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컨슈머] 비타민D 검사 결과지를 받으면 대개 숫자 하나만 본다. 그런데 그 숫자를 언제 쟀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이 영국 바이오뱅크 참가자 41만여 명을 최대 13년 동안 추적한 결과다.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 공개 논문이지만, 규모와 분석의 정교함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여름의 20과 겨울의 20은 다르다
검사에서 재는 것은 혈액 속 ‘25(OH)D’라는 물질로, 몸에 비축된 비타민D의 양을 보여 주는 지표다. 그런데 비타민D는 햇빛을 받아 피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계절을 탄다. 영국 자료에서 혈중 수치는 늦여름에 가장 높고 2월 말에 가장 낮았다. 월급날 직후의 통장 잔고와 월급 전날의 잔고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잔고를 제대로 비교하려면 같은 날짜에 확인해야 한다. 연구진도 모든 사람의 수치를 일 년 중 가장 낮은 시점인 ‘2월 말 기준'으로 환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름에 잰 20ng/mL는 겨울 기준으로 약 12에 불과했다. 반대로 겨울에 잰 20은 여름이면 33 정도까지 오른다. 환산하자 참가자의 절반가량인 49%의 결핍 등급이 바뀌었고, 6~9월에 검사한 사람은 80% 안팎이 등급이 달라졌다.
겨울 바닥이 5 아래면 사망 위험 2배
겨울 기준 수치가 20 이상인 사람과 비교하면, 5 미만인 사람의 사망 위험은 2.03배, 5~10은 1.34배, 10~15는 1.08배 높았다. 10년 사망률로 보면 5 미만 그룹은 100명 중 약 10명, 20 이상 그룹은 약 5명이었다. 위험은 10 아래에서 가파르게 뛰었고, 이런 경향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뚜렷했다. 반면 겨울 기준 15~20을 넘어서면 사망 위험이 더 줄어드는 폭은 크지 않았다.
위험은 사망에서 그치지 않았다. 5 미만 그룹은 당뇨병 1.8배, 당뇨로 인한 망막 손상 2배, 치매 2.08배, 투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 2.12배, 뇌경색 1.58배, 심근경색 1.49배 위험이 높았다. 앞서 이스라엘과 미국 인구에서 관찰된 결과가 영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연구진은 결핍이 만성 염증과 면역 기능 저하, 혈관 기능 이상을 거쳐 몸 전체의 방어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정 장기 하나가 아니라 몸의 바탕 체력이 흔들린다는 해석이다.
"원래 약한 사람이라 낮은 것 아닐까?"
흔한 반론이 있다. 이미 몸이 약해 밖에 나가지 못하니 수치가 낮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연구진은 나이, 피부색, 흡연, 비만, 야외 활동 시간, 경제적 형편, 기존 질환까지 비슷하게 맞춘 뒤 다시 비교했다. 체급이 같은 선수끼리 겨루게 한 셈이다. 그래도 5 미만 그룹의 사망 위험은 약 2배로 남았다. 측정 후 최대 5년간의 사망을 빼고 분석해도 결과는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피부암은 반대로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서 더 많았다. 햇빛을 많이 받으면 비타민D와 피부 손상이 함께 늘기 때문이다. 낮은 비타민D가 아무 병이나 다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어서, 오히려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은 그동안 대규모 보충제 시험에서 사망 감소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던 이유도 짚었다. 결핍이 심한 사람을 골라 뽑지 않고 일반인을 두루 참여시켰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물을 주고 갈증 해소 효과를 따지는 격이다.
내 숫자를 알고, 겨울 바닥부터 채워라
이 연구가 보여준 것은 건강의 '목표선'이 아니라 결코 내려가서는 안 될 '바닥선'이다. 게다가 겨울 기준 20은 여름이면 30을 웃도는 수준이어서, 아무 때나 잰 20과는 무게가 다르다. 20ng/mL는 뼈를 지키기 위한 최저선일 뿐이다. 건강상 이득이 뚜렷해지는 구간은 40~60ng/mL라는 것이 이 칼럼이 꾸준히 강조해 온 기준이다. 우리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제주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은 가을부터 봄까지 피부에서 비타민D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 영국처럼 겨울 바닥이 깊게 꺼질 수 있다.
실천은 단순하다. 먹는 양이 아니라 혈중 농도로 관리해야 한다. 같은 양을 먹어도 오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해의 최고점인 9월과 최저점인 3월에 검사해 두 숫자를 비교하면 내 몸의 '겨울 바닥'을 알 수 있다. 결과는 '부족·정상' 같은 판정이 아니라 숫자로 받아 기록해 둔다. 햇빛은 화상을 입지 않는 선에서 즐기되, 해가 약한 겨울에는 보충제로 바닥을 받쳐야 한다.
비타민D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치료가 제 힘을 내려면 먼저 채워 둬야 할 토대다.






