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독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약이 독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 남정원 약사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0.10.12 17:07
  • 최종수정 2020.10.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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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 어느 날 약국에서 한 할머니 환자가 비코그린이라는 변비약을 사시면서 물으셨다.

“이 약은 알약이 아주 작던데 약이 독해서 그런가 봐?”

약사 입장에서 이 물음에 무엇이라고 답해드려야 할 지 몰라서 아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질문은 약사로서 가장 대답하기 난처하고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약이 독하다’는 개념은?]

환자가 '이 약이 독한 건가요?'라고 묻는 질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독하다'라는 것은 자극적이거나 부작용이 많거나 오래 먹으면 해롭다 등의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부정적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이 약이 독하다고 말해버리면 상대적으로 환자가 그 약을 잘 챙겨서 먹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복약순응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모든 약을 순하다고 말해버리면 전문가로서 정확한 정보를 환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세상에 순한 약과 독한 약을 정확히 구분짓는 분류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약사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약을 분류하여 환자에게 설명하게 된다. 때문에 같은 약이라도 어떤 약사는 순한 약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약사는 독한 약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약효가 긴 약은 다 독한 약인가요?]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이롭게 하는 약에 독하다는 말을 붙이기는 애매하다. 그런데 이를 구분짓는 분류 기준마저도 명확히 없으니 환자들이 생각하는 독한 약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제약사에서는 환자의 복용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약효의 지속시간을 늘리고 알약의 크기를 작게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런 노력을 기울인 신약들이 독한 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복용하는 골다공증 치료약, 항진균제 등은 복용 주기가 길다보니 독한 약이라는 누명을 자주 쓴다. 약효는 강력하겠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많은 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약들이  부작용이 없는 약은 아니지만 복용 한 번 만으로도 약효가 장시간 유지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복용을 권장하는 것이지 부작용이 많은 약이라 일주일에 한 번 복용을 권장하지는 않다.

또한 알약이 작다고 독한 약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일부 환자들은 약이 독해서 적은 양만 넣기 때문에 알약의 크기가 작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약의 크기과 약의 함량은 정비례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목넘김이 쉽도록 알약을 작게 만드는 기술이 사용되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알약의 크기로 독한 약인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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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이 나타나는 약은 다 독한가요?]

환자 분들이 으레 호소하는 불만 중 하나는 의사가 독한 진통제를 주어서 속이 아팠었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통제가 독해서 위장장애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엄밀하게 말하면 옳지 않다. 모든 진통제는 위장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복용하는 환자에 따라 같은 진통제라도 위장장애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또한 위장장애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 진통제를 독한 약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진통제 중에는 위장장애가 상대적으로 덜한 타이레놀이나 쎄레브렉스 같은 진통제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타이레놀은 간 부작용이 더 심하고 쎄레브렉스는 심혈관계 질환을 악화시킬 부작용이 더 크다. 어떤 환자에게는 이런 부작용이 위장장애보다 상대적으로 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데 속쓰림이 없다고 이 약들을 순한 약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든 약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처방된다]

모든 약들은 효과와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 효과나 부작용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독한 약과 순한 약을 구분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자면 스테로이드는 매스컴에서 이상반응에 대해 많이 보도되어 환자들이 스테로이드라고 하면 기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로이드는 가장 광범위하고 빠르게 몸에 알러지와 염증 반응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잘 사용하면 매우 이로운 약이다.

특별한 치료약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 코로나 감염 환자의 경우도 스테로이드 치료제인 덱사메타손을 사용한 경우 염증 반응을 크게 낮추어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였다. 이외에도 피부질환에서 스테로이드는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처방이 되는데 피부과 약은 독하다는 설을 낳은 원흉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다양한 제형이 출시되어 있는 만큼 의사가 환자의 질환 상태를 보고 효과가 강한 스테로이드를 짧은 기간 사용하기도 하고 효과가 약한 스테로이드를 길게 처방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스테로이드 자체가 독한 약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약의 강도에 따라 독하다 아니다를 대답할 수 밖에 없는데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순한 약을 오래 쓰는 것보다 효과가 강한 약을 짧게 쓰는 게 오히려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약사에게 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치료가 늦어지고 병이 커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의사가 처방을 해 준 약을 지시한 대로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얘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면 약을 복용하는 중에 전문가인 약사와 상담하여 복용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다. 모든 약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이로운 약이 될 수도 있다. 환자에게 맞게 적절하게 사용해야만 모든 약이 이로운 것이고 정확한 처방과 올바른 복약이 이행된다면 환자에게 독한 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