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건강기행 -7-] 가을과 어울리는 음악
[음악건강기행 -7-] 가을과 어울리는 음악
  • 최은혜 음악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1.10.12 12:25
  • 최종수정 2021.10.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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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울긋불긋 변하는 가을…분위기를 더 느낄 수 있는 예술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의 연주…사계부터 바이올린 곡까지

-후기 낭만파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려내는 ‘인생의 황혼기’

[헬스컨슈머] 나뭇잎이 울긋불긋 변하는 가을의 초입이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까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가 그린 가을의 포플러 나무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시기다. 까미유 피사로가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전원마을 에라니(Eragny)에 머무르면서 화폭에 담은 시골의 평화로운 일상과 풍경 그림이 그 어느 때보다 정겹게 다가오는 계절, 차이코프스키와 브람스의 음악이 그리운 가을이다.

까미유 피사로, 가을, 에라니의 포플러 나무들, 1893 @Google_Art_Project
까미유 피사로, 가을, 에라니의 포플러 나무들, 1893 @Google_Art_Project

 

 

■ 차이코프스키 ‘사계’ 中 10월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1840~1893)가 작곡한 1년 12개월 계절의 변화와 풍습을 음악으로 묘사한 피아노곡집 <사계 The seasons>를 우선 소개한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문호들의 시를 바탕으로 한 피아노 곡을 음악잡지에 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에 1876년 1월~12월호까지 '12개의 성격적 소품' 이라는 부제가 붙은 피아노곡 <사계>가 탄생되었다.

1월 난롯가에서 2월 사육제 주간 3월 종달새의 노래 4월 아네모네

5월 백야 6월 뱃노래 7월 풀 베는 사람의 노래 8월 수확

9월 사냥 10월 가을의 노래 11월 트로이카에서 12월 크리스마스 주간

특히 가을의 고독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곡, 10월 October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계> 중 10월은 톨스토이의 시 “가을, 우리의 아련한 뜰은 초라해지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은 바람에 날려가네”를 곡의 모티브로 하고 있다. 풍성한 수확이 끝난 후,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단풍과 은행잎이 바람에 나부끼다 땅으로 떨어지는 쓸쓸함의 정취가 느껴지는 곡이다. 

피아노 연주로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브(Mikhail Pletnev),  중국의 랑랑(lang lang), 한국의 선우예권과 조성진 등의 연주를 추천한다. 또한 가을과 잘 어울리는 깊은 중저음의 첼로로 듣는 '10월' 은 황홀하다.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Daniil Shafran)의 연주는 마치 첼로로 10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듯 음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는 애절함이 살아있다. 

 

■ 차이코프스키 가곡 Op.6-6, ‘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서유럽 중심의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언어로 표현한 차이코프스키는 수많은 교향곡,협주곡,오페라,발레 음악 외에도 평생에 걸쳐 약 130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초기에는 독일의 예술가곡인 리트, 특히 슈만의 영향을 받았다면1870년대 이후에는 러시아 예술 가곡(romance)의 전통 위에 자신만의 ‘우울하고 비애감이 지배적인 멜랑콜리(melancholy) 양식을 완성해 나갔다. 차이코프스키의 가곡 중 ‘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None But the Lonely Heart)는 정감이 흘러 넘치는 선율과 풍부한 화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가곡 6개의 ‘로망스’ 중 마지막 곡으로, 괴테의 시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 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곡 당시29세였던 젊은 시절 차이코프스키의 낭만과 절절함이 묻어난다. 한숨처럼 7도 하행하는 음형, 반주에서 당김음 (syncopation)의 사용 등이 그리움의 애달픈 정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곡은 1949년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도 흘러 나온다. 마치(March) 집안의 둘째인 조는 뉴욕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면서, 그 집의 하숙생인 독일인 바에르 교수(Professor Bhaer)를 만난다. 둘의 감정이 싹트는 데 차이코프스키의 ‘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가곡이 한 몫 한다. 작가의 꿈을 키워 나가는 조는 이 가곡의 가사 ‘내 가슴이 불타는, 어지러이 불타는’ 처럼 열정적인 가사를 쓰고 싶다고 한다. 

