변질된 약을 복용하여 문제가 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식품은 오래되면 냄새가 나거나 형태가 변하여 상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약은 오래되어 품질에 이상이 생겨도 형태나 모양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약도 유통기한이 있다]

약은 우리 몸 안에 들어가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물질이기에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진다. 인체에 필요한 대부분의 약 성분은 매우 적은 양이기 때문에 이런 적은 양의 물질은 부형제와 함께 반죽되어 목넘김이 쉽게 형태가 커지고 설탕막 같은 당 코팅을 입히거나 젤라틴 캡슐 안에 넣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색이나 모양, 냄새 등이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은 화학 물질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 상태로 남아있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게 된다. 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은 살살 날아가서 부형제 부분만 남아있기도 하고 습기나 온도, 태양빛에 의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성분이 변한 약을 육안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먹어버리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제 받은 약은 6개월까지만]

환자들이 병원 약을 지어가는 경우, 언제까지 약을 두고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조제약은 처방 기간을 준수하여 다 먹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아플 때 미리 지어두고 남은 약이 있으면 먹게 되는 심리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경우 조제할 때 약국에서 받은 약봉투를 꼭 약과 함께 보관하고 언제 조제된 약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약포지에 포장된 약은 6개월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항생제, 유산균제, 효소제, 소화제 등 변질되거나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약은 6개월이 지난 경우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고 가루로 분쇄된 약도 6개월 이내에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PTP 포장된 상태로 받은 경우에는 겉 면에 표시된 유효기간까지 복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통에 든 약은 개봉 후 1년까지만]

약이 통 안에 들어있는 경우 예를 들면 영양제의 경우 겉 면에 표시된 날짜까지 먹어도 안전하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의약품은 개봉하고 나면 겉 면에 적힌 유효기간은 무의미하다. 이 사용기한은 밀봉 상태로 언제까지 효능이 유지되는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약품은 개봉 후 1년 이내에 복용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이 기간도 약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는다면 유효기간은 더 짧아지게 된다. 약은 건조하고 시원한 곳에 (습도 60% 이하, 온도 25도 이하) 직사광선이 닿지 않게 보관하여야 한다. 냉장고 안에 약을 넣으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냉장고 안은 습도가 높고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아서 오히려 약이 변질되기 쉽다. 안약이나 스프레이 제품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바로 다음날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약사가 냉장보관을 지시하지 않은 한 어떤 약이든 냉장보관은 피해야 한다. 약의 포장을 뜯어 내용물이 공기 중에 노출됐다면 1년 이내에 복용하고 얼마나 된 약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버리는 것이 안전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안약과 연고도 오래되면 버리자]

약국에서 상담해본 결과 먹는 약보다 유효기간을 어기는 경우가 더 흔한 경우는 안약과 연고이다. 안약은 일회용으로 포장된 경우 개봉한 직후 다 사용하고 남은 약은 바로 버려야 하며 다회용인 경우는 개봉 후 한 달 이내에 사용하고 버려야 한다. 눈에 들어가는 약은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거나 아주 적은 양이 들어있기 때문에 내용물이 공기에 노출된 뒤에는 높은 확률로 세균이 번식되기 쉽다. 그러므로 오래된 안약의 사용은 결막염의 원인이 되니 사용기한이 지난 안약은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연고는 약 성분 외에 약품과 혼합하여 연고를 만드는 바탕이 되는 유지류, 바셀린, 라놀린 등의 기제가 들어가는데 이는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기 쉬우므로 개봉 후 6개월 이내에 사용하고 사용 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고 겉 면에 표시된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사용하거나 그마저도 확인하지 않고 오래된 연고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연고는 염증이 나거나 상처가 나서 감염에 취약한 부위에 바르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오래된 연고는 2차 감염의 원인이 되고 제 때 치료가 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오래된 연고는 다음번에 쓸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집에 놔두지 말고 바로바로 버려야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약의 폐기는 약국에]

오래된 약을 제 때 버리는 게 좋다면 어떻게 버려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약국에 폐기약을 모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약이 땅에 묻히면 약이 녹아 땅 속에 스며들어 식물이 흡수하고 생활하수와 함께 버린 물약은 강물로 들어가 물고기 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된다.

실제로도 이미 강물에 버려지는 피임약과 항우울제로 인해 호르몬에 교란이 생겨, 성전환된 물고기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유럽, 우리나라 등 전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다.

아무 곳에나 버린 약 때문에 환경,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대한약사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가정 내 폐의약품 수거사업을 벌이고 있다. 약국마다 폐의약품 수거함이 마련되어 있으니 집에서 쓰다 남은 약은 약국에 맡기고 환경에 영향이 없게 소각 처리될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