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약들
진단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약들
  • 남정원 약사전문기자
  • 기사입력 2023.09.25 10:19
  • 최종수정 2023.09.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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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헬스컨슈머] 사람들은 한 가지 성분을 가진 약은 한 가지 질병 밖에 치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가지 성분약이 한 가지 이상의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립성비대증 치료제인 피나스테리드를 함량을 낮추어 남성 탈모 치료에 쓰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을 주된 치료 목적이 아니라 부가적인 치료 목적으로 쓰는 경우를 Off-Label 처방이라고 하는데 질병에 따라 보험 적용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합니다. 환자는 Off-Label 처방이 나왔을 때 본인의 질병과 약 봉투에 쓰여진 치료효과가 맞지 않아서 약이 잘못 처방된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런 경우에 약사가 사전에 약의 쓰임이 다르게 처방되었다고 말해주지만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므로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CT 검사 전에 가래약을 먹고 오라?]
CT검사로 조영제를 투여하기 전에 아세틸시스테인 캡슐을 복용하고 오라는 처방이 종종 발행되고는 합니다. 그것도 3~4캡슐을 한 번에 검사 전날과 당일에 복용하라는 처방이 발행됩니다. 그런데 이 때 약 봉투를 살펴보면 아세틸시스테인은 진해거담제, 가래를 묽게 하는 약이라는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이 때 환자는 감기에 걸리지도, 가래가 나오지도 않는데 왜 가래약이 처방 나온 거지? 잘못 나온 건가?하고 사전에 설명을 듣지 않으면 본인에게 맞지 않는 약이 나왔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때 아세틸시스테인은 가래를 묽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신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방됩니다. 조영제를 투여하면 신장혈액흐름이 감소하여 급성신부전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신세뇨관 세포손상을 예방하기 위해 혈관확장물질(NO)의 합성을 증가시키는 아세틸시스테인을 고함량으로 복용하여 신장혈류를 개선하고 조영제로 인한 활성산소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입니다.

이 외에도 아세틸시스테인은 타이레놀 과다 복용 시 해독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타이레놀을 고함량 복용하면 급성간독성이 나타날 수 있는데, 타이레놀 복용 10시간 이내에 아세틸시스테인을 복용하면 독성 대사체와 결합하여 배출시키고 해독에 필요한 글루타치온 합성을 증가시켜 간손상의 진행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처럼 아세틸시스테인은 가래를 없애는 효과 외에도 신장과 간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사마귀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위장약을?]
피부과에서 사마귀 치료를 위해 처방약을 받았을 때 위장약만 처방이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위장약은 다른 약을 복용할 때 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흔하므로 꽤 익숙한 약이지만 사마귀 치료를 위해 약을 받았는데 위장약만 나오는 경우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 때 처방이 나오는 위장약은 시메티딘으로 본래는 위산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약이지만, Off-Label 용도로 사마귀 치료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시메티딘을 고함량으로 투여하면 면역과 관련된 억제 T-cell을 조절하여 세포매개성 면역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사마귀는 바이러스 질환의 일종이기 때문에 면역조절 효과가 우수한 시메티딘을 사용하면 환자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사마귀 바이러스를 치료하는데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함량의 시메티딘 복용은 설사, 변비, 졸음, 여성형 유방 등의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하여야 합니다. 

[다이어트 약을 받는데 왜 간질약을?]
체중 감량을 위해 다이어트 약을 처방 받는 환자들을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때 다이어트 약의 조합으로 식욕억제제와 간질치료제를 같이 처방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간질이 없는 환자들은 이 약을 먹기가 꽤 거북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염려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때 간질 치료제는 토피라메이트 성분으로 간질 치료 외에도 편두통 예방이나 체지방 감소 목적으로 사용되고는 있습니다. 이 약의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갈색지방조직과 골격근의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켜서 지방 축적을 감소시키고 식욕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식욕억제제와 토피라메이트를 같이 사용하면 용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상승효과로 식욕억제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식욕억제제인 펜터민은 즉각적인 식욕을 억제하고 토피라메이트는 폭식과 식탐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이 두 가지 성분을 합한 복합제가 나와서 환자 분들이 복용하기 더 쉽게 나와있습니다. 부작용은 입마름, 설사, 불면, 어지럼증, 피부 발진, 감각 이상 등이 알려져 있으므로, 오전에 복용하여야 하며 임신 준비 중이거나 임신 중인 여성은 복용을 피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간질치료제 외에도 감기약이 다이어트 약 처방전에 나와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에도 감기 치료가 아니라 교감신경 흥분 작용을 통해 열량을 소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감기약이 처방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감기약은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커피 복용량을 줄이는 것이 좋고, 다른 감기약을 함께 복용할 때 약물을 과다복용하기 쉬우므로 감기약과 병행하여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병의 진단에 따라 같은 약이라도 쓰임이 달라지는 경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위에 든 예시 외에도 약이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흔하므로 약을 받았을 때 약사의 설명을 잘 듣고 메모하여 본인이 먹는 약이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먹는지 잘 알아두어야 오남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