러시아 태생의 부모님과 스승의 영향으로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의 연주도 추천한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britannica.com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britannica.com

 

 

■ 차이코프스키 Op.42-3  <소중한 곳에 대한 추억> 중 ‘멜로디’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 Op.35을 남긴 차이코프스키지만, 피아노곡에 비하면 그가 남긴 바이올린 곡은 4곡에 불과하다.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쓴 유일한 곡인 작품번호 42번 ‘Souvenir d'un lieu cher(소중한 곳에 대한 추억)’ 중 3번 ‘멜로디(melodie)’도 깊어가는 가을에 듣기에 제격이다. 현재 우리나라 바이올린계를 이끌고 있는 클라라 주미 강과 양인모, 임지영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추천한다. 

까미유 피사로, 중국 화병 속 국화꽃 Chrysanthemums in a Chinese Vase, 1873 @commons.wikipedia.org
까미유 피사로, 중국 화병 속 국화꽃 Chrysanthemums in a Chinese Vase, 1873 @commons.wikipedia.org

 

■ 브람스 4개의 소품 Op.119-1, 인터메조 b단조

독일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말년에 3개의 후기 피아노곡집을 남겼다. 자신의 신념과 전통을 중시했던 브람스의 삶을 관통한 고뇌와 갈등, 삶의 진솔함과 무게감이 응축된 ‘late piano works’, 느리면서도 단순하고 절제된 선율 위로 커피와 와인, 담배로 고독을 달랬던 진지하고 신중했던 브람스의 모습이 겹쳐진다. 

1893년 5월 7일, 자신의 생일날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게 인터메조(intermezzo 간주곡) b단조곡을 보내면서 ‘이 곡은 아주 고독하다. 매우 느리게 연주하라는 지시어로도 충분하지 않다. 각 음표에서 고독감을 이끌어내듯이 연주해야 한다’라고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비유되는 가을, 작년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의 후기 피아노곡 ‘late piano works’로 피아노 앞에 앉은 정명훈과 백건우의 연주를 추천한다. 이외에 브람스의 말년에 작곡된 피아노곡 중 가장 널리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이자 인생 끝자락의 쓸쓸함이 담담하게 묻어나는 인터메조 Op. 118-2번도 꼭 들어보길 바란다.

요하네스 브람스 @en.wikipedia.org
요하네스 브람스 @en.wikipedia.org

 

 

■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3악장

브람스가 작곡한 4개의 교향곡 중 단일 악장으로서 가장 인기가 있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역시 가을에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브람스가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낸 시기에 작곡된 만큼, 뜨거운 열정과 감미로운 낭만이 곡 전반에 흘러 넘친다.  

이 곡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이 24살에 발표한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한 1961년 영화 <굿바이 어게인>의 OST로도 사용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이수’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땅의 전성기를 볼 수 있는 흑백 고전 영화에 기품을 더한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자. 

혁신적인 진보주의 음악가 바그너를 좋아하는 바람둥이 연인 로제, 전통을 중시한 고전적 성향의 브람스를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 시몽 사이에서 방황하는 폴. 아가씨에서 아줌마의 대열로 넘어가는 서른 아홉 살의 폴이 유한한 시간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덧없음을 느끼는 장면 등, 등장인물의 생생한 심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굿바이 어게인  @imdb.com
굿바이 어게인 @imdb.com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6장 민음사 p57

 

까미유 피사로의 딸 잔느의 독서하는 모습, Jeanne Reading, 1899
까미유 피사로의 딸 잔느의 독서하는 모습, Jeanne Reading, 1899

따스한 커피 한 잔, 책 한 권, 가을의 분위기를 담은 그림과 음악들과 함께, 건강하고 풍요로운 2021년 하반기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