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컨슈머] 최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약국 관견 뉴스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올해 3월에 다이소에 3000원짜리 저가 영양제가 출시되자 약사회에서는 이에 반발하였고, 공급사인 일양약품은 닷새 만에 판매를 철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약을 한자리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창고형 약국’이 국내에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호응과 약사회의 반발을 동시에 얻고 있습니다. 이 창고형 약국은 ‘소비자 편의’와 ‘약국 공공성 훼손’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약사의 전문성과 복약 안전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시대 변화에 따른 유통 방식과 소비 패턴 역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아마존, 쿠팡 같은 배달 플랫폼의 등장으로 자영업자들과 소규모 판매업자들의 입지가 많이 흔들리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약이라는 자원을 단순 소비재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운 시장 경쟁에 맡겨도 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약은 공공재 성격을 띄며 정부로부터 많은 보조금을 받고,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하거나 독점 시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여러 가지 법과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약국의 등장을 막고, 다이소나 편의점과 같은 곳으로 약이 유통되는 것을 막으면 ‘약’을 모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들의 더 편하고, 저렴하고,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직접 고르길 원하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고, 기존의 약국의 유통질서로 이 시대의 변화를 다 수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 앞으로 약국은 어떻게 변화하고, 미래의 약사들의 일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상하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의약분업과 약사의 역할 변화]
2024년을 기준으로, 국내 약국 수는 2만5000 곳을 넘어섰습니다. 이처럼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한정된 처방전 수익만으로는 약국들의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동네 약국 약사들이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판매로 수익 구조를 바꾸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발전하는 기술과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의료계에 비대면 진료가 도입되고 약 배송 논의가 이뤄지는 지금, 약국 역시 유통 중심에서 전문성과 신뢰를 갖춘 ‘건강 컨설팅 플랫폼’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0년 7월, 한국은 ‘의약분업’이라는 구조적 개편을 단행하여 커다란 변화를 겼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고 환자의 안전을 제고한다고 하였지만, 의사도 약사도 심지어 환자들도 만족하지 못하는 변화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의약분업 당시 의사 단체는 원내 조제와 상품명 처방을 원했고, 약사 단체는 원외 조제와 성분명 처방을 원했습니다. 그 타협점으로 원외 조제와 상품명 처방으로 합의되어 제도가 실시되었는데, 이는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지만 약품의 선택권을 의사가 가지고 있어 약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약사에 의한 복약지도와 부작용 설명 등 정보 접근성이 개선되었고, 의사의 처방을 약사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에서 투약 오류가 발생하는 확률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제도적 한계도 명확하였습니다.
약사의 조제 선택권은 원천적으로 제한되고, 같은 성분이라도 의사의 처방에 맞게 무수히 많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의사가 상품을 자주 변경하면 그에 따라 불편과 낭비가 무수히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선택할 자유는 있으나, 상품명에 따라 약을 조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기관과 약국 간 유착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의사와 약사 간 종속관계를 고착시켰습니다. 이제 의약분업 25년에 대해 평가하고 보다 발전적인 차세대 의약분업을 설계할 때로 여겨집니다. 의약분업은 의료기관-약국 간 단순한 역할 분리가 아닌 ‘의사-약사 간 직능 기반의 협업 모델’로 구조 전환이 필요합니다. 약을 처방하는 단계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어떤 약이 최선의 선택인지, 또 잦은 품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약의 유통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약사가 의사와 협업하여 처방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의약분업 초기에 비해 시장의 규모, 제도의 복잡성, 이해당사자들 간의 얽힌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현재 의약분업 제도는 약의 사용이 매우 비효율적이며 불필요한 비용이 많이 발생하여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처방과 불필요한 폐기]
우리나라는 개업의사와 개업약사가 많은 만큼 각각의 기관이 수익을 내기 위해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과잉 진료, 과잉 처방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의료 접근성은 높지만, 반대로 정작 필요한 치료 대신 미용시술이나 고가의 시술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전체 인구 수는 줄어들고 노령 인구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의료 생태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국민 전체의 건강이 크게 위협될 수 있습니다.
약국이 창고형 약국이나 저렴한 건강기능식품의 유통을 막는 이유는 국민의 무분별한 약 사용으로 건강에 위해가 가는 것도 막기 위함이지만, 약국 자체의 생존권에도 위협이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약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환자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 약국 간의 가격 차이가 있고 빠른 정보 접근성으로 약국 간의 가격 비교가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현재 약국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약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서로 낮추는 치킨 게임을 계속 하고 있는 한 창고형 약국의 등장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미래였습니다. 규모의 경제로 이윤을 낮추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박리다매하는 것이 이 시장의 정점에 놓여있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약사는 시장 경쟁의 참여자로서 역할보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사의 임상적 판단과 전문성을 더 발휘하고 이제 고갈이 얼마 남지 않은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데 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는 약 실거래가제를 도입하여 약 값의 투명성을 확보하려고 하였지만 수시로 약가를 조사하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정작 국민들이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의 생성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약가 통제는 점점 더 복잡한 방식으로 변하고 의사나 약사의 행위에 대한 수가는 오랜 기간 올리지 않음으로써 개업 의사와 약사의 자생력은 많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치약사와 통합돌봄]
약사로서 환자의 무분별한 약물 사용을 바로 잡아주거나 복약순응도를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보람은 있지만 실제로 경제적인 보상은 받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약물의 과다 사용을 장려하는 약사보다 환자의 건강을 위해 올바른 복약방식을 지도하는 약사가 생존하지 못하는 시장에서 점점 더 국가가 인정한 약의 전문가로서의 약사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미래의 약사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현재와 같은 조제와 판매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 환자 중심으로 전문적인 직능을 발휘해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약국은 단순히 상품명을 기계적으로 조제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의 약물 이력과 복약 순응도를 관리하는 1차 약료 거점으로 주치약사 제도를 도입하는 보상 구조 정비가 필요합니다. 전문약사제도의 시행(2011년)과 2+4년제 약대 신입생 입학, 통합 6년제의 도입(2022년), 국가공인 전문약사제도의 시행(2023년) 등 약사의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만큼, 약사 직능의 확장과 역할 강화도 필수적입니다.
더불어 주치의사-주치약사 협업 체계를 구축하여 의사는 질병을 관리하고, 약사는 약물 관리를 담당하는 ‘쌍방 주치 시스템’을 통해 지역사회 내 환자 중심의 통합 건강관리 체계를 실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해부터 시행 예정인 통합돌봄지원법에 따라 다른 직역의 의료진들과 협업하여 환자가 안전하게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치료 효과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약사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정책과 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